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취미로 한다는 말을 들으며 살았던 때가 있었다. 한곳에 정 붙이고 진득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정서적으로는 정답일 수 있다. 하지만 전세살이 세입자의 삶은 시간이 되면 짐을 싸야만 하고 방랑 아닌 방랑 생활을 해야만 한다. 유학 생활에서 돌아와 몇 번 전세를 돌고 돌아 정착한 곳이 서울 홍익대 앞에서 조금 비켜난 곳이었다. 당시 홍대 주변은 밤과 낮이 구분된 동네였다. 땅거미가 지면 제자들이나 친구들과 홍대 앞의 삶을 즐기기에 적합했다. 하지만 5년 정도가 지나자 홍대 앞은 낮과 밤이 없어지고 클럽데이에 젊은이들이 무리지어 움직이는 동네로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 문화를 즐기려 했지만 어느 날 클럽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이 어색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짐을 싸 이태원으로 이사했다. 좀더 튀지 않는 풍경 속에서 맥주를 즐기며 살 수 있는 곳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도시의 삶에서 얻는 즐거움은 주변과의 소소한 교감에 있다고 본다. 그 교감에서 밀려날 때 도시로부터의 소외가 시작된다. 서울이라는 기형적 도시가 지닌 독기는 공존의 틀이 아닌 강남과 강북, 북촌과 서촌같이 집단적 이합집산과 이분법적 행태를 만들어낸다. 그 이분법 속 공통분모인 공존의 틀을 가진 동네는 어디쯤일까를 가끔 이태원 펍에 앉아 생각하곤 했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 언젠가 나도 이태원과 멀어질 때가 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포르투갈의 작은 마을 발레데바르구(Vale de Vargo)에서 한 달간 살 기회가 주어졌다. 프랑스 파리에 사는 친구의 바캉스를 따라 그의 시골집에 가게 된 것이다. 그 뒤 기회가 되면 난 그곳을 숨겨놓은 비밀의 정원처럼 드나들게 되었다. 수도 리스본에서 2시간30분 정도 떨어진 곳으로 국도에서 한참 벗어난 막다른 도로 끝에 위치한 마을이었다. 뭔가를 전혀 과잉 생산해내지 못하는 마을. 하지만 여름의 긴 해가 지면 사람들이 마을 중앙의 성당 옆 광장 카페에서 여유를 만들어낸다. 추운 겨울이면 마을 사람들이 광장 옆 공회당에 모여 당구를 치거나 커피를 즐기며 겨울을 보낸다. 나이 든 사람과 젊은 사람들이 어울려 마을의 작은 성당과 광장을 중심으로 조화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동네는 곳곳에서 올리브나무가 만든 작은 잉여로 유지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올리브 열매를 수확해서 먹고산다. 그리고 특이했던 점은 마을 노인들이 대부분 그리 많지 않은 연금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변화와 발전의 틀 속에서 분명 도태된 곳이지만 안정된 교감의 입장에서는 살아 있는 ‘파라디’(천국)였다.
불현듯 내가 서울에서 사라진다면 그 마을에 정착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을에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다. 구차한 노인요양소가 아닌. 낮에는 올리브를 따며 일하고 사르딘을 구워 먹고, 오후엔 카페에 앉아 에스카르고(달팽이) 안주에 맥주를 마시고, 동네 클럽축구를 응원하고, 늦은 밤 아몬드로 만든 달짝지근한 술 아멩두아 아마르가를 홀짝거리며 조용하고 충만한 밤을 맞고 싶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저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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