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자료
“나는 암흑 속으로 돌진한다.”
살아서 그가 쓴 마지막 글(‘노회찬과 주대환을 보내며’)의 마지막 문장이다. 그는 45살 평생을 암흑 같았던 진보정치에 작은 빛 하나 밝히려고 살았다. “신병에 눈가 짓무른 연약한 사내”로서 그가 세상과 작별할 때, 언젠가 잠깐 반짝였던 진보정치는 다시 암흑이었다. 그는 빛을 그리워하며 떠난 이들을 뒤따르지 않았다. 기꺼이 암흑 속으로 돌진하며 암흑 속에서 죽었다.
그, 이재영(전 진보신당 정책위원회 의장). 누군가는 그를 ‘진보정치의 두뇌’라고 했고, 누군가는 ‘진보정책의 설계자’라고 했다. 그가 대장암으로 숨을 멈췄을 때(2012년 12월12일) ‘진보정치의 꽃이 졌다’는 말과, ‘진보정치의 별이 떨어졌다’는 말과, ‘진보정당운동의 심장이 멈췄다’는 말이 다투어 그를 추모했다. 새누리당조차 입에 올리는 ‘부유세’와 민주당이 공약한 ‘무상의료·무상교육’은 그의 손을 거쳐 태어났다. 한국 정치는 그의 몸이 재가 된 뒤에야 빚진 사실을 깨달았다.
1주기가 됐다. 추모사업회가 유고집 두 권을 펴냈다. 그가 진보정치의 알맹이를 채우고 키우며 쓴 글들이 와 (각각 레디앙·해피스토리 펴냄)란 제목으로 묶였다.
엮은 이들은 첫 번째 책의 날개에 썼다. “이재영은 가슴에는 원대한 꿈을 지녔지만 두 발은 땅을 딛고 있었다.” 꿈꾸는 자로서 이재영은 현실이 닿을 수 없는 공허한 꿈이 아니라 현실의 비루함을 이기고 진보시키는 구체적인 꿈을 이야기했다. 그 꿈을 ‘실재’로 바꾸려는 치열한 노력과 헌신과 분노가 그의 병을 키웠다. 그의 글들엔 ‘국민승리21(1997년) 창당→민주노동당 탄생(2000년)과 개화(2004년) 및 분당(2008년)→진보신당 창당(2008년)과 분열(2011년)→통합진보당 창당(2011년)과 진보정의당 분당(2012년)’이라는 진보정치의 전진과 퇴보를 지켜보며 웃고 울었던 한 정책가의 고민이 오롯하다. 자주파의 민주노동당 장악과 다가오는 위기를 우려했던 그의 외침은 진보정당의 존재감 자체가 희박해져버린 현재 더욱 가슴 아리다. “무릇 정치는 도전이고, 모든 도전은 실패를 동반한다. 그런데 현재의 민주노동당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 도전을 두려워하고, 끝끝내 승리를 거부할 것이다.”(2007년 ‘이제 민주노동당을 넘자’) 새 진보정당을 고민하며 쓴 글(2008년 ‘새 진보정당에 대한 생각 초(草)’)에선 파열에 대한 묵시적 예견도 읽힌다. “자주파는 북으로부터 자주적이지 못하고, 평등파는 불안정노동자에게 평등하지 않다. 사회주의자들은 유럽 사민당만 못하고, 사민주의자들은 신민당보다 보수적이다. 그들은 모두 ‘운동’의 틀 안에서만 ‘자주적이고, 평등하고, 혁명적’이다.”
오늘 진보정치는 어둡다. 국민승리21을 기획하던 시절보다 정권은 더욱 폭력적이고 국민의 시선은 더욱 차갑다. 하지만 끝내 진보정치의 꿈이 꺾일 수 없는 이유도 17년 전 그의 글에서 찾을 수 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하더라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불가침의 원리인 자본주의사회가 지속되는 한 진보정당의 유효함은 결코 퇴색하지 않을 것이다.”(1996년 ‘진보정당 건설에 관련된 몇 가지 단상’)
암흑으로 돌진하며 그는 생전에 자주 말했다. “우리는 지는 법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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