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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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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눕고 귀 막아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취약계층 타깃 삼아 광고 폭탄 퍼붓는 보험·대출 업체
캐릭터·로고송 각인 효과로 경계심 무장해제
등록 2014-03-22 17:19 수정 2020-05-03 04:27

거리에서 사람들이 “청년에게 일자리를, 노인에게 복지를” 목 놓아 외친다. 간절한 목소리는 전달될 회로를 찾지 못하고 흩어진다. 그 시간에 안방으로 통하는 촘촘한 회로를 확보한 텔레비전은 속삭인다. “청년에게 대출을, 노인에게 보험을.” 공공성의 가면을 쓴 공중파 광고와 달리 규제가 덜한 종합편성채널(종편)과 케이블채널은 사회의 숨겨진 무의식을 드러낸다. 불안정 노동을 마친 청년이 집으로 돌아온 저녁, 황혼의 부부가 쓸쓸한 시간을 보내는 오후, 종편과 케이블에선 끝없이 보험광고와 대출광고가 나온다. 이제는 전파를 타지 않지만 아직도 목소리가 생생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갓난아이도 들으면 고개를 돌리는 산와대부(산와머니) 광고의 로고송 “산와~ 산와~ 산와머니~ 걱정 마세요~”. 단언컨대, 러시앤캐시(A&P파이낸셜대부)의 무대리는 지난 10년 동안, 좋건 싫건 가장 기억에 남는 광고 캐릭터가 됐다.

청년에게 대출을, 노인에게 보험을

나라도 하지 못한 위로를 광고가 대신한다. 단, 먼저 위협을 해야 위로의 효과가 더한다. ‘직진’ 이순재씨가 묻는다. “대한민국 사망 원인 1위, 2위, 3위 어르신들은 대비해두셨습니까?” 옆에 뜨는 자막은 ‘1위 암, 2위 뇌혈관질환, 3위 심장질환’. 라디오 방송 스튜디오에 앉은 순재씨가 앉아서 문답한다. 그는 “안타깝지만 3대 큰 병 환자의 절반 이상이 60세 이상인 어르신”이라고 친절하게 ‘팩트’를 확인시켜준다. 암보험 광고는 이토록 친절하다. 건강 고민을 토로할 상대가 없는 노인과 대화도 나눈다. 이번엔 무대를 옮겨 이순재씨가 강연을 한다. 방청자 중 경상도 억양의 어르신이 질문한다. “여기서는 가입될 것처럼 이야기해놓고 나중에 전화를 허면은 다른 소리를 하는 거 아입니까?” 이순재 멘토가 답한다. “그럴 리가요. 어른들이 드시는 보험 아닙니까. 병이 있어도 가입할 수 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상담원 여성이 받아서 답한다. “네, 맞습니다. 무진단·무심사로 가입시켜드리고, 가입 2년 후 사망시 보험금을 일시금으로 지급해드립니다.” 통계의 공포로 시작해 보험의 대안으로 끝나는 전형적인 형식의 암보험·실버보험 광고다. 이런 형식에 대해 안주아 동신대 교수(언론광고학)는 “위험이 개인마다 다른데 천편일률적인 통계를 통해 위험을 과대 지각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무진단·무심사’ 실버보험은 이름도 불러준다. “병이 있으신 69세 김현순 할머님, 약을 드시고 계신 78세 김종부 할아버님, 수술을 받으신 적이 있는 89세 서인숙 할머님, 이분들 모두 쉽게 실버보험에 가입되셨습니다.” 그렇게 이름을 불러주자 외로운 고객님, 어느새 꽃이 된다. 이번엔 AIA생명 차례다. 역시나 공신력 ‘돋는’ 토크쇼 무대다. 손범수 아나운서가 “나는 꼭 암에 걸릴 거 같다 하시는 분?” 하고 묻는다. 청중이 조용한 가운데 그는 “하지만 우리가 평생 암에 걸릴 확률은 36%”라고 역시나 친절히 알려준다. 형식의 진화는 고부간 갈등으로 이어진다. 광고는 얄미운 며느리 면박도 준다. 중·장년에게 익숙한 방송인 송도순씨가 며느리 역할의 인물과 대화를 나눈다. 며느리가 선수를 친다. “저희 어머니는 암보험을 아는 사람 말만 믿고 들으시려는 거예요.” 송도순 어머니가 반박한다. “암보험이라고 뭐가 다르니. 어른들은 딱 보면 딱 알아. 저렇게 아는 체를 해.” 이렇게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공방이 오간 다음, 손범수 아나운서가 등장해 어머니의 손을 들어준다. 그런 보험 “있습니다”라고. “보험료 오르지 않고 낸 보험료 다 돌려받는” 암보험이 있단다.

통계로 어르고 상담으로 구슬리고

어디선가 보았던 풍경의 데자뷔. 노인의 설움과 가족의 갈등과 건강의 위기를 보살피고 중재하고 위로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끝없이 갈등을 확대재생산하는 종편과 꼭 닮았다. 보험광고는 불안산업이자 위로산업이다. 윤용찬 보험금숨은그림찾기 교육센터 센터장은 “건강보험의 보장성과 복지 수준이 떨어지는 현실에서 공포 마케팅을 하는 보험광고는 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보험에 가입하지 말라는 말로 불안심리를 설득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불완전한 건강보험과 복지체계가 가져온 구조적 산물이란 것이다. 이런 불안산업의 수혜자도 있다. 노인을 대변하는 이미지를 가진 연예인이나 공신력이 있다고 믿어지는 아나운서다. 그들에게 보험광고 모델은 블루오션이다. 윤용찬 센터장은 “방송이 곧 공신력이라고 믿고 살아온 고령층은 보험광고의 취약계층”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암 걸려서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면 어쩌나’ 하는 한국 부모들의 걱정이 더해진다”고 덧붙였다. 실제 광고에서 이순재씨는 “보험도 없이 온갖 치료 다 받다보면 자식한테까지 손 벌리고 딱한 노릇 아닙니까?”라고 부모의 마음을 대변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지만, 노인을 위한 보험은 있다. 광고가 타전하는 메시지다.

고령층에게 익숙하고 신뢰감을 주는 인물들이 실버보험·암보험 광고의 모델로 기용된다. 라이나생명 보험 광고를 하는 배우 이순재씨, AIA생명 모델인 아나운서 손범수씨(왼쪽부터).

고령층에게 익숙하고 신뢰감을 주는 인물들이 실버보험·암보험 광고의 모델로 기용된다. 라이나생명 보험 광고를 하는 배우 이순재씨, AIA생명 모델인 아나운서 손범수씨(왼쪽부터).

“대출, 묻지도 따지지도 못하고 거절된 적 있습니까?” ‘이번엔 러시앤캐시’ 광고의 무과장이 묻는다. 강의를 하던 무과장, 칠판에 “누구나 무상담 100만원이요. 계약직, 휴직자 다 된다는 말이쥬”라고 역시 친절하게 대출할 그대를 부른다. 혁혁한 광고 효과를 인정받아 무대리에서 무과장으로 승진한 이 캐릭터는 웬만한 어린이도 알 만큼 유명하다. 지난해 11월 금융정의연대는 서울 지역 4~6학년 초등학생 361명을 대상으로 대부업 광고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응답한 어린이들이 ‘대출광고 중 기억되는 장면’으로 꼽은 1위는 무과장(196명), 2위는 산와머니(92명)였다. 이 조사에서 ‘대부업 광고를 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어린이 비율은 94.7%에 이른다. 광고를 접한 매체는 TV(79.2%)가 압도적이었다. 2007년 이후 대부업 광고는 종편과 케이블에서만 방영되는데도 이렇게 유명하다.

물량 공세의 결과다. ‘러시앤캐시’의 A&P파이낸셜 등 상위 10개 대부업체가 지난해 쏟아부은 광고액만 500여억원으로 추정된다. 이학영 민주당 의원실 조사를 보면, A&P파이낸셜대부(러시앤캐시)의 광고는 지난해 1~10월 12만2188회 방영됐다. 하루 평균 402회의 광고가 나간 것이다. 산와대부(산와머니) 광고도 하루 평균 72번 방송됐다. 전체 케이블 광고 중에 대부업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은 10% 이상이다. 얼마나 자주 나오는지 어린이가 증명한다. 금융정의연대 조사에 응답한 어린이 중 ‘하루에 10회 이상 대부업 광고를 보았다’는 비율만 12.2%(44명)에 달했다. 제윤경 사회적 기업 에듀머니 대표는 대부업 광고의 위험성에 대해 “화면에 화폐라는 자극적인 도구가 등장해 더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강연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가짜 돈을 보여줘도 흥분한다”며 “화폐 자체가 소유 심리를 자극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대출의 위험성을 알리는 문구가 광고 시간의 5분의 1 이상 노출되지만, 숨겨진 1인치 같은 활자를 제대로 보기란 쉽지 않다. 귀여운 무대리의 러시앤캐시, “걱정 마세요”라고 시름을 덜어주는 산와머니, 유쾌한 봉식이의 리드코프가 챙기는 이자율이 37~39%(2012년 12월 기준)인지는 광고를 봐도 잘 모른다.

광고 물량 공세… 초딩도 외운다

초기에 ‘무담보’를 외치던 대부업 광고는 이제 청년의 친구처럼 다가온다. 도전하는 여성 신입사원이 나오는 러시앤캐시의 기업 이미지 광고는 물론이고, 젊은 남녀의 대화를 통해 ‘빠르고 간편한 서비스’를 강조한 광고도 그렇다. “버스랑 지하철만 탈 수 있나. 바쁠 땐 택시도 타고.” 대출을 했다고 하자 이자율 걱정을 하는 그녀에게 그가 하는 말이다. 이 광고는 “조금 비싼 대신” “음… 편하고 안심되는 거?”라는 대화로 이어진다. 이렇게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광고의 약발은 만만치 않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2012년 말 비은행 금융기관에서 신용대출을 받은 청년층(15~19살)의 48.3%가 이자율 30% 이상의 대부업체·저축은행에서 돈을 빌렸다. 30살 이상 중·장년층의 19.6%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나아가 광고는 대출로 이어진다. 에듀머니가 2013년 10월 조사한 자료에 바탕하면, 서울에 살거나 직장을 다니는 대부업 이용 경험자들이 대출을 알게 된 계기로는 TV 광고(26.5%)가 가장 많았다.

여성을 향한 광고도 유난히 많다. 러시앤캐시는 여성 전용 대출 계열사 미즈사랑을 따로 두고 있다. 미즈사랑은 ‘여우식당’을 통해 친근한 이미지를 구축했다. 미즈사랑을 상징하는 주인이 손님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시리즈다. 제주 해녀들이 단체 미팅을 나가야 하는데 옷이 없으면 “걱정 맙서” 하면서 검은 해녀복에 색을 입히는 붓을 들고 나서고, 전주에서 손님이 “전라도 여자가 카레 하나 못 맹근다고 대판 했어야” 하면 주인이 “뭐여 카레가 별거여?” 하면서 ‘1분 카레’를 내놓는 식이다. 쉽고 빠른 대출이란 것이다. 최근엔 방송인 브로닌이 등장한 광고도 전파를 타고 있다. 산와머니도 대출을 받은 주부가 “산와머니 덕분에 즐거워졌어요”라고 말하는 경험담 형식의 광고를 내보냈다. 이런 여성 대상 광고에 대해 제윤경 대표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대출 회수율이 좋고 추심이 쉽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리하여 가계부채 1천조원 시대, 지난해 대부업 이용자는 250만 명이었고 시장 규모는 8조원에 달했다. 금융정의연대 설문에서 아이들에게 대출광고 중 기억되는 장면을 쓰라고 했더니 “무과장 사랑해요” “‘산와~ 산와~ 산와머니~’ 노래를 부르는 장면” 등이 나왔다. 심지어 “단박대출” “3초면 가능합니다” 같은 구체적 광고문구를 언급하기도 했다. 보험광고의 약발도 살아 있다. 특정 보험 광고만 나오면 아기가 갑자기 텔레비전에 집중한다는 엄마들의 경험담이 인터넷에 떠돈다. 보험광고는 친숙한 모델을 통해 노인들의 손을 잡아주는 이미지를 얻었고, 빅모델이 출연을 꺼리는 대부업 광고는 일관된 캐릭터와 로고송을 통해 인지도를 쌓았다.

대부업 광고 반대운동 벌이는 시민단체

이런 현실을 바꾸려는 노력도 있다. 금융정의연대·에듀머니 등이 참여한 금융소비자네트워크는 지난해 11월부터 대부업 광고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정치권도 나섰다. 이학영 민주당 의원은 대부업체의 텔레비전 광고를 금하는 대부업법 관련 개정안을 내놓았고,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은 아동·청소년 시청 시간대에 대부업 광고를 금지하는 안을 내놓았다. 이 개정안은 오는 4월 국회에서 논의된다. 제윤경 대표는 “광고에 취약한 계층일수록 방송을 보는 시간이 길다”고 서글픈 현실을 다시 짚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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