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 가면 꽤 많은 종류의 연애기술서를 볼 수 있다. 누군가는 한탄한다. “무슨 사랑을 배워서 하냐.” 그러나 걱정하지 마라. 연애서가 연애에 별 도움이 안 됨을 이미 독자들은 알고 있어서, 의외로 이런 책을 잘 만들기도 팔기도 쉽지 않다. 이렇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사랑은 기술이 아님을 알지만, 그렇다고 사랑이 마음처럼 잘 되지는 않는다. 그럴 때 감정을 잘 다스리는 법을 알려주는 책보다 오히려 사랑에 대한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책을 권한다. 잊으려 애쓰기보다는 다시 사랑에 풍덩 빠지는 게 낫다. 옛말에 여자는 여자로 잊고, 남자는 남자로 잊으라 하지 않았나(아, 그런 옛말은 없다고?).
도 그런 책이다. 이 소설은 제41회 일본 문예상 수상작으로 열아홉 ‘나’와 서른아홉 ‘유리’의 이야기를 담았다. 스무 살 연상, 기혼녀, 자주 등장하는 섹스 장면, 이런 몇 단어면 충분히 줄거리는 짐작할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유사한 내용의 작품들과 매우 다르다. 많은 작가들이 ‘10대의 첫 경험’과 같은 소재를 다룰 때 위악과 냉소로 칠갑을 한다. 마치 그런 쿨한 태도가 성장과 성숙인 양. 그러나 이 작품은 훌륭하게도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작가 야마자키 나오코라는 이런 관계라면 반드시 일어나는 온갖 ‘잡스러움’을 단 한 번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평론가들은 지극히 투명한 문체, 담담하고 객관적인 묘사를 성공 요인으로 꼽는다. 그러나 모든 성공한 연애소설은 상업성과 대중성을 떠나 그 안에 사랑에 대한 진리를 담고 있다. 가 담고 있는 진리는 무엇일까. 힌트는 제목에 있다. 원제를 굳이 직역하면 ‘사람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가 된다. 이 소설이 말하는 사람의 섹스란 뭘까.
“외로워서 누군가를 만지고 싶다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소리다. 상대를 소중히 여기고 착실한 인간관계를 쌓아가면서, 애무는 천천히, 다정하게, 정성껏, 동시에 에로틱하게, 상대의 반응을 유심히 살피면서 해야 하는 것이다.” 자, 이제 사랑해서 자는 거냐, 자기 때문에 사랑하는 거냐는 논쟁은 그만해도 되겠다. 그냥 섹스를 저렇게 하면 사랑이 된다. 저건 물론 당시 스물일곱이던 작가의 음성이겠지만, 열아홉 남자애도 알고 있는 것이다.
작가 나오코라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이런 이야기를 했다. “성숙한 국가는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 대지진 이후 불완전한 사람들이 서로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며 정보를 교환하는 모습에서 활로를 찾는다.” 그 말처럼 나이가 들었다고 더 성숙한 사랑을 하는 게 아니다. 나이가 어려도, 서로가 연결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연결이 무엇이겠는가. 제목만으로 그걸 알았다고 생각되는가. 방심하지 말고 읽어보라. 100쪽도 안 되는 이 소설의 어느 한 문장도 허투루 넘어가지 못할 테니.김보경 웅진지식하우스 대표
<font color="#C21A1A">*‘사랑의 참고도서’</font>는 웅진지식하우스 김보경 대표가 책 속에 그려진 사랑의 의미와 가치 등을 곱씹어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3주마다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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