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의 스포츠 스타는 누가 뭐래도 류현진이다. 올해 류현진이 거둔 성적은 그의 메이저리그 진출에 반신반의했던 국내외 야구 관계자들 모두를 경악시켰고, 일주일에 한 번꼴로 찾아오는 류현진의 등판일이면 국내 기업의 업무 능률은 바닥으로 떨어질 정도였다.
그리고 2013년 9월24일, 1년 내내 공에 맞고 출루하고 쉴 틈 없이 안타를 때려내면서도 류현진의 충격적인 등장에 가려 관심을 받지 못하던 한국인 타자는 9회말 3루 도루에 성공하며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위대한 기록에 방점을 찍었다. 바로 내셔널리그 최초로 20(홈런)-20(도루)-100(포볼)-100(득점)에 성공한 1번 타자, 추신수다.
지난 7월 다저스와의 경기를 앞두고 로스앤젤레스(LA)에 도착한 추신수는 류현진과의 맞대결을 취재하기 위해 모여든 한국 취재진들을 보고 “낯설다”고 표현했다. 한인이 많은 도시의 팀에서 뛰어본 경험이 없는 한국인 타자 추신수는 언제나 무관심과 외로움 속에서 혼자 일어서야 했던 남자다. 박지성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류현진의 다저스가 ‘국민구단’이 될 때도, 추신수의 클리블랜드와 신시내티는 한 번도 그렇게 불려본 적이 없다.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동양인 타자 중 유일무이한 개척의 역사를 가진 선수다. 그 어떤 일본 출신 메이저리거들과는 달리, 그는 자국 리그를 거치지 않고 고등학교 졸업 직후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10년 넘게 타자로 살아남은 유일한 동양인이다. 일본 선수들이 자국 리그를 ‘씹어먹은 뒤’ 기량을 검증받고 부를 축적한 뒤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메이저리그에 양복을 입고 화려하게 입성하는 것과 달리, 추신수는 스무 살의 나이에 ‘추리닝’과 야구 가방을 메고 그 넓고 쓸쓸한 땅에 도착해 메마른 햄버거로 인생을 진행시키며 여기까지 진화해온 선수다. 예전의 박찬호와 지금의 추신수가 일본 출신의 메이저리그 선수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것은, 그들의 영어가 황야에 던져진 스무 살 청년들이 생존을 위해 터득해야 하는 절박한 무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박찬호와 추신수가 유창한 영어로 인터뷰하는 것을 보면 이상하게 안쓰러운 마음부터 든다.)
추신수는 곧잘 메이저리그의 일본인 타자 스즈키 이치로와 마쓰이 히데키에 비교된다. 이치로는 명예의 전당 입성이 유력한 전설이고 마쓰이는 뉴욕 양키스에서 별도로 은퇴식까지 거행해준 훌륭한 타자였지만, 추신수는 이치로보다 통산 출루율이 높고 마쓰이에게 없는 스피드와 수비 능력을 가졌다. 약팀에서 뛰며 타이틀 홀더가 될 정도의 임팩트 있는 성적은 없지만 늘 조용하고 꾸준하게 전진해온 선수가 추신수다. 2013년, 추신수가 혼자 외롭게 완성해낸 위대한 역사는, 한국인들만의 명예의 전당에 고이 모셔둬야 한다. (올해 메이저리그의 유일한 20승 투수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맥스 슈어저는 클리블랜드 시절의 추신수에게 21타수 12안타 2홈런 6볼넷을 내주며 배팅볼 기계처럼 얻어맞은 투수다. 얼마 전 그는 디트로이트 지역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올해 최고의 뉴스로 추신수의 내셔널리그 이적 소식을 꼽았다.)
올가을, 추신수는 메이저리그 입성 이후 처음 포스트시즌을 치른다. LA 다저스 류현진의 포스트시즌 3선발 여부에 관심이 집중돼 있지만, 신시내티의 1번 타자 추신수가 치를 첫 가을야구가 더는 외롭지 않길 바란다. 우리가 떠나보내고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류현진과 달리, 무심했던 우리에게 혼자 힘으로 다가온 추신수에게도 한국 야구팬의 긍지와 응원을 보내야 할 때다. Go, Choo!
김준 칼럼니스트·사직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