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꼬장’을 부리고 싶을 때가 있다. 맘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의도하지 않 게 관계가 얽혔을 때, 그것이 한계치를 넘어 쌓이고 쌓였을 때는 ‘막힌 속을 확 뚫어줘야 하는데’, 대개는 소맥 몇 잔의 힘을 빌려 넋두리 몇 마디를 내던지고 말 지만, 그걸 넘어서 아무런 눈치도 안 보고 발광을 해대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그렇다고 아무 날, 아무에게나 감정을 폭발시킬 수는 없는 노릇인데, 그럴 때는 나 대신 속 시원히 질러주는 옆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모두가 눈치만 살피고 있을 때 홀로 일어나 ‘아니다’라고 세게 내지르는 사람이 있을 때 느끼는 대리만족 같은 거 말이다.
김윤경 장편소설 <사랑이 채우다>와 <사랑이 달리다>
길고 지루한 장마를 보내면서 신이 나서 읽은 소설책이 있는데, 나는 그 책 속에 서 반가운 ‘꼬장’의 대리자를 만났다. 연작소설이랄 수 있는 심윤경 작가의 속 서른아홉 김혜나씨가 그 주인공. 트럭운전사 출 신이지만 병원장으로 신분 세탁한 아빠, ‘이대 나온’ 칠순 앞둔 곱디고운 엄마, 수 십억원대 금융사고를 밥 먹듯 쳐대는 막장 작은오빠, 머리에 똥만 찬 속물 큰오 빠, 어릴 적 동네 친구였다가 지금은 남편인 모범생 성민. 이들이 평생 돈 버는 일 에는 젬병에다 아빠가 결제해주는 카드 한 장 믿고 살던 혜나의 주변 인물들이 다. 굳이 따지고 들자면 세태소설쯤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이 소설의 뼈대를 이루 는 것은, 이제는 그리 낯설지도 않은 속물 가족들의 아귀다툼과 어쨌거나 ‘불륜 코드’가 가미된 러브라인이지만, 독자의 눈을 빨아들이는 압도적인 흡인력은 펄 떡펄떡 살아 숨 쉬는 인물들의 캐릭터와 방언 터지듯 뿜어나오는 그들의 대사발 덕분이다.
그중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단연 “귀여운 거 하나로 먹고사는” 주인공 혜나씨. 주로 돈 때문에 얽힌 이 막장 가족의 꼬인 실타래를 푸는 일이나, 자신의 사랑을 쟁취하는 데 그녀가 사용하는 무기는 이름하여 ‘그랜드 개꼬장’이다.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을 맘 속에 품고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사랑받고 자란 사람 특유의 자신감 으로든, 술기운을 빌려서든 그녀는 자신의 감정·의지·느낌을 배반하고 눌러앉히 지 않는다. 어떤 리뷰어는 이 책을 읽고서 심윤경 작가의 글발이 만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평했는데, 그 말이 조금도 허투루 들리지 않을 만큼, 혜나씨 입에서 봇 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거침없는 대사와 기상천외한 비유, 용서가 가능한 수준 의 과장과 거짓말이 버무려진 ‘꼬장’의 수준은 아름다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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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사회적 메시지가 없어도, 애잔한 감정의 울림이 없어도, 뒷덜미가 서늘해 지는 통찰의 자극이 없어도, 읽은 것만으로도 깔끔한 쾌감을 주는 책이 있는 법 이다. 이 연작소설의 마지막은 혜나씨가 만삭의 몸으로 고깃집 노래방 기기 반주 에 맞춰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를 율동 섞어 부르는 장면 으로 끝나는데, 나는 또 한번 껌뻑 죽고 말았다. “고마웠습니다, 혜나씨. 덕분에 막힌 속이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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