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그 때문에 주위가 사뭇 시끄럽다. 지난주에는 사립초등학교 설명회 기간이어서 관심 있는 예비 학부모들이 투어 수준으로 학교 탐방을 다녔다. 소설 쓰는 처지에서 알아두면 나쁜 세상은 없으니 같이 구경이나 가볼까 하다가 마음을 접었다. 알아보니 등록금이 적지 않아 부담스러웠고, 집에서 가까운 학교도 없었다. 공부보다는 인성 교육에 힘써 아침마다 전교생이 운동장에서 놀이를 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하는 학교도 있다지만, 30분씩 자유롭게 노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겠다고 여덟 살 아이를 아침 7시에 버스에 태워 보내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코미디였다.
‘맹모병’이냐는 비난도 들었다.
그래서 어떤 설명회도 가지 않았다. 그게 코미디라는 걸 알면서도 막상 가보면 흔들릴 게 뻔했다. 나는 내 욕심의 얄팍함을 알고, 그걸 통제하지 못하는 인성의 소유자가 바로 나라는 것도 잘 안다. 게다가 나는 이미 아이 학교를 이유로 이사를 한 번 했다. 전에 살던 동네는 초등학교가 버스를 타고 가서 버스를 탄 거리만큼 또 걸어야 하는 곳에 있었다. 세상도 험한데 초등학교만큼은 내가 아이 손을 잡고 다니고 싶다 우겨서 초등학교가 가까이 있는 곳으로 기어이 이사를 감행했다. 전세 대란 시절이어서 걸어는 갈 수 있는데 산꼭대기로 좀 올라가야 하는 곳이었다. ‘맹모병’이냐는 비난도 들었다. 오직 통학 거리만 따졌는데 맹모병 소리를 들은 게 억울했지만 이사의 주목적이 아이 학교인 건 사실이니 아니랄 수도 없었다.
사립초등학교 입학 원서 접수가 시작되던 날에는 외국인학교 입학 부정에 대한 실질 심사 기사를 읽었다. 외국인 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려고 돈으로 국적을 산 이들에 대한 조사였다. 혐의를 받고 있는 이들 중에 알 만한 재벌가도 있다고 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사이에서는 그 부분이 적잖은 화제였는데, 재벌이 그런 부정에 연루됐다는 점보다는 그들이 그 세계에서 그렇게 흔하다는 원정 출산을 하는 대신 다른 나라의 국적을 돈으로 산 점을 더 놀라워했다. 아이를 원하는 학교에 보내려고 부정을 저지른 부분에 대해서는 오히려 관대했다. 그거야 공공연한 관행인데 걸린 사람이 재수 없는 거지라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빚내서 가르치는 사람도 있는데, 돈 있는 사람들이 뭐는 못하겠느냐 이해하는 분위기였다고나 할까.
교사로 재직 중인 친구가 요즘 아이들의 주민등록은 대부분 결손가정 상태라고 말한 적이 있다. 소득수준이 낮은 지역의 아이들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가족 붕괴로 생긴 실제적인 결손, 소득수준이 높은 지역의 아이들은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위장 전입으로 인한 서류상의 결손이란다. 눈에 보이는데도 일일이 대응하기 어려운 이유가 한두 명이 아닌 까닭도 있고, 자식 사랑이라는 허울 좋은 탈 때문이기도 하단다.
초등학교 입학을 두고 주위 분위기를 보니 조만간 내 주위에도 적잖은 서류상의 결손 가정이 생길 것 같다. 그중에는 평소 정의롭고, 사회 비판적이고, 타인을 돕는 일에 앞장설 줄 아는 도덕적인 이들도 제법 된다. 세상을 향한 잣대와 자식을 위한 잣대가 아무렇지도 않게 다르다. 게다가 두 개의 잣대가 다르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자식을 위한 부정이 하얀 거짓말로 둔갑한다. 그러나 자식의 허물을 감싸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식의 성공과 출세를 돕기 위한 부정이라면 그것도 역시 사랑이라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까. 부정과 편법으로 인생의 첫출발을 시작하게 해놓고, 대체 그 아이들과 어떤 방식으로 정의에 대해서 논하려는 걸까.
출발선에서 배운 편법과 부정키우는 아이가 한 명밖에 없고, 그나마도 7년밖에 키우지 못해서 나는 어떻게 자식을 키우는 게 잘 키우는 건지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아이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는 말자고 생각하는데, 편법과 부정으로 키워진 우리의 다음 세대에서는 정직과 노력이 부끄러움이 되는 건 아닌지 그게 걱정, 좀 많이 걱정이다.
한지혜 작가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최상목, 위헌 논란 자초하나…헌재 선고 나와도 “법무부와 논의”
체감 -21도 ‘코끝 매운’ 입춘 한파 온다…6일 다다를수록 추워
덕유산 ‘눈꽃 명소’ 상제루…2시간 만에 잿더미로
‘주 52시간 예외 추진’에…삼성·하이닉스 개발자들 “안일한 발상”
기어이 ‘관세 전쟁’ 트럼프의 속내…38년 전 낸 광고엔 노골적
도올 “윤석열 계엄에 감사하다” 말한 까닭은
최상목에 “헌재 결정 무시하라”는 권성동…그 얄팍하고 무지한 노림수
캐나다·멕시코, 미국에 보복 관세 맞불…‘관세 전쟁’
일본, 1시간 일해 빅맥 두 개 산다…한국은?
‘오징어 게임2’ 배우 이주실 별세…위암 투병 석달 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