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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세계 꿰뚫는 목수의 지혜

자신의 직분을 숙명 삼아 산 우직한 대목장의 잠언, 니시오카 쓰네카즈의 구술로 엮은 <나무에게 배운다>
등록 2013-04-12 19:21 수정 2020-05-03 04:27

“책을 멀리하고, 텔레비전도 신문도 보지 말고, 연장 을 갈라. 오로지 그 일만 하라.”
니시오카 쓰네카즈(1995년 88살로 작고)는 평생 이 말 을 금언으로 여기며 대를 이어 호류지의 목수로 살았다. 607년에 창건된 호류지는 나라현에 있는 일본 최고(最古)의 목조건물. 그는 사찰이나 궁전, 사원처럼 큰 건물 을 짓는 궁궐목수이자 그들을 거느리는 대목장이었다. 천년사찰 호류지를 돌보며 지키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나무에게 배운다‘는 1996년 한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이번에 재출간됐다. 자신이 1981년에 복원한 야쿠시지 서탑 앞에서 제자 오가와와 함께 선 생전의 니시오카 쓰네카즈(오른쪽). 상추쌈 제공

‘나무에게 배운다‘는 1996년 한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이번에 재출간됐다. 자신이 1981년에 복원한 야쿠시지 서탑 앞에서 제자 오가와와 함께 선 생전의 니시오카 쓰네카즈(오른쪽). 상추쌈 제공

마치 ‘닦고 조이고 기름 치는’ 생

궁궐목수 니시오카의 구술을 시오노 요네마쓰가 엮 은 (상추쌈 펴냄)는, 한눈팔지 않고 자신의 직분을 숙명 삼아 산 우직한 장인의 잠언과도 같 은 책이다.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유폐시킨 채 오로지 몸 으로 삶을 밀고 살아온 노목수의 말은, 되레 인간세계를 꿰뚫는 지혜로 돌올하다.

집을 지을 때는 나무의 성질과 자란 방향을 살려서 써 야 튼튼한 건물을 지을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기 질이 강한 자일수록 생명력 또한 강하다,라고 말할 때 나 무를 쓰는 일과 사람을 쓰는 일은 다르지 않아 보인다. 또 천년을 살아온 나무는 목재로도 천년을 간다, 그 수 명을 다하도록 돕는 것이 목수의 역할이다, 나무가 살아 온 만큼 나무를 살려서 쓴다고 하는 건 자연에 대한 인 간의 당연한 의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 로 남아 있는 호류지는 그것을 잘 가르쳐주고 있다,라는 말에서 재건축을 위해 겨우 20년 된 집을 허무는 우리는 할 말을 잃는다.

때를 기다리며 온 정성을 쏟는 일을 업으로 삼은 탓 에, 빠르고 편리한 것만을 좇는 시대와 평생 그는 불화 했다. 머리가 하는 기억보다 손이 하는 기억을 신뢰하는 늙은 목수는 지식으로 경험을 이기려는 학자들과 분투 를 벌이며 천년사찰의 복원을 주도했다. 그런 그의 고집 으로 688년에 건립됐다 화재로 소실된 야쿠시지는 제 모 습을 찾을 수 있었다.

“벌이가 되는 일로 내달리게 되면 마음이 혼탁해지게 된다”며 일이 없을 때는 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렸던 그는, 그 와중에도 언제라도 절을 고치기 위해 연장을 갈고 나무를 말렸다. 마치 ‘닦고 조이고 기름 치는’ 생이었다.

“균일한 세계, 부서지지도 깨지지도 않는 세계, 어떻게 하든 좋은 세계에서 문화는 태어나지 않으며 자라지 않 습니다. 호류지나 야쿠시지 건물에 쓰인 목재는 어디를 막론하고 규격에 꼭 들어맞는 것이 없습니다. 어느 하나 가릴 것 없이 모두 다릅니다. …고르지 않으면서도 조화 롭습니다. 모든 것을 규격품으로, 이를테면 모두 똑같은 것을 늘어세우면 이 아름다움이 나오지 않습니다. 획일 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오히려 좋은 것입니다.”

전우익 “평생 이 책 한 권만 읽어도”

현자의 통찰은 두루 통하는 것인가. 각기 다른 인간을 한 줄로 세우는 문명에 대한 니시오카의 비판은 멀리 헨 리 데이비드 소로에서부터 스콧 니어링을 거쳐 이오덕, 신영복에 이르기까지 일맥상통하고 있다. 생전의 전우익 선생이 이 책을 권하며 평생 이 책 한 권만 읽어도 된다 고 했다는 말뜻을 이제 알 것만 같다.

“책을 읽는다거나, 지식을 지나치게 채워넣게 되면 가 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자연이나 자신의 생명에 관해 서는 무지해진다”는 니시오카의 말에 동의하긴 어렵다. 그의 책은 읽어야 하는 탓이다. 1996년 한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절판된 이 책의 재출간이 고마운 이유도 그러 하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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