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나 하자. 가끔 관계를 사유화하려는 나를 발견한다. 관계를 ‘권력’으로 잘못 읽는 나를 본다. 모든 소통의 채널이, 주파수가 나를 통해 맞춰져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아집과 오만, 독선과 독점의 유혹에 시달리는 나를 본다. 그 관계들이 나의 것이라는, 내 영토 안에 있는 어떤 부속물, 소유물이라는 환상에 빠지는 나를 본다. 그리하여 모든 일의 중심에 내가 서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나를 본다. 관계들 사이에서 지름길을 과시하고, 해결사를 자임하는 나를 본다. 모든 사람의 궁리와 노력과 모색과 실천으로 이뤄진 변화무쌍한 일들이 어느 틈에 다 내가 한 일이 되어버리고 만다.
관계들 사이에서 자본가이진 않았나
그러다 보면 나는 관계들 사이에서 내가 그토록 싫어한다던 일종의 자본가 행세를 하고 있기도 하다. 남들보다 월등하게 많은 ‘생산수단’과 ‘생산력’을 보유한 독점자본가 행세를 하는 것이다. 잠깐 타인에게 관계를 빌려주더라도 독점권을 잃고 싶지 않은 관계, 흔히 친구, 벗, 절친한 선후배, 동지라고도 부르는 관계다. 관계를 소중히 유지하고 깊어가게 하는 일들이 마치 무슨 투자 같은 개념으로 사고된다. 더 말 잘 듣고 충성스러운 ‘노동력’을 확보해가는 고차원의 노무관리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누구든지 모두 존귀한, 한명 한명의 인간을 알아가는 과정으로 관계맺기가 이어지지 않고, 낱낱의 사람들에게 은연중에 매겨진 상품가치나 교환가치에 따라 관계에 대한 투자의 질과 정도를 판단한다. 평등한 세상을 꿈꾼다지만 평등하게 보이지 않는다.
나쁜 일들이다. 하다못해 가끔 누군가에게 전화번호나 전자우편 주소 하나를 넘겨주며 소심해지는 나를 본다. 사람의 짓이 아니라 원숭이의 짓이다. 나와 절친한 관계들이 만나는 자리에 누군가 내가 불편해하는 사람이 동석하는 것을 거북해하는 나의 배타성을 본다. 공평하게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지 않고 특정 관계망이나 섹터를 만들고 패밀리를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지극히 종파적인 나의 폐쇄성, 비민주성을 발견한다. 특별한 사람들만이 파쇼가 되지는 않는다. 이런 내가 어떤 계기로 삐뚤어지기 시작하면 파쇼가 되기도 할 것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속에서 관계가 깊어지고, 일들이 추진되는 것을 위태롭거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지극히 소심한, 폭력적인 나를 본다. 누군가 정말 소중해서, 아름다워서, 즐거워서, 진정한 인간적 연대를 위해 만나는 것이 아니라, 거래처 사람들을 대하듯 사람들을 만나고 있지 않은가 의심스러운 나를 본다. 누군가를 진정 인간으로 만나지 못하고 온갖 욕망의 대상으로 만나고 있지 않은가 까마득한 나를 본다.
그러던 어느 늦은 밤, 오지 않는 택시를 한정 없이 기다리다 문득 ‘나는 관계를 사유화하고 있지 않은가, 소유하려 드는 것은 아닌가’라는 뼈아픈 자책이 들었다. 나를 떠나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관계를, 어떤 운동의 성과를 사유화하려 하지 않는지, 이젠 조금이라도 보상받고 싶어 하지 않는지라는 슬픈 생각이 들어 착잡했다. 이러려고 했던 게 아닌데. 꽃도 이름도 무덤도 없이 가자라던 젊은 날의 기백은 어디로 갔는가. 이렇게 자본의 상품 논리에 따라 내가, 우리가 작아지는 것이 슬프다. 위대했던 인간들의 역사로부터 멀어져 작고 소소한 소시민적 욕망의 포로가 되어가는 내가, 우리가 아프다.
어떤 꽃이 숲의 중심이라 하는가
오늘 돌이켜 나는 진짜 벗을 얻을 자격이 있는가. 나는 진짜 친구를 가지고 있는가. 나의, 나만의 친구를 넘어, 나를 둘러싼 수많은 존재들을 평등하게, 가감 없이 벗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어떤 꽃이, 나무가, 동물이 자신만이 그 숲의 중심이라 하는가. 어떤 빛이, 바람이, 비가 내가 그 숲을 다 키웠다고 하는가. 어떤 나무가 자신의 향기와 이파리 외에 다른 생명들의 노고를 가로채 더 많이, 더 높이 오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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