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을 가꾸기 시작한 친구네에 놀러 갔다가 희한한 것을 보았다. 원통 모양으로 생긴 그것은 두 개의 쫀쫀한 끈이 달려 있어 엉덩이에 착 붙일 수 있다. 그것을 붙인 채 쭈그리고 앉으면 자연히 그 위에 걸터앉게 돼 편하게 밭일을 할 수 있다. 엉덩이에 붙이는 간이의자인 셈이다. 착용한 모습이 상당히 웃기는 이 도구(사진)는, 그러나 내가 직접 체험해보니 앉을 때 ‘으흐음∼’ 하는 신음 소리가 새나올 정도로 편했다. 몇 걸음 걸어가 다른 지점에 앉을 때도 의자를 들어서 옮길 필요가 없기 때문에 무척 편리하다. 몇 번 사용해봤더니 이것 없이 쭈그리고 앉을 때는 어쩐지 억울하단 느낌이 들 정도였다. 무게도 아주 가벼워서 나물 캐러 다니는 아주머니들은 처음부터 이것을 엉덩이에 붙인 채 산에 올라간단다.
그러고 보면 몸에 무언가를 부착하는 아이디어는 많다. 의사들이 진료할 때 이마에 붙이는 반사경인 헤드미러는 양손을 자유롭게 하면서 환자의 입속 등을 밝게 비춰볼 수 있게 하는 기구다. 의사 하면 청진기에 헤드미러를 붙인 모습이 바로 연상될 만큼 자연스럽게 우리 인식에 자리하고 있지만, 솔직히 처음 이마에 반사경을 붙여본 모습은 꽤나 웃겼을 것이다. 광부나 야간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쓰는 헤드랜턴도 비슷한 아이디어다. 등산용품이나 스포츠용품 중엔 몸에 이런저런 기구를 부착하기 위한 도구가 많다. 더 넓게 생각해보면 아기띠나 포대기도 아기를 부모 몸에 부착시키면서도 팔을 자유롭게 하기 위한 아이디어라 하겠다.
옷에 천을 덧대어 한 면만 남기고 나머지 면을 둘러 기우면 거기에 이런저런 물건을 넣거나 손을 집어넣을 수 있다. 그게 포켓이다. 포켓은 손으로 들거나 가방이나 보따리를 메지 않고도 몸에 무언가를 지니기 위해 탄생한 아이디어다.
원래 있던 물건에 무언가를 부착해 새로운 것이 탄생한 예를 떠올려보자. 파우더 등 화장품 케이스에도 거울 있는 곳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게끔 조그만 거울이 부착돼 있다. 지우개가 달린 연필도 있고, 롤빗을 부착한 헤어드라이어도 있다. 어찌 보면 발코니도 부착의 아이디어라 하겠다.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햇빛과 바람을 즐길 수 있도록 건물 외벽에 부착해놓은 작은 공간이니까. 얼마 전엔 세탁소에 들러 명함을 달랬더니 뒷면이 고무자석으로 된 조그만 명함을 주셨다. 나는 그것을 냉장고 옆면에 붙여놓았다.
지금은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처음부터 그렇게 탄생한 것은 아니다. 문득 이런 걸 깨달을 때, 타성으로 굳어 있던 우리의 내부는 좀더 유연해진다. 뜨거운 컵을 잡을 때 손이 데지 않도록 손잡이를 부착하는 것은 어떤가. 이 문장을 써놓고 가만보니 이미 가야시대 토기에도 지금의 머그잔과 아주 흡사한 손잡이 잔이 많았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흙으로 빚은 잔에 손잡이를 만들어 붙여보던 최초의 어느 인간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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