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소프트라는 기업이 있다. 이름만 들어서 대번 에 알 수 있는 기업은 아니다. 구성원 26명, 업종은 소프 트웨어 개발이다. 이원영은 이 회사 대표다. 그 이름도 누구나 알 만큼 유명하지는 않다. 증시 상장이나 기업 매 각 따위 대박 신화와도 거리가 멀다. 유명한 건 고유명사 가 아니라 몇 마디 어록과 거기에서 파생한 어떤 이미지 다. 소비자에겐 ‘따봉’이 어느 회사에서 나온 주스인지 인 지되지 않듯이. 올 초 한 지상파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서 이원영은 말했다. “좀 놀면 안 되나요, 회사에서?” “복 지는 그냥 복지죠.” 순간 시청자의 눈앞에 광고 속 브라 질 오렌지 농장 같은 낙원의 이미지가 펼쳐졌다.
복지 자체가 목적인 회사
956호 출판
당시 뜨거웠던 반응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규범화된 노동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어떤 구원적 욕망을 품고 있 는지 보여준다. 시청자의 반응은 제니퍼소프트의 기업 문화에서 비롯됐다. 그곳 구성원들은 자신이 원할 때 출 근하고 원할 때 퇴근한다. 근무 중에도 언제든 사내 수영장과 온천에서 휴식을 즐길 수 있다. 복지 수 준은 국내 굴지 대기업들의 그것을 넘어서지만, 중 요한 건 생산성 향상을 위한 도구적 복지가 아니 라 복지 자체가 목적인 복지를 시도하고 있다 는 점이다. 우리는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소외 되지 않고,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서의 존재 가 되고자 하는 보편적 욕망의 주체인 것 이다.
사람 매거진 은 4월호에서 이 낯선 실험의 주 인공인 이원영 대표를 인터뷰했다. 제니퍼소프트 ‘현상’ 에 대해 이미지 너머까지 들여다보려고 한 것 같다. 질문 의 상당 부분은 이 대표의 기업관뿐 아니라 세계관까지 겨누고 있다. 그런데 외려 당황한 건 질문을 받은 이 대 표가 아니라 이었다. 이 대표는 연봉 수준 같은 ‘세속적’ 질문에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낸다. 이 때문 에 인터뷰가 중단되기도 한다. 유명세를 탄 뒤 그런 질문 에 시달릴 만큼 시달렸던가보다. 이는 역설적으로 의 애초 접근 방향이 타당했음을 입증한다. 대중의 열광은 이미지 너머로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대중이 제니퍼소프트를 체제 내부의 최고 직장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그는 그곳을 체제 바깥으로까지 밀어 붙이려고 한다. 그의 입에서는 칸트, 마르크스의 이름이 나 그들이 제시한 개념이 쉴 새 없이 쏟아진다. 그가 꿈 꾸는 제니퍼소프트의 존재 양식은 노동자 총회가 기업 대표를 선출하는 공동체다. 김상봉 전남대 교수가 (2012)에서 주창하는 바와 일치한다. 그러나 그런 존재 양식이 성립하려면 노동자들도 제니퍼 소프트의 기업문화를 잘나가는 기업의 오너가 베푸는 통 큰 은전쯤으로 여기는 인식을 넘어서야 한다. 인터뷰에는 현실의 그런 균열 지점까지 좌표로 찍혀 있다.
선이 아니라 섬이 된 이름
은 또 다른 문제제기자를 인터뷰했다. 최근 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들고 ‘영화감 독’으로 돌아온 지율 스님이다. “‘지율’이라는 이름은 우 리 사회의 어느 분단선 위에 놓인 이름이다. 이름을 경 계로 한쪽은 그 이름을 입에 담으려 하지 않고, 다른 한쪽은 끈덕지게 불러내 멋대로 색을 칠한다. 양쪽 사 이에서 그 이름은 선이 아니라 섬이 되었다. (중략) 10 년 전 그가 우리 사회의 흐름에 문제를 제기했을 때, 환 경운동을 한다는 단체는 그에게 잠시 다가왔다 튕겨나 갔고, 국토개발을 한다는 세력은 다만 귀찮아했다. 그 는 끝 간 데 없이 홀로 걸어, 붙박혀 있는 이들의 시야 에서 소실점으로 사라졌다.” 이 지율을 만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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