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음악은 모든 이가 누려야 할 권리다

예술보다 인권이 중요하다며 투쟁 현장 찾는 ‘멍구밴드’
권위·관습·상식 허물며 “누구나 예술 즐기는 사회” 꿈꿔
등록 2011-07-15 17:53 수정 2020-05-03 04:26
멍구밴드는 이대로가 좋단다. 자유롭게, 모두가 할 수 있는 음악을 하는 것 말이다. 그 안에는 ‘프로’라는 말이 담기지 않는다. 지난 7월4일 저녁 서울 동교동 합주실에서 멍구밴드가 연습하고 있다. 모글리, 밍구, 젤리, 즈우(왼쪽부터). 한겨레21 이종찬

멍구밴드는 이대로가 좋단다. 자유롭게, 모두가 할 수 있는 음악을 하는 것 말이다. 그 안에는 ‘프로’라는 말이 담기지 않는다. 지난 7월4일 저녁 서울 동교동 합주실에서 멍구밴드가 연습하고 있다. 모글리, 밍구, 젤리, 즈우(왼쪽부터). 한겨레21 이종찬

그들은 노래를 한다. 기타, 드럼, 보컬이 갖춰진 4인조 밴드다. 공중파에 나오는 밴드는 아니다. 그럼 인디밴드인가? 그것은 아니다. 직장인 동호회 밴드? 그것과도 거리가 멀다.
이들이 공연을 앞두고 합주실에 모였다. 대여료가 저렴한 합주실이다. 나는 감탄했다.
“여러분처럼 가난한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이네요.”
그 말에 밴드가 정색한다.
“저희 예술가 아닌데요.”
“저희 안 가난한데요?”

‘가난한 예술가’는 절대 사양

자신들은 예술가가 아니라고 한다. 더구나 ‘가난한 예술가’ 딱지는 절대 사양이란다. 그들은 내게 엄포까지 놓는다. 자신들을 ‘홍대’로 상징되는 인디밴드라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가난하지만 예술적 열정으로 똘똘 뭉친 자유로운 영혼의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면 인터뷰 대상을 잘못 찾은 거라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들을 멀리서 보아온 터다. 그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을 찾아온 이유는, 당신들이 애매모호해서라고. 음악에 매진하지도, 그렇다고 돈벌이에 가치를 두지도, 게으르게 살지도, 모든 것에 열의를 쏟아붓지도 않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즐기며, 인생을 제대로 살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아 보이는 당신들의 정체를 알고 싶어서라고.

밴드의 명칭은 ‘멍구밴드’다. 젤리, 모글리, 즈우, 그리고 ‘밴드의 이름을 맡고 있는’ 멍구가 그 구성원이다. 멍구라는 이름이 붙어 그가 리더처럼 보이지만, 절대 아니란다. 이 밴드에는 리더가 없다. 재미있는 것은 멍구밴드가 세포분열을 한다는 사실이다. 네 명이 모이면 팝펑크를 지향하는 ‘멍구밴드’, 모글리와 멍구가 뭉치면 어쿠스틱을 지향하는 ‘어쿠스틱 멍구’, 젤리와 멍구가 결합하면 ‘멍구빵구’가 된다. 멍구빵구는 무슨 음악을 하냐고 물었더니 팝과 가요를 한단다. 이 밴드의 음악적 지향이 무엇인지 가듬하기 어렵다.

이들의 결성 과정은 이렇다. 모글리는 원래 있던 밴드의 활동이 저조해지자 연주를 하고 싶은 마음만 커져갔다. 마침 드럼을 치던 멍구가 있었다. 두 사람이 밴드를 만들자는 이야기를 나누던 술집에 즈우가 들렀고, 합석했다. 그렇게 악기가 모였다. 그들은 젤리가 ‘악을 잘 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젤리에게 문자를 보냈다. “보컬 해라.”

멍구밴드 멤버들. 한겨레21 이종찬

멍구밴드 멤버들. 한겨레21 이종찬

멍구밴드의 곡은 대부분 젤리가 만들었다. 젤리는 단순하고 쉬운 멜로디의 곡을 주로 썼다(그들은 젤리의 멜로디를 ‘만화주제가’류라고 했다). 즈우가 음악을 하게 된 계기가 바로 그 단순하고 쉬운 멜로디 때문이라고 했다.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쉬운 음악이 고3 즈우의 귀에 꽂혔다. 당시 즈우의 학교는 그 지역에서 서울대 진학률이 가장 높기로 유명했다. 학부모 모임에서 매년 커다란 몽둥이를 선생님들께 선물로 드리는 진풍경을 펼치는 학교, 아이들을 매로 다스리고 윽박질러 ‘좋은’ 대학을 보내는 학교였다. 즈우는 정규수업은 어쩔 수 없이 하지만, 정말이지 야간 자율학습만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학부모 소환까지 겪으며 자율학습을 빠지는 데 성공했다. 친구들은 학교에 있을 시간, 집에 혼자 남아 음악을 들었다. 스트레스가 쌓였으니 빠르고 강한 비트의 록 음악이 끌렸다. 혼자 방 벽에다 슬램(록공연장에서 사람들이 이리저리 몸을 부딪히며 음악을 즐기는 퍼모먼스)을 하면서 공연장 풍경을 따라했다. 그렇게 음악을 알아갔다. 마침 천리안·하이텔 등 온라인 통신이 보급됐다. 온라인 통신을 통해 학교가 아닌 다른 공간에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즈우는 ‘다른’ 사람들을 알게 됐다. 음악하는 이들을 만났다. 그리고 이들이 하는 따라하기 쉬운, 그래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음악을 알게 됐다.

오프라인에서 만난 이들은 신기했다. 나이가 다른데도 서로를 별명으로 불렀다. 형·누나·선배 같은 호칭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서로 존중하면서도, 발랄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어울리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스무 살 즈우가 다른 세상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나는 즈우가 그들을 처음 만났을 적 받았던 인상을 알 듯하다.

“지금 제가 이분들을 보는 기분이었겠네요.”

“누구나 인권과 사회에 관심 가져야”

멍구밴드는 각자를 별명으로 불렀다(인터뷰 조건도 이름 대신 별명을 공개한다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높이는 일이 없었다. 서로 나이도 몰랐다. 인터뷰 중 모글리가 대학 시절 이야기를 하며 ‘오래돼 기억이 안 나는데’라고 말을 흘리기에 나는 “나이가 어떻게 되시기에 기억이 안 나요?”라고 물었다. 그런데 아무도 모글리의 나이를 몰랐다. 그들은 서로 나이를 묻지 않았다. 나이를 대단치 않게 여겨서다. 모글리를 판단하는 데 돈이나 학벌이 의미가 없듯, 나이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몇 살의 차이로 권위가 만들어지는 것을 거부했다.

모글리는 일본인이다. 어쩐지 억양이 좀 남달랐다. 모글리의 어머니는 지역운동 활동가였다. 모글리의 말로는, 어머니는 ‘도서관 운동’을 했다. 큰 도서관이 하나 있는 것보다 작은 도서관이 곳곳에 있는 것이 낫다, 이게 어머니의 지론이었다. 1980년대 일본 사회는 정치에 무관심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모글리는 어머니를 보며, 시류와는 다른 삶을 배웠다. 모글리는 수험생이 되었고, 대입시험을 치르러 간 대학에서 기숙사 학생자치회를 알게 됐다. 정치를 이야기하면서도 유쾌하고 자유로운 그들의 모습에 반한 모글리는 순간 전공을 바꿨다. 원래 물리학을 전공할 생각이던 모글리는 새로운 마음을 먹었다. ‘학과는 상관없다, 저 대학에 갈 수만 있다면. 저 대학 기숙사에 들어가야 한다.’

다행히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다. 기숙사 학생자치회에 가입해 4년을 잘 보냈다. 그런데 졸업 뒤 취업할 곳이 없었다. 취업난이었다. 집에만 있으니 활기가 사라졌다. 그는 목표를 세웠다. 한국에 가자, 한국에 가기 위해 돈을 모으자. 모들리에게는 변화가 필요했다. 왜 굳이 한국이었느냐고 물으니, 대학 때 한국에 온 경험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은 인상 깊었다. 정확히는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의 인상이 좋았다. 자유롭고 권위적이지 않은 문화를 지향하는 또래들이었다. 그 무리는 멍구밴드로 이어진다.

멍구는 모글리를 대면하기 전, 소문을 먼저 들었다. “요리 잘하는 일본인이 있대.” 모글리는 서울 명동성당에서 밥을 지었다. 2004년의 일이다. 멍구밴드로 뭉치기 전이었다. 네 사람은 모두 그곳에서 밥을 지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해 대규모 단속·추방이 있던 해였다. 산업연수제도 시절부터 한국에 들어와 수년간 저임금 노동을 전전하던 이주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어떤 대책도 없이 추방될 신세였다. 이주노동자들은 명동성당 들머리에 모여 농성했다. 그 농성이 해를 넘겼다. 거리에서 버너를 사용해 끼니를 해결했다. 몇몇 이들이 모여 새 방식으로 이주노동자들을 지지하기로 했다. 날을 정해 이주노동자 대신 밥을 하는 것이었다. 명칭조차 ‘투쟁과 밥’이었다.

이들은 밥만 한 것이 아니다. 퍼포먼스도 하고 노래도 했다. 이들의 노래는 조금 이상했다. 싸우는 공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연이 아니었다(그러나 촛불집회 뒤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북을 들고, 기타를 들고, 어떤 이는 아프리카 악기를 가져와 두들기며 흥을 냈다. 관객은 새로운 방식의 공연에 적응하지 못해 조용하기도, 어떤 날은 연주자들의 자유로움에 전염된 듯 환호하기도 했다.

멍구밴드는 싸우는 곳을 가리지 않는다. 지난해 서울 용산 남일당, 올해 홍익대 앞 두리반(두 곳 모두 철거 싸움이 있던 곳이다)에도 그들이 있었다. 멍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권과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게 옳다”고 말한다. ‘운동권인가’라고 묻자 그는 되묻는다.

자유롭게 모두가 할 수 있는 음악

“운동권도 아닌 사람이 그런 관심을 가지면 이상한 일인가요?”

그는 살아가며 ‘그런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를 무수히 만났다. 종일 아르바이트를 하고 ‘겨우 요만큼의’ 아르바이트비를 받을 때, 같이 공익근무를 하던 조폭들이 알고 보니 자신과 별다를 것 없는 사람임을 알았을 때, 어리다는 이유로 형보다 세뱃돈을 적게 받아서 억울했을 때, 그 순간순간에 그는 ‘그런 관심’과 만났다. 그는 음악을 좋아했다. 드럼을 쳤다. 젬베도 연주할 줄 알았다. 공연이 가능했다. 그러니 할 줄 아는 걸,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했다. 자신이 관심이 있는 자리에서.

젤리는 대학 시절, ‘교지편집위원회’에서 일했다. ‘재개발지역 철거 문제’에 관한 기사를 쓰려고 경기도 고양시 일산 풍동 재개발 지역을 찾았다. 그곳에서 멍구를 비롯해 ‘투쟁과 밥’ 사람들을 만났다. 재밌는 친구들이었다. 젤리는 그들과 합류했다.

젤리를 비롯한 이들은 뭐랄까, 거리낌이 없어 보인다. 한편으로는 행동이 조심스럽다. 이들은 대화하는 내내 상대의 말을 중도에 끊는 법이 없다. 혹여 실수로 상대의 말을 끊었다면, 곧 사과를 한다. 통념도 상식이라는 권위로 그냥 받아들이는 일이 없다. 최근 젤리는 새 직장을 가졌다. 축하한다고 인사하자, 젤리는 되묻는다.

“축하해요? 왜 축하를 하는데요?”

그러게, 왜 축하를 했을까? 나 자신에게 묻는다. 습관 때문이다. 사회적인 습관. 멍구밴드에게 당연한 것은 없다. 권위, 상식, 모든 것을 다시 한번 뒤집는다. 내 자유를 얻고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려는 배려의 방식이다. 나는 ‘구리다’는, 또는 ‘틀에 박혔다’는 말없는 비난을 들을 각오를 하고 말했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히피스럽네요.”

음악 이외의 삶은 어떠할까? 멍구는 파견노동자다. 대기업 전산실로 파견을 나간다. 멍구의 회사는 갑·을·병 중 심지어 ‘병’이란다. 월급도 ‘병’인 파견회사 마음대로 올릴 수 없다. 대기업은 멍구에게 말한다. “당신들이 비정규직이라는 생각을 버려라. 당신들은 파견회사의 정규직 노동자다.” 불합리하다. 부당해고도 당해봤다. 하지만 그는 정당한 대가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제 힘으로 벌이를 한다.

나는 멍구밴드에게 물었다. 혹시 일하느라 연습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안타깝지 않느냐고. 젤리는 생협 활동을, 즈우는 영상편집·기획을, 그들은 모두 각자 일을 하고 있다.

“일을 안 한다고 음악이 더 좋아질 것 같지 않아요.” 젤리는 이어 말한다.

“딱히 음악을 기술적으로 잘하고 싶지는 않아요.”

동료들도 인정한다. 젤리는 기타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 미숙하게 그러나 감성적으로(그들은 ‘막 쳤다’라고 표현했다) 연주했을 때가 더 듣기 좋았다고. 물론 음악을 잘하고 싶다. 즈우는 더 큰 무대에서 연주하고 싶다고, 모글리는 그들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연주해보고 싶다고 한다. 반면 멍구는 큰 무대에서 하는 연주를 바라지 않는다. 구성원 각자의 생각은 다르나 이것 하나에는 모두 동의한다. ‘멍구밴드는 이대로가 좋다.’ 자유롭게, 모두가 할 수 있는 음악을 하는 것. 그 안에는 ‘프로’라는 말이 담기지 않는다.

예술을 하지만 예술가는 싫다

그들은 ‘예술가’라는 말을 질색한다.

“음악가라는 말 자체에 사람들의 판타지가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가난한 예술가’라는 말이 더 낭만적으로 들리는 거고요. 음악이라는 것이 희생을 감수하면서, ‘가난한’이라는 수식까지 불사하면서 투신하고 열성을 다 바쳐도 좋을 만한 어떤 것이라는 이미지는 사회가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젤리의 말을 멍구가 받는다.

“음악은 유희적이면서 창조적인 작업이잖아요.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권리라고 생각하거든요. 자본주의체제에서 사회가 분업화되면서 예술이 전문적 영역으로 돼버렸어요. 누구나 예술을 즐기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들의 정체는 여전히 모호하다. 예술은 하지만 예술가는 싫다 하고, 싸움이 벌어지는 공간에 가지만 가사에 그 내용을 직접적으로 담지 않는다. (싸움에 관한 가사를 왜 쓰지 않느냐고 물으니, 곡을 쓰는 젤리는 답한다. “안 써져요.” 이 여자, ‘쿨내’ 난다. 즈우가 말을 거든다. 젤리의 얽매이지 않는, ‘뱉어낸’ 듯 쓰는 곡이 마음에 든다고.) 모호한 성격, 하지만 분명한 지향을 가진 밴드다. 마지막으로 이 친구들의 정체를 밝히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멍구밴드’ 노래의 가사 두어 절을 담는다. 어찌됐든, 가사가 재밌다. 거의 유일하게 ‘싸우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당신을 유혹하는 매력만점 철거농성장, 사랑과 연대를 저질러놓고… 너와 나는 너무나 다르지만 같은 것을 얘기할 수 있고 또 싸울 수 있고 술 마시고 춤추고 서로 변해가고 항상 말해온 그것….”

글 희정 제2회 손바닥 문학상 당선자

사진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