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10월혁명, 1·2차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 68혁명…. 혁명과 전쟁으로 점철된 20세기를 온몸으로 겪었던 아나키스트 알프레드 바르텔르미. “신도 조국도 주인도 없다”를 부르짖었던 그가 살아온 역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프랑스 작가이자 건축·미술비평가 미셸 라공의 장편 역사소설 (책세상 펴냄)은 알프레드 바르텔르미라는 프랑스인 아나키스트의 회고록이라는 형식을 빌려 20세기 혁명의 빛과 그늘을 담아낸다. 역사와 허구를 버무린 이 소설은 1917년 러시아 혁명정부, 1·2차 세계대전 전후의 혼란스러운 프랑스 등 역사의 현장을 되살린다. 레닌, 트로츠키, 고리키, 블룸, 마흐노, 소렐 등 역사 속 인물과 친구로 동지로 적으로 연대하고 반목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제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소설에는 노동자와 농민의 낙원 소비에트가 일당독재로 변질돼가는 모습이 날카롭게 묘사돼 있다. 알프레드는 러시아혁명을 변질시킨 주역들이 누구인지를 폭로하고 새로운 이상의 대두와 몰락을 면밀히 분석한 글을 모은 소책자를 출간한다. 글을 통해 러시아혁명을 이끈 주역들이 벌이는 탐욕스러운 권력투쟁을 고발한다.
“러시아에서 보낸 6년의 세월은 러시아혁명이 이상국가에서 관료주의로, 레닌에서 스탈린으로 천신만고 끝에 체결한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서 노동계급의 군국주의화로 변질된 시기이며, 사형 집행 폐지가 체카와 게페우의 지하 감옥에서 자행된 대규모 사형 집행으로 변질된 결정적 시기였다.” ‘혁명의 그늘’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그는 우리가 꿈꾸고 실현해야 할 진정한 혁명의 모습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것에 반대하고 삶을 사랑하며 언제나 자유롭고자 했던 알프레드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아나키즘, 파시즘 등으로 타올랐던 사상의 쟁투 속에서 권력자가 되거나 영웅이 되고자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언제나 주변부에 머물렀던 그는 “제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로 상징되는 “권력의 매독”을 경고하고 “한 권력을 또 다른 권력으로 대치하려는” 전쟁의 감시자로 살다 결국 이름 없는 노인으로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그는 패자로서 역사에서 잊혀졌지만 ‘삶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과 ‘자유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의지’를 지니고 투쟁해온 강인한 인간의 생명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자유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의지죽음을 앞둔 알프레드는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말한다. “점점 더 절대권력을 행사하게 된 국가가 신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이네. 이제는 자본가계급이나 농민계급, 노동자계급은 없어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국가가 배제된 삶이란 상상도 할 수 없지. (…) 국가가 승리자이고 개선장군이고 구세주인 셈이지. 국가가 아버지고 어머니인 셈이라고. 불안정하고 잔혹했던 지난 1세기가 지나간 후 마취약 같은 안정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지.”
프랑스에서 1990년에 출간된 이 소설은 1992년 으로 국내에서 번역·출판됐다. 오랫동안 절판됐다가 초판의 오류를 바로잡고 문장을 다듬어 다시 출간됐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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