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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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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메이드 부산 영화의 힘

부산에 자리잡은 영화인들이 신뢰와 양보, 자발적 희생 통해 지역 핸디캡 극복하고 인프라 활용할 수 있는 방법 찾아
등록 2011-10-14 11:14 수정 2020-05-03 04:26

지역 영화는 사투리를 쓰는 인물이 나오고 지역 풍광이 그럴듯하게 나오는 영화가 아니다. 지역 영화란 지역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영화인들이 그 지역의 영화적 인프라를 활용해 제작한 영화를 가리킨다. 부산에서는 이런 영화를 ‘메이드 인 부산 영화’라 부른다.

<심장이 뛰네> 키노아이DMC 제공

<심장이 뛰네> 키노아이DMC 제공

창조적 작업을 위한 기반도시

매년 11월 말이면 부산에서는 ‘메이드인부산 독립영화제’가 열린다. 지난해 이 영화제는 작은 변화를 겪었다. 지역에서 제작되는 장편영화가 늘어난 까닭에 상영관을 늘려야 했던 것이다. 영화제 쪽은 올해도 부산에서 제작된 장편영화가 최고 9편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서울과 비교하면 미약해 보일지 모르지만 열악한 지역의 영화 인프라를 고려할 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한때 부산 영화계에도 위기가 있었다. 부산의 많은 영화인들이 충무로를 뜨겁게 달궜던 물신주의적 욕망에 휩쓸리기도 했고, 부산을 제2의 충무로로 만들겠다는 장밋빛 구호에 들뜨기도 했다. 그 후유증으로 많은 영화인들이 지역을 떠났다. 아직도 비어 있는 40대 영화인들의 자리는 세상에 실망하고 자신에게 실망한 그 시대의 영화인들이 남겨놓은 자리다.

<수상한 이웃들> 키노아이DMC 제공

<수상한 이웃들> 키노아이DMC 제공

부산에 남은 영화인들은 선배들의 시행착오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이전까지는 혼자라도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쳤다면 이제는 함께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신뢰와 양보, 자발적 희생이 부산 영화인들 사이에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현재 부산에서 활동하는 감독들은 이 도시를 자신의 창조적 작업을 위한 기반도시로 인식하고 있다. 이는 부산을 수도권으로 진출하는 디딤돌 정도로 인식했던 과거와는 다른 태도다. 전수일 감독이 부산 영화의 터줏대감이라면, 최용석 감독과 박준범 감독, 올해 부산국제영화제(BIFF) 초청작 를 연출한 장희철 감독 등은 부산 영화의 미래를 짊어질 새로운 인물들이다. 의 김기훈 감독, 의 허은희 감독, 의 양영철 감독도 요즘 부산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지 말아야 할 인물들이다. 어려운 여건에도 꾸준히 지역에서 장편영화를 제작하는 ‘양양필름’(대표 양명숙)과 정성욱 촬영감독과 이성철 음향기사 또한 부산의 지역 영화를 지탱하는 중요한 버팀목이다.

부산 영화를 말할 때 빼놓지 말아야 할 부분이 다큐멘터리다. 최근 몇 년간 부산의 다큐멘터리는 다양성이나 완성도 면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계운경·김영조·박배일·김지곤 감독 등은 지역적 핸디캡에도 국내외 영화제에서 호평받은 우수한 다큐멘터리를 꾸준히 만들어왔다.

<이파네마 소년> 프리비젼엔터테인먼트 제공

<이파네마 소년> 프리비젼엔터테인먼트 제공

지역 영화산업 인프라 조성 시급

안타까운 것은 지역 영화인들의 열정과 재능을 뒷받침할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역의 영화전문가들은 부산 영화를 활성화하려면 인력, 자금, 정책 지원 등 영화산업 인프라를 조성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하지만, 이런 목소리는 아직도 구체적인 반향을 얻지 못하고 있다. 부산영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심재명 대표의 말처럼 “적은 자본으로도 다양한 영화를 많이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시급하다.

김이석 동의대학교 영화학과 교수·부산독립영화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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