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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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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자본주의가 일본을 폭격했다

소비 양상의 변화를 개인 경험과 곁들여 들여다본,
히라카와 가쓰미의 <소비를 그만두다>
등록 2015-01-10 14:55 수정 2020-05-03 04:27
미국의 대형마트는 주변의 소상인을 초토화한다. 미국 자본주의가 일본에 한 일이 그렇다고 〈소비를 그만 두다〉의 히라카와 가쓰미는 말한다.

미국의 대형마트는 주변의 소상인을 초토화한다. 미국 자본주의가 일본에 한 일이 그렇다고 〈소비를 그만 두다〉의 히라카와 가쓰미는 말한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고 돈을 낸다. 직원과는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대화랄 만한 것도 없다. 히라카와 가쓰미는 이것을 현대판 ‘침묵교역’이라고 말한다. 침묵교역이란 언어가 통하지 않는 부족 간 교역이었다. 편의점의 만남에서 유일한 언어는 돈이다. 침묵교역은 상품 교환의 첫 단계였다. 상품 교환의 최종 단계에서 다시 침묵교역이 등장한 것이다. “처음 것은 기적이었지만 지금 것은 코미디다.” 히라카와 가쓰미의 어머니의 소비는 달랐다. 상점가는 어머니에게 날마다 들러서 생활을 나누고 정보를 교환하는 곳이었다. 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거품성장기의 중심을 헤쳐온 ‘소비자 1세대’

(정문주 옮김, 더숲 펴냄)는 1950년생 저자가 소비 양상의 변화를 개인 경험과 곁들여 들여다보는 책이다. 저자는 5억엔이라는 돈을 투자받아 벤처회사를 창업하지만 결국 돈도 날리고 사람도 떠난, 거품성장기의 중심을 헤쳐온 이다. 그는 아침 샤워도 마음대로 할 수 없던 삶을 벗어나 태어나고 자란 동네로 일터와 쉼터에 복귀했다. 최근 출간돼 화제작이 된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더숲 펴냄)가 영향받은 의 저자이기도 하다. 의 주요한 요지는 이 책에서도 반복된다.

저자는 자신을 ‘소비자 1세대’라고 부른다. 1973년 석유파동 이후 1991년 거품경제 시기까지를 ‘상대안정기’라고 부르는데 이 시기에 돈을 쓸 줄 모르던 일본에 ‘진정한 소비자’가 탄생했다. 소비자 형성의 또 다른 배경으로 저자는 주5일제의 시작(1980년대), 노동자파견법(1986년)을 든다.

저자는 오손도손하던 상점가가 사라지고 편의점의 ‘침묵교역’이 이루어지게 된 원인이 미국식 자본주의의 침투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 바탕에는 실리콘밸리에서 본 경험이 있다. “나는 그 지역 사람들의 마인드 셋과 생활에 측은지심을 느꼈다.(…) 그들은 소비하기 위해 일을 하고, 좋은 집과 좋은 정원, 좋은 부인을 얻는 것을 성공한 사람의 증표로 여긴다.” 미국의 의도를 일본은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소련이 붕괴되고 적이 필요했던 미국이 일본을 가상의 적으로 인식했는데도 말이다. “(1990년대) 미국의 대일본 공격은 실로 치밀하게 이루어졌다. 첫 번째 목표물은 일본의 은행이었지만 종국에는 일본인의 생활 그 자체를 바꾸는 데까지 계산된 행보였다.” 저자가 보기에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방법은 미국이 강요한 폭식하는 소비 형태를 그만두는 것이다. 옛날 일본에 많았던 ‘소상인’으로의 회귀다.

외부로 돌려진 현재에 대한 반성

인상평이 책의 주를 이루고 있지만 일본의 현재에 대한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점이 제일 안타깝다. 일본이야말로 폭력적 자본주의에 적극적으로 가세했다. 저자는 ‘대일본 공격’에 의해 새롭게 등장한 금융이 일본에서 성황을 이룬 결과, “은행 금리 20% 상한이라는 규제를 풀고 이자를 29%까지 허용하자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하지만 한국에서 50~60%에 이르는 고리대금업을 ‘창조’한 것은 일본 금융이었다.

농담으로라도 하지 말아야 할 말도 있다. 미국의 생활방식에 대한 혐오의 한편에선 독일 가정에 대한 친밀감을 드러낸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과 독일, 이탈리아는 독·이·일 방공협정을 맺었고 전쟁에 패한 역사가 있다. 세 나라를 비교하면 이탈리아만 가족 형태가 다르다. 일본인과 독일인 사이에 ‘다음에는 이탈리아 빼고 하자’라는 농담이 있는데, 의외로 정곡을 찌른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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