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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하게’와 ‘물끄러미’의 어긋남

박형준의 시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어떻게 해석해도 가난한 사랑의 슬픔은 고스란히 고여 있네
등록 2011-09-08 18:35 수정 2020-05-03 04:26

8월30일 오후 4시경 서울 상수동의 어느 카페에 자리를 잡은 나는 그 뒤로 거의 2시간 동안을 한 편의 시만 읽고 또 읽게 된다. 하필 맨 처음 펼친 시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문제의 그 시는 박형준의 새 시집 (문학과지성사)의 표제작이다. 그렇게 2시간을 보내고 나는 다음과 같은 문자메시지를 시인에게 보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표제작만 몇 번을 다시 읽는 중입니다. 가슴이 아파요. 이런 아픔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날 때마다, 읽겠습니다.” 그 시를 옮긴다.

“그 젊은이는 맨방바닥에서 잠을 잤다/ 창문으로 사과나무의 꼭대기만 보였다// 가을에 간신히 작은 열매가 맺혔다/ 그 젊은이에게 그렇게 사랑이 찾아왔다// 그녀가 지나가는 말로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는 그때까지 맨방바닥에서 사랑을 나눴다// 지하 방의 창문으로 때 이른 낙과가 지나갔다/ 하지만 그 젊은이는 여자를 기다렸다// 그녀의 옷에 묻은 찬 냄새를 기억하며/ 그 젊은이는 가을밤에 맨방바닥에서 잤다” 총 10연으로 돼 있는 시의 전반부다. 뒷이야기는 이렇다.

“서리가 입속에서 부서지는 날들이 지나갔다/ 창틀에 낙과가 쌓인 어느 날// 물론 그 여자가 왔다 그 젊은이는 그때까지/ 사두고 한 번도 깔지 않은 요를 깔았다// 지하 방을 가득 채우는 요의 끝을 만지며/ 그 젊은이는 천진하게 여자에게 웃었다// 맨방바닥에 꽃무늬 요가 펴졌다 생생한 요의 그림자가/ 여자는 그 젊은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과나무의 꼭대기,/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여기까지다. 나는 이 시의 묘미가 부사(副詞)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 시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이렇게 복기했다.

반지하방에 사는 사내가 있다. 사과나무에 “간신히” 열매가 맺힐 때 그에게도 “간신히” 사랑이 왔다. 방바닥에서 사랑을 나눴다. 그래서 여자는 허리가 아팠다. 여자가 한동안 오지 않는다. “때 이른” 낙과처럼 “때 이른” 이별이 오려는가. “하지만” 사내는 여자를 기다린다. 요를 사두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오면 요를 깔고 사랑을 나누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자는 왔다. 이 “물론”은 절묘하다. 두 개의 뉘앙스가 함께 있어서다. (1)그래, 간절한 마음만 있으면 사랑은 뜻대로 되는 거지! (2)이 답답한 사내야, “물론” 오기야 하겠지, 그러나 그런들?

언뜻 (1)인데 결국은 (2)였다. 사내는 요를 깔고 “천진하게” 웃지만 그녀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한다. 그녀가 기뻐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녀의 마음속에선 어떤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영영 떠났다. 사내는 지금 사과나무를 보며 울고 있지만, 뭘 알기는 하고 우는가? 요 하나가 방을 다 채울 만큼 작은 그의 방이 문제였다는 것을, 사랑하는 여자를 침대에 눕히지도 못하는 그 가난이 문제였다는 것을, 그런 줄을 모르는 이의 간절함은 상대방에게 오히려 잔인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니 이 시는 결국 “그 젊은이는 천진하게 여자에게 웃었다”와 “여자는 그 젊은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라는 두 문장으로 요약된다. 아니, 더 짧게는, “천진하게”와 “물끄러미”의 어긋남에 모든 게 들어 있다. 사내가 창피해했거나 화를 냈거나 혹은 허세라도 부렸다면, 그녀는 희망을 가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내는 “천진하게” 웃었다. 그녀는 깨달았을 것이다. 이 사내는 바뀌지 않겠구나, 나는 이 천진함을 견디지 못하겠구나, 결국 이 사내를 미워하게 되겠구나. 그러니 그녀의 “물끄러미” 안에는 또 얼마나 많은 슬픔이 있었을까.

그날 저녁에 사람들을 만났고 이 시를 보여주었다. 놀랍게도 의견이 갈렸다. 요를 산 뒤부터의 이야기는 남자의 슬픈 환상인 것처럼 보인다는 의견이 있었다. 여자가 오기는 했으되 다른 여자가 아니었겠느냐고 짐작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만든 이야기를 버릴 수 없었다. 누군가 물었다. ‘생각날 때마다 우는’ 남자의 마음을 알겠느냐고. 나는 되물었다. 허리가 아프다 했더니 침대가 아니라 요를 사는 남자가 슬퍼서 떠나는 여자의 마음을 알겠느냐고. 여하튼 너무 슬픈 시라고 투덜거리며, 우리는 경쾌하게 술잔을 부딪쳤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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