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메트)에서는 1987년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됐던 의 2월2일 메트 초연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후진타오 중국 주석의 미국 순방, 날로 뛰어오르는 중국의 기세를 생각해보면 메트의 선택은 매우 절묘했다는 생각이 든다.
1972년 2월21일 베이징 공항.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오브 아메리카’라고 큼지막하게 쓰인 에어포스1의 트랩에서 미국 대통령 닉슨이 내려오는 장면은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중국은 당시 ‘중공’이라고 불렸고, 미국과 서방세계의 적성국가였기 때문이다. 닉슨 대통령 본인이 “세계를 바꾼 일주일”이라고 불렀던 중국 방문에 미국인들은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매일같이 ‘죽(竹)의 장막’을 걷어올린 이 사건에 대해 알고 싶어 TV 뉴스에 매달렸다.
작곡가 존 애덤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작은 흑백 TV를 통해 이 장면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미국 대통령이, 그것도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 ‘붉은 중국’(Red China)을 방문해 마오쩌둥을 만나 악수를 하고, 저우언라이와 헨리 키신저가 함께 만나는 극적인 모습이라니. 이건 진정한 오페라의 소재라고 생각했다.
앨리스 굿맨의 대본, 존 애덤스와 평생의 친구인 피터 셀라스의 연출로 무대에 올려진 이 작품에서 굿맨과 애덤스는 6명의 비교되는 캐릭터로 등장인물을 줄였다. 20세기를 움직인 정치인들인 마오쩌둥과 아내 장칭, 닉슨과 아내 팻 닉슨, 헨리 키신저와 저우언라이가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3막6장짜리 이 오페라는 외면적인 사건보다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시선을 더욱 집중한다. 거대한 세리머니가 펼쳐지면서도 주인공들은 서양과 동양의 다른 시각,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며 독백과 대화를 토해낸다. 굿맨의 대본은 서양 오페라의 전통, 중국의 시와 연극의 전통을 모두 담았으며 르포와 실제 주인공들이 했던 말을 사용해 현장감 넘치고 유머러스했다. 이를 받아 애덤스는 반복이 많은 미니멀리즘적 음악을 사용한 오페라를 만들어냈다.
오페라는 닉슨이 베이징 공항에 내리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그는 유명한 아리아 을 부른다. 이어 마오쩌둥과 닉슨의 첫 만남, 미국인들과 중국인들의 축배 장면이 1막에서 펼쳐지며, 2막에서는 여성들이 주인공이 된다. 팻 닉슨이 베이징의 명소 곳곳을 찾는 장면, 장칭의 안내로 문화혁명의 상징적인 작품을 관람하는 장면이 이어진다(팻 닉슨의 아리아 ). 3막에서는 특이하게 주인공들의 내면세계가 펼쳐진다.
는 1987년 10월 휴스턴 오페라에서 초연을 올리며 미국 오페라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존 애덤스의 첫 오페라였던 이 작품은 정치적 제스처에 대한 패러디를 서사적이면서 풍자적으로 그렸다. 역사·철학적 이슈를 불러온 문제작이었다. 또한 미국에서 20세기 실제 사건과 인물들을 배경으로 한 현대 오페라, 예컨대 앤서니와 털라니 데이비스 작곡의 , 스튜어트 월래스와 마이클 코리의 , 마이클 도허티와 웨인 케스텐바움의 , 잭 헤지와 테렌스 맥널리의 , 그리고 존 애덤스 본인의 같은 작품이 봇물처럼 나오게 한 신호탄이었다.
지난해 시즌에 존 애덤스의 을 올렸던 메트는 올해 2월 작곡가 존 애덤스의 지휘로 초연을 했으며, 연출도 1987년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의 초연을 했던 피터 셀라스가 맡았다. 또한 장칭 역은 메트에서 활약하는 한국계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캐슬린 킴이 맡아 앞으로의 공연이 더욱 기대가 된다.
1972년 닉슨의 방중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2월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2월 첫쨋주에 중국의 춘절이 시작되는 만큼 메트의 공연은 의미 있는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닉슨이 1972년 중국을 방문했을 때, 뉴욕의 중국 식당들은 문전성시를 이뤘고 닉슨이 중국에서 먹었던 디너 메뉴가 10달러에 불티나게 주문됐다고 한다. 과연 이번 공연은 또 어떤 중국 붐을 가져오게 될까. 20세기 걸작 오페라로 평가받는 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우리의 현대사를 다룬 걸작 오페라가 탄생하길 기대해본다.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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