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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으로 가는 첫 번째 계단

생태운동가 서재철의 경북 봉화군 소천면 현동… 첩첩산중 비밀스런 이야기를 간직한 산판 마을
등록 2013-02-01 06:56 수정 2020-05-02 19:27
경북 봉화군 소천면 현동리는 20년 가까이 산과 숲으로 발품 팔러 다니는 서재철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이 출장 갈 때마다 들르는 곳이다. 현동은 오지 중의 오지로 들어가는 통로이자,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묻는 성찰의 공간이다. 서재철 제공

경북 봉화군 소천면 현동리는 20년 가까이 산과 숲으로 발품 팔러 다니는 서재철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이 출장 갈 때마다 들르는 곳이다. 현동은 오지 중의 오지로 들어가는 통로이자,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묻는 성찰의 공간이다. 서재철 제공

발품 팔아 살아온 지 20년 가까이 된다. 환경과 생태를 업으로 삼아 살다보니, 산과 숲을 다니는 게 일이다. 대자연의 숨결에 티끌 같은 우리의 존재에 대해 고개 숙일 때도 있고, 환상적인 경관에 가슴 뛸 때도 있다. 반면 개발과 보전이라는 갈등의 현장에서 낑낑거릴 때도 있다. 그래도 업을 버리지 않는 이상, 숲으로 산으로 가는 일은 여전하다. 발걸음 중간에 거쳐가기도 하고 머물기도 하는 많은 산촌과 농촌 마을이 있다. 우리네 농산촌은 그냥 겉만 보면 대부분 엇비슷한 모습이다. 그러나 지나온 사연과 거쳐간 사람들에 따라 만만치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 언젠가는 꼭 그 사연을 기록해야 한다는 강박이 남아 있는 상징이 있다. 현동이다. 경북 봉화군 소천면 현동리 일대. 이곳 사람들도 외지 사람들도 소천보다는 현동이 더 익숙하다. 1960~70년대에는 금강소나무 벌채의 중간집산지였던 터라 오지 중의 오지이면서도 교통이 발달했다. 철도역과 시외버스터미널이 아직도 남아 있다. 다만 타고 내리는 사람이 거의 없다.

처음 방문했던 1986년이나 지금이나 현동은 여전히 그 모습이다. 지난해 마을 뒤쪽으로 새롭게 난 4차선 국도를 빼고는 변한 게 별로 없다. 1970년대에는 개도 지폐를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경기가 좋았다고 한다. 산판 경기가 잘 돌아갈 때 얘기다. 골목으로 들어가면 한 장의 다큐사진 같은 모습도 남아 있다. 속도와 물질의 시대에 현동은 여전히 정적인 호흡으로 우리의 발걸음을 맞는다.

10대 후반 오지마을 답사로 인연이 시작됐는데, 언제부터인가 출장 갈 때 꼭 들르는 곳이 됐다. 밥 먹고 주유하고, 산에 들 때 필요한 쌀과 부식을 이곳에서 구해간다. 가끔은 소천 양조장에서 국내 유일의 100% 옥수수로 빚은 막걸리를 구하기도 한다.

현동은 면 소재지이지만, 주변으로 파고들면 만만치 않은 첩첩산중이 펼쳐진다. 오지마을 곳곳이 현동을 거쳐서 들어가게 돼 있다. 봉화 구마동계곡을 비롯해 백천계곡, 반야계곡, 낙동강 승부마을, 울진 전곡리부터 봉화 소천 남회룡, 영양 수비까지 오지의 대명사라 할 만한 숲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남한에서 가장 울창한 금강소나무 원시림이 현동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 숲 속에 사향노루, 산양, 수달, 담비, 하늘다람쥐, 삵까지 지리산과 설악산에 견줄 만한 생물들이 산다. 태백산 자락 봉화 고선동부터 비룡산을 거쳐 울진 소광리, 삼척 풍곡리, 일월 산자락 봉화 남회룡리까지 산에서 시작해서 산으로 끝나는 동네다.

현동을 오갈 때면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글쓰기 수준이 일천해 기록으로 제대로 남기지 못하는 것 때문이다. 금강소나무부터 화전민 이야기까지 그 어떤 생태학 교과서도 따라올 수 없는 한반도 자연의 역사가 묻혀 있다. 현동에는 금강소나무 한 그루를 베어내고 그 밑동에 산판 인부 10명이 둘러앉아 점심을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누구도 이런 전설 같은 팩트를 역사로 기록하지 않았다.

현동은 갈 때마다 묻는다. 자연에 대한 예의, 숲에 대한 우리의 자세가 무엇이냐고.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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