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알기 전에는 패션지 가 뭔지도 몰랐다. 새로 출근한 출판사에서 내게 맡긴 첫 원고 속에는 처음 들어보는 패션 디자이너와 브랜드가 넘실대고 ‘브래지어’와 ‘팬티’, ‘섹스’라는 단어가 아무렇지 않게 넘쳐났다. 그 아찔한 글 속을 헤매어다니다 간신히 정리해서 세상에 나온 책이 의 전 에디터 김경의 다. 나는 ‘글발’ 좋기로 소문난 피처 기자 김경의 첫 책 편집자였다.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는 낯섦에 더해 그녀의 글 속에 담긴 위악, 그리고 다소간 감정의 과장이 살짝 불편했지만, 그 모든 것을 누그러뜨린 것은 센 듯하나 촉촉한 물기가 밴 그녀의 신파 정서였다. 게다가 화려한 패션판의 중심에 서 있으면서도 그녀의 시선은 잘나고 번드르르한 인물보다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는 개성이 도드라진 사람들’에 놓인 듯 보였는데, 나는 비로소 그녀의 편이 되고 말았다(편집자가 저자의 편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책의 퀄리티에 조금은 영향을 끼친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났다. 그사이 드문드문 그녀가 꽤나 긴 여행을 다녀와서 책을 펴냈고, 목공일을 배우고 있으며,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오랜만에 새 책을 출간했다. 대놓고 자신의 마이너 취향을 드러낸 새 책의 제목은 . 책의 슬로건쯤 되는 것은 서문에서도 맨 앞에 나오는 톨스토이의 글귀 “취향이란 인간 그 자체다”.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 스타일을 논하던 그녀가 이번에는 취향을 이야기한다. 스타일이란 것이 결국 취향이 외형화된 것이라 한다면, 김경의 이번 책은 자신의 정체성과 세계관에 대한 좀더 근본적인 고백을 담고 있다. 이현세의 까치보다는 고행석의 구영탄을 좋아했던 꼬꼬마 아가씨는 결국 구영탄 닮은 가난한 화가와 ‘진정한’ 사랑에 빠져 혼인신고를 했고, 어린 시절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며 ‘원샷 원킬’로 뱀을 잡던 3년간의 시골 체험은 강원도 평창에서 흙집을 짓고 살 궁리의 씨앗이 되었다. 물론 자신의 주종목인 패션·트렌드와 사회 사이에 대한 감각적이고 통찰력 있는 시각은 새 책에서도 여지없이 빛난다.
김경의 가장 매력적인 글은 ‘새 코를 장만했다’며 자신의 코 성형에 대해 이야기하는 식의 푼수기와 경박을 가장해 세상 사람들의 감추어진 속물 근성에 똥침을 날리는 도발을 동반하는데, 서른 즈음에서 마흔 즈음으로 성장한 여자의 시선은 긴장감 있는 도발이 잦아든 반면, 예전보다 전반적으로 평온해졌다. 자신의 멘토, 패티 스미스처럼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창조적 열정을 지닌 늙은 키드의 삶을 소망한다는 마흔한 살의 키드 김경. 어여 흙집도 짓고, 산과 들을 쏘다니고, 총총한 별빛 아래서 남편과 함께 막걸리의 흥에 취해 춤도 추며, 새로운 도발을 준비하시기를…. 경씨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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