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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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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안 가득 알싸하고 달콤한 봄

‘영양 침체기’인 겨울 지나 만나는 ‘영양 충전소’ 봄나물들…
냉이·쑥·달래·두릅 등으로 착한 밥상 차려 몸으로 봄을 만끽하자
등록 2011-03-11 16:11 수정 2020-05-03 04:26

침이 고인다. 코는 부엌에서 무심히 끓고 있는 냉잇국을 흘낏대고, 입은 초고추장에 슬쩍 무친 달래를 바라본다. 눈은 살짝 데친 두릅 앞에 벌써 무릎을 꿇었다. 쑥을 넣은 냄비밥이 완성되면 서둘러 밥그릇을 집어들고 일단 냉잇국을 한 수저 뜬다. 동시에 달래와 두릅, 쑥이 마구 뒤엉켜 입으로 들어간다. 그러고 나면 불쑥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아, 봄이다.”

입안 가득 알싸하고 달콤한 봄

입안 가득 알싸하고 달콤한 봄

몸에 봄을 일깨워주는 봄나물

날씨는 아직 스웨터 없이 길거리를 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쌀쌀하지만, 마음은 저만치 봄에 가 있다. 이럴 때, 마음은 봄에 가 있는데 아직 날씨는 봄이 아닌 것 같을 때, 꼭 필요한 게 봄나물이다. 봄나물은 몸에 봄을 일깨워준다. 지난 석 달 동안 우리의 몸은 ‘영양 침체기’인 겨울을 지나왔다. 겨울에는 날씨가 추워 활동량이 줄어들고 좀처럼 만나기 힘든 녹색 채소의 섭취량도 그만큼 줄어든다. 추운 날이 지나고 날씨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면 우리의 움직임은 조금씩 커진다. 늘어난 활동량과 일조량에 잘 적응하려면 단백질과 무기질, 비타민이 가득한 봄나물이 필요하다. 봄이 ‘영양 충전기’라면, 봄나물은 ‘영양 충전소’다.

봄나물은 봄에만 나는 제철 나물이다. 냉이, 더덕, 씀바귀, 도라지, 달래, 두릅, 미나리, 봄동, 원추리, 쑥, 돌나물, 취나물, 유채, 민들레, 보리순, 머위 등 소리 내서 읽고 싶어지는 이 나물들이 모두 봄나물이다. 봄나물의 특징은 초록 빛깔과 향이다. 짙은 초록색에서 선명한 초록색, 은은한 연두색까지 저마다 다르다. 향도 마찬가지다. 어떤 나물에서는 짙은 뿌리 냄새가 나고, 어떤 나물에서는 달콤한 냄새가 난다. 신기한 건 향은 다르지만 그 안에 특유의 봄 내음이 스며 있다는 점이다. 코를 살짝 건드리는 봄 내음 덕분에 멀리서도 냄새만으로 봄나물의 존재를 짐작할 수 있다.

이맘때쯤 재래시장이나 마트에 가면 향긋한 봄나물이 종류별로 나와 있다. 요즘엔 하우스 재배가 많아져 1월부터 5월 초까지는 봄나물을 맛볼 수 있다. 최근 (수작걸다 펴냄)를 출간한 요리연구가 오은경씨는 “초록이 싱싱하고 잎이 수분을 함유해 탄력 있으며 제 모양이 잡혀 있는 나물을 고르라”고 조언한다. 눈으로 보기에 신선한 봄나물에 비타민도 많이 들어 있다. 마을 뒷산이나 등산길에도 냉이나 쑥은 쉽게 눈에 띈다. 햇살이 따뜻한 주말 오후에 가족끼리 비닐봉지를 들고 뒷산에 올라 냉이와 쑥을 비롯해 눈에 띄는 봄나물을 뜯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 ‘봄스러운’ 시간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입안 가득 알싸하고 달콤한 봄

입안 가득 알싸하고 달콤한 봄

봄나물의 꽃, 냉이·쑥·달래·두릅

봄나물을 준비했다면 이제 먹는 일이 남았다. 예전에는 봄나물로 국이나 밥, 나물 등을 주로 해먹었다면 최근에는 조리 과정이 간단한 샐러드나 겉절이, 튀김, 전 등으로 많이 먹는다. 달래나 봄동, 돌나물, 참나물, 미나리, 민들레는 잘 씻어 그대로 먹어도 좋은 나물이다. 반면 두릅이나 취나물, 쑥, 머위, 질경이, 씀바귀는 끓인 물에 살짝 데쳐서 먹어야 맛이 좋다. 봄나물도 여자에게 좋은 나물이 있고, 남자에게 좋은 나물이 있다. 쑥은 여자의 몸에 좋고, 두릅이나 달래는 남자에게 좋은 정력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들 먹을거리로는 먹기 쉬운 냉이나 봄동이 괜찮다.

수많은 나물 중 올봄에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먹어야 하는 ‘봄나물의 꽃’을 꼽는다면? 오은경씨는 “냉이와 쑥, 달래, 두릅”이라며 “봄 향기가 가장 진한 나물”이라고 설명한다. 냉이는 단백질과 칼슘, 비타민의 함유량이 높아 몸에 두루두루 좋은 나물이다. 냉이는 국이나 무침으로 주로 먹는다. 달래에 달린 알뿌리는 비타민과 칼슘의 보고다. 전이나 생채무침으로 주로 먹는다. 봄을 대표하는 줄기채소인 두릅은 샐러드나 냉채 등으로 먹는 게 좋다. 면역력 강화에 좋은 쑥은 어떤 요리와도 잘 어울린다는 장점이 있다. 밥이나 국, 떡, 튀김으로 먹어도 손색이 없고 잘 말려 차로도 끓여 마신다. 쑥을 말리는 법은 간단하다. 물에 씻어 끓는 물에 소금을 조금 넣고 살짝 데친다. 찬물에 헹군 다음 채반에 널어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며칠 말린다. 바싹 말린 쑥을 차로 끓이면 된다.

오은경씨의 도움을 받아 네 가지 대표 봄나물로 한 상을 차려보기로 했다. 쑥현미콩밥과 냉이된장국, 두릅묵냉채, 달래오징어무침으로 구성한 한 상은 가벼운 점심이나 저녁 상차림으로 적당하다.

쑥현미콩밥
쑥현미콩밥

쑥현미콩밥

쑥은 밥에 가장 잘 어울리는 봄나물이다. 현미와 콩으로 지은 밥에 쑥을 넣으면 윤기 나는 밥알 사이로 쑥향이 천천히 올라온다. 쑥현미콩밥은 입에 넣기만 해도 이상하게 건강해지는 기분이 드는 신기한 밥이다. 이 밥은 전기밥솥보다 냄비밥이나 뚝배기밥으로 하는 게 좋다. 밥을 지을 때 쑥을 처음부터 넣으면 향이 덜하고 질겨질 수 있으므로 밥이 거의 다 됐을 때 쑥을 얹어야 한다. 쑥은 맛과 향이 강하기 때문에 조금만 넣어도 충분히 맛을 낼 수 있다. 쑥현미콩밥은 봄나물 반찬과 함께 먹거나 양념간장을 곁들여 비벼먹어도 좋고, 고기 요리, 생선 요리를 먹을 때 곁들여 먹으면 소화를 도울 수 있다.

재료: 쑥 한 줌(50g), 현미 1/2컵, 쌀 1컵, 불린 검은콩 1/2컵(2인 기준)

만드는 법:

1. 쑥은 줄기 끝을 자르고 누런 잎을 떼어내 씻은 다음 두 번 자른다.

2. 현미와 쌀은 씻어 물에 30분간 불린 다음 건진다. 냄비에 불린 현미, 쌀, 불린 검은콩을 넣고 1.2배의 물을 부어 밥을 짓는다. 밥이 세게 끓으면 중불로 줄인다. 밥물이 완전히 잦아들면 약불로 줄인다.

3. 밥을 주걱으로 저어준 다음 쑥을 얹는다. 뚜껑을 덮고 마저 뜸을 들인다.

쑥현미콩밥

쑥현미콩밥

냉이된장국

냉이된장국

냉이된장국

냉이는 그 향만으로도 식욕을 돋운다. 담백한 된장과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여기에 시원한 모시조개를 넣으면 냉이된장국 맛이 더 깔끔해진다. 냉이된장국은 식욕을 끌어올리고 피로를 없애주는 데 더없이 좋다. 냉이된장국은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게 한다. 산성식품인 고기 요리나 해산물 요리를 먹을 때 알칼리성식품인 냉이된장국을 곁들이면 영양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 단, 냉이는 오래 끓이면 향도 덜하고 질겨질 수 있다.

재료: 냉이 한 줌(50g), 모시조개 200g, 홍고추 1개, 대파 1/4대, 된장 2큰술, 다진 마늘 1/2작은술, 다시마 1장(10cm 길이), 소금 조금(2인 기준)

만드는 법:

1. 냉이는 뿌리 쪽의 지저분한 곳을 긁어내고 누런 잎을 떼어낸 다음 씻어서 두세 번 자른다. 홍고추, 대파는 어슷썬다.

2. 모시조개는 옅은 소금물에 담가 신문지로 덮어 해감한 다음 비벼 씻어 불순물이 빠지면 건진다. 냄비에 모시조개, 물 두 컵 반을 붓고 다시마를 넣어 끓인다. 조개가 입을 열면 다시마는 건진다.

3. 조개국물에 된장을 풀고 냉이, 파, 홍고추, 다진 마늘을 넣어 잠깐 더 끓인다.

냉이된장국

냉이된장국

달래오징어무침

달래오징어무침

달래오징어무침

채소는 본래 불에 익히거나 물에 끓이지 않을 때 영양소가 가장 잘 보존된다. 달래는 특히 그렇다. 달래를 생으로 먹을 때는 식초를 넣고 무쳐야 비타민C를 가장 많이 섭취할 수 있고 영양소 파괴도 막을 수 있다. 달래를 오징어와 고추장 양념에 함께 무치면 아삭함과 쫄깃함이 잘 어우러져 입맛을 돌게 한다. 알싸한 달래무침은 육류의 콜레스테롤을 씻어주는 역할을 하므로 갈비찜, 고기구이, 묵, 생선구이, 생선조림 등의 요리와 곁들여 먹는 게 좋다.

재료: 달래 1/2묶음, 오징어 1/2마리, 홍고추 1/2개(2인 기준)

무침 양념: 고추장, 고춧가루, 다진 파, 식초, 올리고당 1큰술, 깨소금, 참기름 1/2큰술, 다진 마늘 1/3작은술

만드는 법:

1. 달래는 알뿌리 쪽의 검은 부분을 칼로 도려낸 다음 씻어 4㎝ 길이로 썬다. 홍고추는 씨를 털고 굵게 다진다.

2. 오징어는 종이타월로 껍질을 벗긴 다음 4㎝ 길이로 가늘게 채썰어 끓는 물에 데쳐 건진다.

3. 그릇에 고춧가루, 고추장, 올리고당, 다진 파, 다진 마늘, 깨소금을 섞고 달래와 오징어를 넣어 버무린다. 마지막에 식초와 참기름을 넣어 살살 털듯이 무친다.

달래오징어무침

달래오징어무침

두릅묵냉채

두릅묵냉채

두릅묵냉채

두릅은 참두릅, 땅두릅, 개두릅으로 나뉜다. 가시가 있는 두릅이 참두릅으로, 밑동을 자르면 먹을 것은 적은 편이다. 땅두릅과 개두릅은 버릴 부분이 없고 줄기 끝까지 다 먹을 수 있다. 베어물면 향긋한 즙이 느껴지는 두릅과 입속으로 미끄러지는 묵은 서로 다르지만 그래서 더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여기에 고추장처럼 강한 양념보다는 된장이나 조선간장 등 부드러운 양념으로 조리하면 두릅의 향을 즐기면서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고기 요리, 해산물 요리, 생선회 등과 곁들여 먹으면 소화를 돕는다.

재료: 참두릅 150g, 청포묵 1/2모, 달걀 1개, 홍고추 1/2개, 소금, 식용유(2인 기준)

묵양념: 깨소금. 참기름 1큰술, 소금 조금

매실된장소스: 된장, 생수 1큰술, 매실청 2큰술, 다진 파, 깨소금, 참기름 1/2큰술씩

만드는 법:

1. 참두릅은 밑동을 자르고 줄기에 잔가시가 있을 경우 칼로 도려낸다. 소금을 넣은 끓는 물에 1분간 데친 다음 찬물에 헹궈 건진다.

2. 청포묵은 채썰어 깨소금, 참기름, 소금으로 양념한다. 달걀을 소금간 해 체에 내린 다음 얇게 지단을 부쳐 3㎝ 길이로 채썬다. 홍고추는 씨를 털고 지단 길이로 채썬다.

3. 된장에 양념을 섞어 짜지 않은 된장 소스를 만든다. 접시에 묵무침, 두릅, 지단채, 홍고추채를 얹고 소스를 뿌려 버무려 먹는다.

두릅묵냉채

두릅묵냉채

글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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