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들한테 상처는 안 받고?”
모처럼 통화한 자전거 정비학원 원장님이 불쑥 던진다. 학원을 마치고 가게를 연 수료생들이 털어놓는 고민 가운데 가장 많은 게 손님과의 관계란다. 자전거 포는 대개 사장이자 종업원인 주인 혼자 운영하는 자영업종이기도 하고, 자전거 자체가 비교적 고가의 고관여제품(오랜 시간과 노력을 소비하면서 구매 과정에 깊이 관여하는 제품)이기 때문에 판매나 정비를 하면서 사람들과의 심도 깊은 대면 접촉은 필수적이다.
장사를 해보니 다양한 부류의 사람을 만난다는 게 장점인데, 한편으론 내키지 않 는 손님이 없을 수 없다. 손님들 가운데 열에 아홉은 훌륭하지만, 가끔씩 무개념 손님을 맞고 나면 속이 부글거린다. 다른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잠깐만 봐주면 될 거”라며 자전거를 들이미는 사람이나, 아무 얘기도 없이 내 밥줄인 공 구통을 제멋대로 뒤적거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자전거가 잘못 손대서 이상해졌 다. 한강공원에 묶어둘 테니 찾아가서 고쳐놓으라”는 손님도 있었고,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시고 와서는 “우리 아버지가 변호사인데, 내 후배 자전거를 제대로 고 쳤는지 책임질 수 있느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던 대학생‘놈’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을 어떻게 대할 것이냐? 진심을 담은 미소를 띠며 친절히?
앨리 러셀 혹실드의 책 은 기존의 육체노동과 정신노동 외에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하려고 자신의 감정을 고무시키거나 억제하게 하는” 노동 의 영역에 ‘감정노동’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는 점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책이 다. 게다가 ‘관리된 감정’을 바탕으로 한 친절함이 더 많은 이익의 절대적 전제조 건이 된 서비스산업의 특징을 잘 꼬집어내고 있는데, 가게를 차리기 전까지만 해 도 이런 감정노동이 내 일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텔레마케터나 식당 아주머니, 마트 판매원, 영업자들과 같은 고강도 감정노동자 들과 한데 놓을 수는 없지만, 사람을 대하니만큼 대개의 자영업 종사자들 역시 감정노동이 불가피하다. 손님들에게 친절히 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응대에 합당치 않은 손님들이 언제 어디나 있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한 것은 아 무에게도 친절하지 않은 것과 같지 않은가? 불쾌한 손님들에게 적절한 분노를 표출하는 것 역시 감정노동의 한 부분일뿐더러 대다수 상식적인 손님들에게 자 연스러운 감정으로서 ‘친절’을 가능케 한다. “무개념 손님에게는 냉정하게, 친절 한 손님에게는 당연히 친절하게.” 새삼 이것을 내 가게의 철칙으로 삼아야겠다 는 강한 결심이 서는데, 속으로 끙끙 앓는 것보다 낫지 않나? 그리고 이참에 내 마음에 깊은 스크래치를 냈던 아주 소수의 손님들(한 5명쯤?)에게 진심을 담은 미소를 띠며 “불친절히” 말하고 싶었던…, 그러나 차마 내뱉지 못했던 소심한 복 수의 몇 마디를 던지자면… “제가 아저씨 개인 자전거 수리공인가요? 어디 와서 갑질이세요? 앞으로는 근처도 오지 마세요. 제발요, Pl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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