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를 좋아했다. 그리고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한때이건, 지금까지이건 우리는 모두 그의 팬이었다. 추종적 수준에서 그를 섬기느냐, 아니면 그의 노래가 과하다고 하다가도 어떤 순간이 오면 그의 노래를 열창하느냐 정도의 차이였다. 모두 기억하니, 그 형이 깔리는 목소리로 새벽을 지배하던 때를. 그 형이 죽었다는 게, 믿어지니. 바로 그 형이, 신해철이 죽었다. 우연찮게, 아니 맹렬하게 그가 필요했던 때가 있었다. 그가 나 를 불렀을 때쯤, 나에겐 그밖에 없었다. 를 한창 들을 땐, 그의 목소리가 아빠의 목소리보다 익숙했다. 그런데, 사람이라고 변하더라. 잊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주술처럼 휘감기던 그의 가사들이 버거워지고, 새벽 시간에 라디오를 듣는 일보다 더 화끈한 일이 많아지면서 나는 그를 잊었고, 그도 서서히 내려왔던 것 같다.
그러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 그를 꼭 다시 만나야 했다. 망설였다. 전화를 하려다 수화기를 놓았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선뜻 생각이 나질 않았다. 신호가 가는 동안은 계속 떨었던 것 같다. 그를 좋아했던 그때가, 맹렬하게 그가 필요했던 시간들이 생각나 울컥했다. 하지만 긴 설명은 필요치 않았다. 흔쾌했다. 대마초를 피울 권리를 국가가 일방적이고 일률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개인의 자기결정권에 반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것이 내가 그에게 할 얘기였다. 김부선씨가 제기했던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헌 신청, 세간에 ‘대마초 비범죄화 운동’으로 알려졌던 그 활동에서 그와 만났다. 나는 그를 기자회견에 불렀고, MBC 에서 패널 섭외 요청이 왔을 때, 망설임 없이 그를 추천했다. 많은 사람들을 대마초 비범죄화 활동에 섭외하려 했지만, 대체로 실패하고 성공하더라도 매우 소박한 차원의 동의였던 데 반해, 그는 거의 유일하게 논리로 그것을 이미 확신하던 ‘활동가’였다.
2005년 3월, 어렵게 ‘대마초 비범죄화’를 요구하는 문화예술인·문화예술단체 기자회견이 끝나고 그는 나에게 “내가 활동가가 다 됐다”며 “활동가는 좋은데 제발 오전에 하는 활동에선 빠지고 싶다”고 농을 쳤다. 오전에 이렇게 움직여본 게 10년 만의 일이라고도 했다. “연예인 티 내느냐”고 받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성의로움에, 격의 없음에 한참 감격했었다. 이미 팬이었음을 고백한 젊은 활동가에게 그는 그렇게 진심을 보여준, 그리고 진심을 행동으로 갚아준 최초의 연예인이었다. 신해철, 그는 내가 만난 최초의 ‘자유인’이었다. 연예인도 정치적 입장을 밝힐 수 있다는 수준의 자유를 넘어 그는 특정하고 실천적인 행위를 통해 자신을 둘러싼 ‘문화’를 교체해보고자 했다. 그리고 그걸 논리로 세상에 입증해보고자 했다. 자신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규범에 비껴서면서 동시에 그 규범에 영향을 줄 수 있던 이례적 존재였다.
언젠가 그가 고백했듯, 그의 요구는 때로 너무 성급하거나 혹은 가장 급진적인 것으로 포장돼 그를 괴롭히기도 했던 것 같다. 대마초 ‘합법화’냐 ‘비범죄화’냐의 논란이 뜨거웠을 때, 그는 “욕을 너무 먹어 정신이 없을 지경”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일을 또한 기꺼워했다. 녹화에 들어가며 “잘되면 운동 탓이고, 안 되면 내 탓”이라며 웃던 그 익살스러운 표정이 그의 영정 사진 위로 겹쳐질 때, 나는 정말 하염없이 한 시대가 지나가버렸단 생각에 아득해져왔다. 이제 또 누가 기꺼이 타인의 자유에 자신의 이름을 내주고, 그 자유를 위해 싸워주겠노라 흔쾌히 말하겠는가. 소주 한잔 사겠다고 했었는데, 시간은 흘러왔고 그는 벌써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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