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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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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풀어 올랐다가 쭈그러드는

안병률 북인더갭 대표의 터키 안타키아…
바울이 차별을 없앴던 도시에서 십자군 총집결지가 된 곳
등록 2012-12-21 16:53 수정 2020-05-03 04:27
벨기에 출신 지도제작자 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가 동판화로 제작한 16세기 안타키아 인근 다프네의 풍경. 저 멀리 지중해 쪽에서 먼지를 품은 바람이 불어오는 듯하다.

벨기에 출신 지도제작자 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가 동판화로 제작한 16세기 안타키아 인근 다프네의 풍경. 저 멀리 지중해 쪽에서 먼지를 품은 바람이 불어오는 듯하다.

영혼과 어떤 장소를 연결해보자는 취지와는 달리, 내게는 자꾸 엉뚱한 생각만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영혼의 안식을 구할 만큼 어느 장소에 깊숙이 머물러본 적이 없어서일 테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웬만큼 돌아다녔다고 자부하는 처지에서 이건 좀 딱한 일이었다. 하지만 굳이 변명하자면, 내 생각을 방해하는 뿌리에는 어떤 장소에서 영혼의 안식을 구한다는 행위 자체를 향한 불안 같은 게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가령 골프장을 떠올려보자. 나는 골프를 치지 않지만 어쩌다 골프장 근처를 지날 때면 그 푸르고 깔끔하며 시원한 풍경에 나도 모르게 마음을 빼앗긴다. 얼마나 영혼이 갈구하던 장소인가! 유목민의 피를 끓어오르게 하는 무엇이 그곳에 있는 것만 같다. 그런데 막상 그 광활한 곳에서 사람들이 하는 일이란 아주 작은 구멍에다 공을 집어넣는 것이다. 참 기묘한 현상이다. 산을 깎고 나무를 베어서 목초지의 풍경을 만들어놓고는 쪼그만 공이나 쫓아다니니 말이다. 우리가 스포츠라고 부르는 것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그 행위에는 영혼에다 정확성을 결합하려는어떤 현대적인 의지가 숨어 있다. 거친 훅 한 방도 타격 지점에 따라 점수로 환산되는 권투 시합처럼, 영혼은 이 현대적인 세계에서 끊임없이 정확성으로 쭈그러드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내가 런던이나 뮌헨 같은 대도시에서 마주친 초원 같은 공원들은, 비록 그 위에서 골프를 치는 시민들은 없다 할지라도, 이미 쭈그러진 대도시의 영혼을 달래려고 조성해놓은 파사드(건축물의 출입구가 있는 정면)의 혐의가 짙은 것이다. 물론 백화점 분수대를 옮겨놓은 듯한 서울의 청계천에 비한다면 그들의 자연스러운 ‘입점’은 부러울 지경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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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런 의혹에 휩싸여 나는 내가 다녀본 모든 곳에서 영혼의 안식처를 찾기는 힘들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제 남은 선택은 그저 예감 속에서라도 영혼의 장소를 물색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마지막으로 떠올린 곳은 터키의 안타키아다. 성서에서 안디옥이라고 불리는 이 저명한 종교도시에서 사도 바울은 주인과 노예, 부자와 가난한 자, 자민족과 이방인 사이의 구별을 신의 이름으로 지워버리자고 선언했다. 이것은 진실로 영혼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약 1천 년 뒤 이곳은 서구의 온갖 탐욕이 동양의 턱밑에 들이댄 칼끝이 된다. 똑같은 신의 이름으로 치러진 십자군전쟁의 총집결지 또한 이곳 안타키아였던 것이다.

흥미롭지 않은가. 1천 년 사이에 영혼이 한껏 부풀어올랐다가 푹 쭈그러든 곳이라니. 나는 언젠가 내 영혼을 이끌고 그곳 안타키아로 가고 싶다. 영혼을 씻는답시고 폼을 잡지는 않겠다. 그냥 지중해에서 불어온 바람과 먼지를 뒤집어쓰고, 1천 년의 역사처럼 부풀어올랐다가 쭈그러들기를 반복해온 내 누추한 영혼을 마주하고 싶다.

안병률 도서출판 북인더갭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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