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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신스틸러’

등록 2014-01-30 15:44 수정 2020-05-03 04:27
SBS 제공

SBS 제공

이선균·이연희의 뽀뽀질은 유치하다

“뭔 남자가 돈으로 꼬시냐?” 그럼 뭐로 꼬시냐고? (MBC)의 정선생(이성민)이 온몸으로 보여준다. 애초에 나는 담배가게 아가씨 이연희의 풋풋한 미소에 이끌려 TV 앞에 턱을 괴고 앉았다. 내 평생 혐연론자로 살아왔다만, 만약 고등학교 시절 동네에 저런 소녀가 있었다면 지금쯤 황사 눈발 내리치는 놀이터에서 꽁초를 빨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그러나 정선생과 고화정(송선미)이 김형준(이선균), 이연희(오지영)를 찾으러 제주 감귤 아가씨 선발대회를 갈 때부터 나의 시선은 다른 데 꽂히고 있었다. 이 죽일 놈의 어른들의 사랑. 특히 저 이성민이 연기하는 순정파 삼류 건달을 보라. 자신을 미워해 옆자리에도 앉지 않는 송선미를 억지로 택시에 태우며 “야, 타!” 하는, 저 촌스러우면서도 처절한 사랑은 뭐냐? “아무래도 난 돌아가야겠어.” 주제곡이 다시 등장해야 할 장면은 가 아니라 여기였다. 갑자기 이선균·이연희의 티격태격과 뽀뽀질이 유치해 보이기 시작했다. 자체는 중반 이후 처지는 느낌이지만, 이 남자가 아파할 때마다 제세동기 소생술을 받는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이미숙에게 겨울날 길바닥에서 뒤통수를 후려맞고, 임예진에게 찜질방에서 고무장갑으로 맞고, 조폭에게 줄기차게 얻어맞고… 차지게도 맞는 장면이 많다. 밟아야 할 자를 사랑하고, 때려야 할 사람 대신 얻어맞는다. 그 대신 TV 앞에 앉은 모든 자의 시선을 빼앗아버린다. 이명석 대중문화비평가


만화책임을 일깨우는 만화방 주인

(SBS) 안에는 톱스타 천송이(전지현)와 꽃미남 외계인 도민준(김수현)처럼 반짝반짝 눈부신 별만 있는 게 아니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소시오패스 이재경(신성록)처럼 칠흑 같은 어둠도 있고, 인위적으로 천사의 미소를 꾸며내는 유세미(유인나)처럼 별빛으로 착각하기 쉬운 인공위성 같은 인물도 있다. 그 여러 존재들이 부딪혀 만들어내는, 아름답고 위험하며 흥미진진한 드라마가 다. 그런데 이 꿈결 같은 판타지 속에서 유일하게 현실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동네 만화방 주인 홍사장(홍진경)이다. 시청자의 심정을 대변하듯 도민준의 미모에 무한 감탄사를 늘어놓고 천송이의 자태를 질투하기도 하는 홍사장의 모습은, 이 드라마가 그녀의 만화책과도 같은 세계임을 깨닫게 하며 극에 흥미로운 거리감을 불어넣는다. 가령 5회에서 자꾸만 송이를 지켜주고 도와주게 되는 민준의 모습 위로 ‘마음의 준비 따윈 할 시간 없이 느닷없이, 뜬금없이, 어이없이 훅 치고 들어오는 것이 첫사랑’이라는 홍사장의 대사가 흐르는 장면은 그녀의 관찰자적 위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그녀가 종종 자신의 위치를 잊고 판타지에 개입하려 할 때도, 드라마는 “(물건) 안 사요!” 같은 단호한 거절을 통해 그녀를 현실로 다시 소환한다. 그때 꿈에서 깬 듯한 홍진경의 표정 연기는 이 영리한 판타지의 액자 구조를 완성하는 결정적 요소라 하겠다. 이만하면 두고두고 기억될 신스틸러다.김선영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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