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자전거포를 차리면서, 550만 자영업자의 일원이 되었다. 전에는 책 파는 서점에서 1년 6개월, 책 만드는 출판사들에서 10년쯤 일했다. 자영업자가 되고 나니, 통 책을 읽지 못한다. 책에 물렸나? 그런 건 아니다. 시간이 없나? 절대 시간이 줄긴 했어도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런데 책 속 문자의 메시지나 숨은 뜻이 마음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차라리 자전거와 관련한 기계적 메커니즘에 대한 글이나 부품의 매뉴얼 같은 건조하고 명료한 글자의 조합이 반갑다. 하여 이 부담스러운 원고 청탁을 받아들이게 된 것도, 마감의 위력 앞에 몇 권의 책이라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휘휘 사라지는 생각의 흔적들을 그나마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지난 1년 동안 끝까지 손에 붙들고 읽은 책이 다섯 권쯤 될 듯싶다. 그 가운데 가장 반갑게 읽은 한 권이 고종석의 마지막 책‘이라는’ 다. 오랫동안 고종석의 견실한 독자였다. 학생 때 문학 면에서 그의 이름을 처음 눈에 새겼고, 첫 책 부터 이번 까지 그의 모든 책을 사서 읽었다. 그는 지난 20년간 내 정신세계(인간에 대한 이해, 정치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필자였다. 그럼에도 그의 전작 에 실망한 터라(이미 지면을 통해 발표했던 서평 등을 다시 책에 재활용한 것을 보고, 그의 치열함이 그의 게으름에 굴복했다는 느낌을 가졌다), 이번 소설 에도 기대가 크지는 않았다. 가족을 이루는 10명의 구성원이 각자의 시선으로 어딘가 위태스러운 안녕을 지탱하고 있는 가족사의 비밀을 풀어내는 그저 그런 부조리극 정도라 생각했던 것.
그런데 이 책의 마지막 문장에 충격을 받았다. 평범한 개성의 소설 캐릭터들이 두 마디 텍스트를 통해 전혀 다른, 무시무시한 사람들이 되었다. 설마 했던 것이 마지막 문장을 통해 확인되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윤리적 판단, 아름다움과 추함, 사랑의 경계가 허물어져버렸다. 오이디푸스 이야기나 영화 의 부조리함이 무지에서 비롯된 운명적인 것이었다면, 이 담대하고 강인한 가족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 스스로 선택한 삶의 결과를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 무심하면서도 강렬한 두 마디가, 고종석이 육필로 써낸 마지막 텍스트가 될 것인가?
뱀꼬리: 편집을 담당한 책 가운데 박노자 교수의 라는 책이 있다. 제목을 고심하다가, 고종석의 칼럼 제목 ‘왼쪽으로 좀더 왼쪽으로’를 보고, 이거다 싶었다. 약간 달리해서 박 교수의 책 제목으로 써도 괜찮겠느냐 양해를 구했으나 책 속에 제목의 사연을 밝히지 못했다. 우연히 함께한 자리에서 그는 넌지시 그 일에 항의했고, 나는 다음 쇄에는 꼭 그 내용을 집어넣겠다고 약속했다. 새로 다음 쇄를 찍을 기약이 없고,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으니, 이런 기회에라도 밝힐 수밖에…. “고 선생님,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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