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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 안 먹는 건 생존의 계율

‘육아 불안 사회’, 인류 진화 역사에서 자녀 교육의 해법 찾는 헤르베르트 렌츠 폴스터의 <슬로우 육아>
등록 2013-02-09 18:32 수정 2020-05-03 04:27

6살 된 아들 녀석과 ‘닌자고’를 가지고 놀다가 잠깐 딴짓을 했다. 아들 녀석이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순간 화가 났지만 꾹 참고 “‘아빠 뭐해’라고 말하면 되지 왜 소리를 지르니?”라고 타일렀다. 소심한 아들 녀석은 바로 삐쳐버렸다. 그냥 넘어갈 걸 그랬나? 괜한 후회가 밀려왔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인내를 키우는 일인가.

‘슬로우 육아‘는 육아에서 부모의 구실은 물론 다른 아이들과의 관계와 경험의 중요성도 아울러 강조하고 있다. 부키 제공

‘슬로우 육아‘는 육아에서 부모의 구실은 물론 다른 아이들과의 관계와 경험의 중요성도 아울러 강조하고 있다. 부키 제공

‘땡깡’은 살기 위한 몸부림

사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고민은 시작된다. 버릇없는 아이로 키우는 것은 아닐까? 일관성 없이 대하는 것은 아닐까? 일찌감치 세상이 자기 맘대로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게 좋을까? 나는 왜 아이에게 좀더 엄격하지 못할까? 아이의 소질에 맞게 잘 계발시켜주고 있는 걸까?

부모들은 자녀교육서를 통해 조언도 얻지만 불안도 함께 얻는다. 이래라저래라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는 책들을 보며 참으로 혼란스럽다. 도대체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하는 걸까? 우리는 오랫동안 늘 새롭고 세련된 이론에 맞춰 아이들을 실험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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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아동 발달 과정이 인간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연구해온 독일의 소아과 의사이자 교육심리학자인 헤르베르트 렌츠 폴스터는 (부키 펴냄)에서 “아이들은 수천 년에 걸쳐 이어진 발달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준비된’ 존재라는 것. 무슨 말일까? 부모의 고민거리인 아이를 혼자 재우는 문제에 대한 저자의 답에 힌트가 있다.

“아이가 혼자서 잠드는 것은 인류 역사의 진행 과정에서 형성된 아이들의 발달 프로그램과 맞지 않는다. (진화 과정을 돌이켜볼 때) 어린아이가 안전하게 잠들 수 있는 장소는 친밀한 성인의 옆자리뿐이었다. 가까운 과거까지도 그랬다. 오늘날에도 아이들은 이런 ‘본능’을 자기 안에 갖고 있다. 몇천 년 전에 인간은 사냥을 하고 식물과 열매를 수집하는 위험한 생활 방식에서 벗어났다. 그럼에도 오늘날 아기들은 역사를 거쳐서 물려받은 감각을 가지고 삶을 시작한다. 혼자 자는 것이 학습 목표가 된 것은 불과 몇 세대 전의 일이다.” 아이들을 부모 옆에서 재우는 것은 진화의 역사로 비춰볼 때 자연스러운 행위라는 것이다.

그럼 아들 녀석처럼 딴짓을 하며 자기에게 주목하라고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의 행동에도 이유가 있을까? “덧붙이자면 어린아이들이 부득부득 ‘버릇없이 구는’ 것도 이와 비슷하게 설명할 수 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항상 자기에게 주의를 기울이기 바란다. 그래서 엄마가 한동안 자기를 쳐다보지 않고 다른 엄마와 수다를 떨면 즉시 대화를 방해한다. 물론 엄마에게는 짜증스런 행동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매우 영리한 행동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하이에나가 몰래 아이에게 접근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 ‘땡깡’이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니.

‘어린 아빠’는 궁금한 게 많다. 어린이들이 채소를 안 먹는 것도 이유가 있을까? “아이들은 쓴맛이 나는 녹색 음식에는 입도 대지 않는다. 그럴 때 보면 아이들에게 아주 특별하게 경고가 입력된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독이 있는 식물은 대부분 쓴맛이 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쓴맛이 나는 음식을 조금이라도 먹지 않는 것은 생존의 계율이기도 했다. 이 계율은 아이들이 아직 충분한 생활 의 지혜를 갖추지 못한 기간 동안 의미 있는 계율이었다.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 차츰차츰 안전한 식량을 구별할 수 있게 되면 비로소 미각의 지평은 다시 열린다.” 결국 때가 되면 먹는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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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부모는 아이의 모든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조기에 아이 문제에 개입해서 해결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저자 는 대부분 아이의 행동은 발달 과정 중에 일어나는 자연 스러운 현상으로, 오히려 부모가 아이의 자연스러운 욕 구를 억지로 거스르면 아이의 발달은 방해를 받는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부모들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하는 기업 마 케팅과 조기에 교육받지 못하면 아이가 사회에서 낙오될 지 모른다고 불안을 조장하는 ‘육아 불안 사회’도 책임이 있다. 아이를 안거나 업고 다니는 것보다 과학적으로 설 계된 유모차에 태워야 한다거나, 아이의 지능지수를 높 이려면 모차르트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것은 모두 근거 없는 무책임한 말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육아 와 교육에 대한 다양한 이론과 주장이 존재하지만 대부 분은 증명할 수 없거나 증명되지 않는 오류이기 때문에 좀더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성공적인 발달에는 어떤 조건들이 필요할까. 책은 이를 ‘종에 적합한’ 조건이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유아기의 신뢰할 수 있는 애착 관계, 다른 아이들 과의 풍부한 사회적 경험, 그리고 아이 속도에 맞춘 교육 이다. 이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는 곳은 바 로 ‘공동체’다. 공동체 안에서 경쟁과 협력을 통해 균형 을 찾아갈 때 아이는 성공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저자 는 말한다. 결국 아프리카 속담처럼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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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중요하지만 부모만으로는 부족한 것이다. 우 리는 아이들이 자기 안에 있는 소질을 드러내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아이들을 위해 더 많은 아이가 필요하다. 더 많은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아이는 아이답게, 아이의 속도로 발달하며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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