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반드시 한 번은 스웨덴에 갈 것임을 알고 있었다. 스웨덴은 내가 세 살 때부터 노래를 부르던 나라였다. 당시 엄마는 우리 사남매를 아빠와 일하는 할머니한테 맡긴 채 스웨덴으로 유학을 떠나셨다. 그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난한 유부녀 시간강사가 잡은 마지막 기회였다. 엄마는 최대한 빨리 박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자리를 잡겠다는 목표를 갖고 눈물의 비행기에 오르셨다. 엄마가 떠나던 날 김포공항에서 찍은 사진 속 나는 어찌나 해맑게 웃고 있는지. 그 뒤 목욕탕에 가면 아무 여자나 ‘엄마’라고 부르며 찌찌를 만지고 다녔단다. 어쨌거나 스웨덴은 어린 시절부터 각별한 의미일 수밖에 없는 나라였다.
내가 스웨덴에 간 때는 스무 살 겨울이었다. 엄마가 연구교수로 있는 동안 방문한 것인데, 1월의 알란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차가운 바람 속에서 나는 직감했다. ‘아, 아무래도 여기는 아닌 거 같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엄마가 공부했던 도시 ‘웁살라’에 짐을 풀었다. 대성당과 대학으로 유명한 그곳은 여느 유럽의 오래된 도시처럼 아름다웠다. 그러나 겨울의 북구는 지구의 우울과 적요를 엑기스로 모아놓은 듯했다.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의 고향이기도 한 웁살라의 춥고 쓸쓸한 거리를 걷노라면 자막 없는 흑백영화 속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오후 4시면 사방이 어두워졌는데 이유 없이 하루를 뺏긴 것 같아 억울했다. 나는 하얀 밤을 보내며 점점 우울해졌다. 그때는 몰랐는데 괴롭고 침울하던 10대의 마지막을 그곳에서 힘겹게 털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들은 유럽에 가게 됐다고 부러워했지만 정작 나는 그곳에서 즐겁지 않았다. 내가 웁살라에서 가장 좋아했던 곳은 공원 옆의 공동묘지였는데, 사람들이 언제든 찾을 수 있는 곳에 멋진 묘지가 있다는 것이 작은 충격이었다. 유럽은 나에게 그 아름다운 묘지와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나는 빨리 서울로 돌아가고 싶었다. 내 방에서 책이나 실컷 읽으며 나름의 작가 지망생 고독을 즐기고 싶었다. 엄마는 그곳을 감옥처럼 여기는 나를 이해했다. 딸과 더 지내고 싶어 하는 엄마를 두고 나는 홀로 도망치듯 비행기에 올랐다. 그때 나는 감히 내가 스웨덴 역사상 가장 지독한 향수병을 앓은 외국인이라 자부했다. 돌아보니 나보다 더 고독했을 외국인이 있었다. 바로 엄마였다. 엄마는 결국 그곳에서 박사 학위도 못 따고 운동권 남편이 감옥에 가는 바람에 야반도주하듯 서울행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웁살라는 아마도 우리 모녀가 서울을 제외한 지구에서 가장 화끈하게 영역 표시를 한 곳이 아닐까 싶다. 내 스무 살 절정의 우울과 엄마의 가족을 향한 뜨거운 그리움이 우리만 아는 표식 아래 숨겨져 있는 곳. 내가 다시 서울로 돌아온 날은 바로 성년의 날이었다. 어쩌면 어른이 되기 전에 중요한 무언가를 그 웁살라 묘지에 묻고 왔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지민 소설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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