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게양대가) 너무 높은 걸 비판을 하시니 그러면 필요할 때 쭉 뽑아 올려서 한 100m까지 올리는 건 그렇게 과학적으로 어렵지 않더라. (…) 아무래도 태극기를 활용하는 게 제일 (국가) 상징으로서는 설득력이 있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 같다.”
2024년 2월 서울시 송현광장 부지에 ‘이승만기념관’을 건립하는 애길 꺼낸 데 이어 6월에는 ‘광화문에 100m 높이의 초대형 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하겠다고 해 논란을 일으킨 오세훈 서울시장이 8월20일 기자설명회를 열어 한 말이다. 대선 출마 가능성이 반반이었다가 출마 쪽으로 1% 기울어 51%가 됐다고 스스로 밝힌(8월14일 YTN 라디오)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오 시장이 ‘태극기 휘날리는 광화문’ 제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내보이고 싶어 하는 모습은 ‘보수 집결을 위한 우클릭’과 ‘소통하는 면모’인 것으로 풀이된다. 우선 이에 대한 전격적인 발표는 6월25일 한국전쟁 참전용사 앞에서 이뤄졌다. 오 시장은 이날 참전용사 7명을 서울시청에 초청해 간담회를 열어 광화문광장에 국가상징공간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사업비 약 110억원을 들여 ‘대형 태극기’와 ‘꺼지지 않는 불꽃’을 건립한다고 밝혔다.
이미 ‘태극기 부대’ 집회 등으로 보수의 상징이 된 태극기 관련 시설물을 굳이 광화문광장 한복판에 초대형으로 설치하겠다는 발표에 논란이 일자 오 시장은 시민 의견을 수렴해보겠다고 한 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했다. ‘필요에 따라 올라가고 내려가는’ 태극기 설치에 대한 오 시장의 발언이 나온 8월20일은 바로 그 설문 결과가 발표된 날이다.
서울시는 이날 한 달 동안 서울시 누리집(홈페이지)을 통해 모인 522건의 시민 의견 중 광화문광장에 국가상징공간을 조성하자는 데 찬성이 59%, 반대가 40%였다고 밝혔다. 국가상징공간 조성에 적합한 상징물은 태극기가 215건(41%), 무궁화 11건, 나라문장 및 국새 각 2건, 애국가 1건 등이었다며 ‘태극기'를 세우겠다는 서울시의 애초 의지에 부합하는 설문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시민과의 소통’을 강조하기 위해 벌인 이벤트였지만 내용은 ‘낙제점’이었다. 서울시 누리집과 포털 사이트 등에 배너 형식으로 진행된 설문에 참여한 522명은 숫자도 적지만 구글과 네이버 계정을 통해 얼마든지 중복 투표가 가능한 구조로 허술하게 이뤄졌다. 서울시민이든 아니든 누구든지 여러 번 참여할 수 있었으며 질문도 주관식 단 하나였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내 국가상징을 위한 공간을 조성할 계획입니다. 대한민국 공식 5대 국가상징으로는 태극기, 국새, 나라문장, 무궁화, 애국가가 있습니다. 국가상징공간의 디자인, 규모, 상징(대한민국 공식 5대 상징을 포함한 자유제안), 주제 등을 제안 부탁드립니다.’ 기자들이 이와 같은 내용을 문제 삼자 서울시는 “설문이 아니고 의견 수렴”이라고 말했다.
8월29일 대법원의 집행유예 판결 확정에 따라 교육감직을 상실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8월28일 마지막으로 참석했던 서울시의회 제326회 임시회 시정질문에서 서울시의 ‘광화문광장 초대형 태극기 게양대 설치’ 계획에 대해 “대한민국은 위대한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국가로서 자긍심을 가져야 하지만 자만의 경계와 맞닿아 있다”며 “예리한 감수성을 갖고 민족적 자부심이나 참전용사에 대한 존경심을 갖되 편협한 민족주의나 국수주의에 빠지지 않느냐가 2024년 한국의 도전”이라고 말했다.
서울=임지선 한겨레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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