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사춘기 청소년 시절 나에게 셰익스피어를 아주 강렬하게 각인시켜준 작품이다. 그 어느 날 저녁, 나는 예감하기 시작했다. 사랑이란 축복인 동시에 저주요, 은총이자 액운이며, 한계를 모르는 중독이라는 사실을, 사랑과 죽음은 하나이며,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 까닭에 사랑한다는 것을.”
<font size="4"> 수준급 화가인 귄터 그라스의 모습 </font>
그렇다. 사랑은 인간의 숙명이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이름의 달콤한 독약을 기꺼이 마시는 이유다. “사랑은 외로움을 치유하는 행위이지만, 자주, 더 큰 외로움을 낳는다”는 어느 작가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지만, 우리는 끝내 사랑을 포기할 수 없다. 문학의 가장 큰 질료가 사랑인 것은 그래서 당연해 보인다.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김지선 옮김·문학동네 펴냄)는 사랑과 삶을 노래한 작가들에게 띄우는 한 문학평론가의 러브레터다. 우연한 기회에 작가들의 초상화를 수집하게 됐던 저자가 그 그림들 위에 쓴 연서다.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독일어로 글을 쓰는 문학평론가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이다. 그의 이름 앞에 늘 따라붙는 ‘문학의 교황’이라는 레테르는, 현재 독일 문학계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상을 가늠케 한다. 독일인의 98%가 그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설문 결과도 있다고 하니, 문학평론가로서는 ‘스타’라고 불릴 만한 거의 유일한 인물이 아닐까 싶다.
1967년 저자는 당시 몸담고 있던 회사로부터 집필 의뢰와 함께 그림 한 점을 받았다. 그때 그가 받은 그림은 조각가이자 화가인 구스타프 자이츠가 그린 브레히트의 초상화였다. 그것을 계기로 저자는 이후 주로 독일 작가들의 초상화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 책에는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가 평생 수집한 작가들의 초상화가 60점 넘게 실려 있다.
철판화, 석판화부터 에칭, 드라이포인트, 연필 스케치까지 그림의 종류 또한 다양하다. 특히 브라질의 그래픽아티스트 카시오 로레다노가 그린 하이네(72쪽), 슈니츨러(128쪽), 토마스 만(200쪽), 카프카(216쪽), 브레히트(252쪽), 귄터 그라스(329쪽) 등의 개성 넘치는 초상화는 처음 보는 순간부터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귄터 그라스가 그린 뛰어난 그림들(316·320·324쪽)은, 수준급 화가로서의 귄터 그라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이런 작가들의 초상화를 한점 한점 소개하며 그들의 삶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놓는다. 그의 글은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유쾌하지만, 특유의 솔직하고 명료한 표현만큼은 일관된다.
<font size="4"> 연애편지 쓰듯 한 문학비평 </font>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가 ‘문학의 교황’으로 군림할 수 있는 이유는, 어정쩡한 객관의 탈을 버리고 자기만의 뚜렷한 시선으로 연애편지 쓰듯 문학비평을 했다는 점에 있는 것 같다. 다른 많은 문학평론가들과 다르게 그는 에둘러 말하지 않고, 어렵게 말하지 않으며,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서만 말한다. 이 책은 문학평론가도 이처럼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문학에 대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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