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모부가 그 이모부일 줄은 몰랐다. 출판편집자로 일할 때 ‘이모부’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외주 교정자가 있었다. 단행본 출판계에서 믿고 맡길 만한 외주 교정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은데, 그는 일의 결과물도 남다르고, 손도 빠르며, 소통도 수월한 외주 교정 15년차 베테랑이었다. 아는 사람은 아는 얘기지만 작가가 보내온 원고가 초고 상태 그대로 책으로 묶이는 일은 거의 없다. 오·탈자를 고치는 ‘교정’과 오문이나 비문을 바로잡는 ‘교열’은 기본이고, 저자와의 협의를 거쳐 (심지어 소설까지도) 구성을 바꾸고, 편집부에서 문장을 완전히 새로 써내는 일도 허다하다. 많은 경우에는 출판사 편집부에서 이렇게 좀더 ‘완전한 원고’로 세공하는 일을 담당하지만, 편집부 내부의 일손이 모자라거나 전문성이 부족할 때는 전문 교정 외주 프리랜서에게 일을 맡긴다. 어쨌거나 ‘이모부’가 외주 교정에 참여한 잘 알려진 책만 해도 김훈의 , 이현우의 , 김선주의 를 비롯해 여럿 있다. 웅진·문지·김영사·생각의나무·한겨레출판·현암사 등 유수의 출판사에서 나온 수백 권의 책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일급 외주 교정자라 할지라도, 벌이나 편집자와의 관계 문제는 녹록지 않다. 외주자는 ‘을’ 중의 ‘을’이다. 그가 거의 유일한 40대 중·후반의 남자 외주 교정자로 생활할 수 있는 것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아주 가끔씩 마음의 감기를 앓는다고 했는데, 그 우울함을 견디는 방편으로 “남의 글 설거지”가 아니라 “자신만의 문법으로 스스로를 서술하”고자, 교보나 알라딘 등 인터넷 서점 공간에 서재를 마련해 서평이나 단상을 써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주로 책을 읽고 쓴 리뷰 형식을 띤 글이 많았지만, 나는 그의 사담이 담긴 에세이풍 단문들이 좋았다. 어린 시절 서울 북촌의 팔판동에서 자란 이야기며, 조금은 스산한 가족사, 서평 형식을 띤 연서들에서 느끼는 쓸쓸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내가 그의 글을 책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내가 생각했던 포인트는 숨어 있는 글 세공사로서 책을 읽는 그만의 섬세하고 독특한 관점이, 일반 독자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출판업자가 있었으니, 이번에 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왔다. 닳고 닳은 또래 40대 후반 인생들에게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자존감 있는, 씩씩하고 맑은 정신”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오랜만에 그의 인터넷 서점 서재에 들어가봤더니, 앞으로 1년 동안은 외주 교정일을 쉬기로 했단다. 쉬는 동안 그가 더 많은 글을 쓰고, 더 좋은 책을 펴낼 수 있게 된다면 참 좋겠다.
마지막 덧글: 6개월쯤 이 귀한 지면을 빌려 책을 읽고 넋두리를 해댔다. 능력에 부치는 일이기도 했고, 책과 관련한 일을 분명히 끝내고도 싶어, 오늘을 마지막으로 이 ‘자영업자의 책읽기’ 코너를 접는다. 지면을 내준 과 미숙한 글을 기꺼이 읽어주신 독자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빠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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