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초봄, 자전거 시즌을 준비하면서 자그마한 창고를 마련했다. 혼자서는 창고나 물품 정리 등을 감당하기 힘들어 ‘알바’를 구했다. 군에서 제대한 지 한 달 반 된 23살 먹은 동네 동생. 한 달쯤 함께 일했나? 나로서는 20년 터울이 지는 이와 한 공간에서 일하는 게 처음이었다. 일하는 틈틈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도권 소재 대학에 입학했으나, 등록금 내는 게 부질없게 여겨져 학교 다닐 생각을 접고 백화점 판매직 등 수많은 알바를 경험했다는 야무진 친구였다. 조금 친해진 다음에 호기심이 생겨 물었다. “대선 때 누구 찍었니?” “박근혜요.” “정말? 친구들은?” “거의 박근혜 찍었을걸요.” 이 친구의 소소한 취미가 있는데, 바로 스포츠토토다. 국내외 프로스포츠는 물론이고 e스포츠나 바둑까지 꼼꼼히 사전 분석을 해 베팅을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모든 친구가 스포츠토토를 한단다. “잃으면 냉면 한 그릇 값이고, 따면 고기 먹는 거죠.” 아침마다 네이버 검색 상위 순위에 외국 프로리그팀 이름이 올라와 있던데, 그제야 까닭을 알게 되었다. 솔직히 내가 모르던 세계였다. 마지막으로 다닌 출판사의 구성원들은, 20명 남짓한 직원 모두 반새누리당 정서쯤은 기본이고, 전국 지지율 1.5% 정당인 진보신당 당원이 7명이나 되었다. 박근혜를 찍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스포츠토토 역시 딴 세상 이야기였다.
최근에 읽은 청년 논객 한윤형의 에서 곱씹은 대목은 “새로운 것은 아무 데도 없다”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지배 정서에 관한 부분이었다. 삶의 질이 나아지고 있음을 지속적으로 체험한 부모 세대와 달리, ‘내려가는 사회’의 부인 못할 당사자임을 요즘 청년들은 너무 잘 알고 있다고 한다. 한윤형이 예리한 것은, 관찰자의 입장에서 뭉뚱그려 20대를 논하는 선배들과 달리, 저마다 사정과 층위가 다른 20대의 입장을 고려하는 점이었다. ‘88만원 세대’ 담론의 주요 수요층이 진짜 88만원 세대가 아니라 ‘88만원 인생’으로의 하강을 두려워하는 중산층 진입 대기자였고, 쌍용자동차 사태에 대한 젊은 층으로부터의 자발적인 연대가 어려웠던 건 쌍용차 노동자가 한때나마 현재의 자신들로서는 꿈도 못 꾸는 대기업 정규직이었기 때문일 거라는, 20대에 대한 층위론적 분석에 고개를 끄덕였다. 발버둥쳐봤자 세상 달라질 일 없다는 냉소를 자연스레 체득한 세대에게 “짱돌을 들라”거나 “쫄지 마, 씨발”이라 훈계하는 건, ‘힐링’ 못지않은 재수 없는 계몽질이라는 것이 내가 거칠게 읽은 이 책의 메시지였다. 이 시대 가장 명민한 청년이라 할 한윤형은, 그래도 바지런히 시대를 해석하고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 몸을 움직이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20대의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갓 서른 넘은 한윤형 역시 (글쟁이로서) ‘중년 이후의 삶’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득하다고 토로한다. 어쩌면 이 시대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미래를 향한 가장 선명한 투자는 메시가 선발 출전하는 FC 바르셀로나에 베팅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시대의 엄연한 현실임을 인정하자니, 독후의 새벽, 마음이 서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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