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이 집을 나갔다. 국민 건강·영양 조사를 보면, 2010년 우리나라 사람들의 16%가 하루 1번은 밖에서 밥을 먹었다. 10대는 38%가, 20대는 43%가 매일 꼬박꼬박 외식을 한다. 집에서 밥 먹을 때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배달식이나 레토르트, 냉동식품 등 간편식 시장은 해마다 커지고, 대부분 혼자서 밥상 앞에 앉는다. 한 조사에서 보면 밥을 사먹을 때 48.58%가 ‘집밥과 비슷한 가정식을 선호한다’고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제철 채소로 공들여 밥상을 차릴 시간이 없어서만도, 식당가에 ‘비밀의 손맛’을 지닌 할머니가 적어서도 아니다. 소설가 황석영은 “우리는 맛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노동의 땀과 나누어 먹는 즐거움의 활기, 오래 살던 땅, 죽을 때까지 언제나 함께 사는 식구, 낯설고 이질적인 것과의 화해와 만남, 사랑하는 사람과 보낸 며칠,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궁핍과 모자람이라는 조건”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눔과 활기. 우리 밥상에서 사라진 이 메뉴를 여럿의 손길로 보충하는 곳이 있다. 입맛을 잃어버린 사회에서 집밥다운 집밥의 맛을 전하는 곳을 찾아보았다.
‘김요리사’에서 ‘아빠요리사’로
우선 한 마을 공동체의 밥상이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성미산밥상’은 마을 주민 100여 명이 돈을 모아 차린 식당이다. 2010년 ‘국민 건강·영양 조사’에선 돌쟁이 아기 8%도 밖에서 점심을 먹는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보육기관에 맡겨진 아이들은 자연스레 학교 급식, 가족 외식으로 집밥보다 식당밥의 맛에 길들여진다. 성미산밥상은 집 밖에서 차려내는 집밥의 꿈을 꾸며 만들어진 식당이다. ‘누구나 와서 안전한 밥을 나누는 곳’을 목표로 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의 메뉴는 그야말로 ‘가정식’이다. 어른들은 된장찌개, 김치찌개, 콩나물비빔밥이나 제육볶음, 불고기를 주로 시키고, 아이들은 치킨커틀릿, 알밥, 우동을 좋아한다. 점심때 먹는 별식과 저녁때 먹는 평범한 집밥 메뉴를 갖춘 곳이다. 저녁때 와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치킨, 칠리새우, 표고탕수를 술안주로 시킨다. 국적도 정석도 없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흔한 음식들을 파는 이 식당이 색다른 것은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고 반찬을 재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곳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음식 중 하나라는 된장찌개를 시켜보았다. 1식 4찬. 현미와 조를 넣은 잡곡밥과 시래기나물, 미역나물, 무생채, 김치가 반찬으로 나왔다. 성미산밥상의 요리사이자 대표인 김광근(45)씨 말대로라면 “화학조미료를 넣었을 때처럼 확 당기는 맛은 없어도” 시래기나물은 장맛을, 미역줄기는 순한 맛을 정직하게 전하는 반찬이다. 멸치와 양파, 채소를 모아 국물을 냈다는 된장찌개는 말리지 않은 표고버섯과 호박이며 우렁, 두부, 청양고추 등속을 넣고 그저 한번 팔팔 끓여낸 것인데 맛이 심심하고 칼칼했다.
2009년 성미산 마을에서는 동네 식당을 만들자는 뜻이 모아졌다. 공동육아에서 시작해 학교며 극장이며 마을 만들기로 한창 뻗어나갈 무렵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당장 일을 떠맡을 사람이 없었다. 한 특허법률사무소에서 10년 동안 일해온 김광근(45)씨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한식과 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김씨는 진작부터 마을 행사 때마다 음식 준비를 도맡아 별명이 ‘김요리사’이기도 했단다. 2010년 4월 마을 공동사업으로 차려지는 성미산밥상이 문을 열었다.
성미산밥상을 찾은 7월10일, 낮에는 근처의 회사원들이, 저녁에는 성미산 마을 견학을 온 외부 손님 40여 명이 와서 함께 밥을 먹었다. 성미산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빠짐없이 들르는 식당인 셈이다. 그래도 식당은 여전히 어렵다. 김 대표는 “얼추 계산해보니 재료비만 밥값의 40% 가까이 든다. 성미산이라는 공동체의 ‘빽’이 없었다면 진작 문 닫았을 것”이라며 “식당을 하다 보니 밥값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지나치게 싼 밥값이 조미료를 부르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정직한 밥상을 위해서는 여럿이 뒷받침할 수밖에 없지 않나 싶기도 하다”고 했다. 성미산밥상이 마을 공동체의 자산인 이유는 매일 이곳에서 밥을 먹는 아이들 때문이다. 엄마가 늦게까지 일하는 아이들은 식당에서 알아서 저녁을 먹고 이름을 적어둔다. 김 대표는 마을 아이들의 밥을 해결하는 ‘아빠 요리사’로 불린다.
어린 시절 먹던 집밥의 기억을 되살리고 싶어서 ‘집밥 프로젝트’를 시작한 사람도 있다. 소셜 다이닝 ‘집밥’(www.zipbob.net) 사이트를 운영하는 박인(27)씨는 페이스북과 블로그로 “같이 식사하실래요?”라며 밥 제안을 건넸다. 지금까지 그 제안에 응한 사람들은 500명 정도, 53차례 식사 모임이 만들어졌다. 박인씨는 “외국의 소셜 다이닝은 여러 사람을 만나서 인맥을 쌓으려는 목적이 많지만, 우리의 집밥 프로젝트는 소통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집밥은 혼자 집에서 라면을 끓여먹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둘러앉아서 이야기하고 채움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채식주의자, 싱글 여성, 애완견 주인 등 비슷한 취향을 지닌 사람들이 모이기도 하지만 전혀 다른 사람이 기웃거리기도 한다. 박씨가 전하는 7월11일 모임에서는 마을 협동조합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식사 모임에 한 건축가가 왔다. “비싼 집, 가진 사람들만 만나기 지쳐서 좋은 일 하는 사람들과 밥숟가락을 섞고 싶은 마음으로 왔다”는 것이다. 집밥은 결국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먹느냐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장기 농성장에는 주방이 있다”
지난 3월에는 뜻밖의 밥상이 차려졌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신동기씨와 금속노조 조합원인 블로거 ‘오후에’가 합심해 해고자들과 시민들이 만나는 ‘희망식당’을 만든 것이다. ‘밥을 구하다가 (누군가의) 밥이 되어버린 우리 삶에 희망을’이라는 말과 함께 3월11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희망식당 1호점이 문을 열었다. 이어서 5월14일에는 상수역 앞에 희망식당 2호점이, 6월24일에는 충북 청주 수곡동에 3호점이 열렸다. 처음에는 쌍용차 해고자들이 농성하던 희망텐트촌을 넓은 세상으로 가져오는 듯 보였지만 지금은 모든 해고자와 시민들을 위한 식당으로 커나가는 중이다. “모든 장기 농성장에는 주방장이 있는 법”이라며 2호점은 기타 만드는 회사인 콜텍의 해고자 임재춘씨가 주방을 맡았다. 인디밴드들의 활동 무대인 이곳에서 기타 만드는 노동자가 음식을 만들고 예술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밥을 먹는다. 3호, 청주점은 같은 지역 유성기업의 해고노동자인 김풍년씨가 주방장을 맡았다.
하루 평균 손님 수는 100명 이상. 희망식당은 성업 중이다. 희망식당은 일주일에 하루만 식당을 빌려 문을 여는 ‘하루 식당’이다. 1호점은 매주 일요일, 2호점은 월요일마다, 3호점은 둘째·넷째 월요일에 술집이거나 한정식집이던 곳이 희망식당으로 변신한다. 일주일에 단 하루 문을 열고, 밥값은 단돈 5천원. 노동조합이나 어떤 단체의 지원도 받지 않는 이 식당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트위터와 블로그에서는 그날 손님을 맞는 호스트부터 설거지, 음식나르기를 자원하는 댓글들이 이어진다. 7월10일 희망식당 2호점에선 공지영 작가,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 이보은 요리연구가 등이 손님을 맞았다. 이날 메뉴는 콩국수. 트럭에 두부를 싣고 다니며 파는 ‘꽃맘두부’의 부부가 만든 콩국물에 말아낸 국수다. 진작부터 꽃맘두부 임덕희(35)씨는 더운 여름 땀흘리며 만든 두부를 틈틈이 희망식당에 보내던 참이었다. 이날은 아예 장사를 접고 하루 종일 식당 뒤에서 콩국을 내렸다. 아내 이꽃맘씨는 “우리 두부는 국산 콩으로만 만든 몹시 비싸고 착한 두부”라며 “희망식당 소식을 듣고 후원하고 싶다고 자청했다”고 했다. 수박도 감자도 모두 손님들이 가져다준 덕분에 밥상에 올랐다. 쌀이나 김치를 10kg씩 들고 오는 손님도 많았다. 200명 넘는 손님이 분주하게 드나들던 이날, 희망식당 매출은 236만원으로 최고 금액을 기록했다. 1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희망식당이 성업 중인 이유는 ‘밥을 먹자’는 이야기 덕분인 듯하다. 공지영 작가는 “오늘 몸살 났지만 진통제 투혼을 발휘했다”며 “사람이 5천원 가지고 기쁘기 힘든데 먹는 사람이나 차리는 사람이나 5천원짜리 밥에 기쁘고 행복했다”고 했다. 희망식당은 “오늘 희망식당의 피클은 아삭아삭합니다. 고객님 어찌 안 오시나요”라고 트위터에 멘션을 올리며 호객행위를 한다. 2호점을 매주 찾는다는 그래픽디자이너 김상도(43)씨는 “뜻에는 공감하더라도 희망버스는 타기 힘들었는데 가까운 곳에서 밥 한 번 먹는 일은 기꺼이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렇게 차려진 밥상은 농성장의 옹색하고 거친 밥상과는 거리가 멀다. 3호점이 문을 열던 날의 메뉴는 유성기업 조합원들이 농성장에서 가장 많이 먹던 김가루를 뿌린 주먹밥이었지만, 시원한 오이냉국에 돼지불고기와 여러 채소 반찬을 곁들인 성찬이었다. 2호점에선 아예 퓨전 요리를 하는 식당 ‘오요리’ 직원들이 주방을 맡아 마파두부, 냉짬뽕, 나시고랭, 유린기, 분차, 카르보나라 떡볶이 등 화려한 요리를 선보이기도 했다. 희망식당을 제안한 오후에씨는 “희망식당은 돈을 벌기 위한 곳이 아니다. 잘 먹고 가면서 ‘해고는 나쁜 것’이라는 말을 거들어주기 바라는 마음, 지친 해고자들이 와서 잘 먹고 힘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했다.
가장 낮고 끈끈한 밥의 연대
소박한 콩나물국이든 화려한 월남쌈이든 오늘 이곳에서 먹는 요리는 누군가의 마음이다. 7월9일 희망식당 1호점의 메뉴는 미역들깨수제비였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시장기를 덜라고 삶은 감자와 삶은 달걀이 미리 나왔다. 여기에 보리밥을 곁들이고 오이소박이, 돼지고기 장조림과 멸치를 넣은 꽈리고추볶음, 호박부침 등 7가지로 차려진 푸짐한 밥상 역시 5천원이다. 다시마와 멸치로 국물을 낸 진한 들깨 미역국에 크고 투박하게 빚어낸 수제비가 주인의 인심을 일러준다. 그런데 이곳의 주인이 누구더라? 1호점 주방을 맡은 쌍용차 해고자 신동기씨는 보이질 않았다. 전화해보니 생계 문제 때문에 경북의 한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단다. 주인이 자리를 비운 주방에서 블로거 오후에씨와 자원봉사자 장현민씨가 바삐 일하고 있었다. 해고자들이 밥상에 함께 둘러앉을 날은 멀지만 희망버스를 몰랐다는 시민들이 새로 밥식구가 되었다. 오후에씨는 “밥을 같이 먹는 일은 낮은 수준의 연대라지만 가장 끈끈하기도 하다. 오는 9월에는 서울시청 앞에서 1만 명이 함께 밥을 나누는 ‘밥 콘서트’를 열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집밥은 길을 나섰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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