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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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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 대가 집중탐구

세계적 추세인 전곡 연주
국내에서도 베토벤·말러·브루크너 등의 교향곡 통째 감상할 기회 늘어
등록 2011-03-10 23:46 수정 2020-05-03 04:26

지난 2월21일 월요일 일본 도쿄 산토리홀에서 열린, 프란츠 브뤼헨이 지휘하는 뉴재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NJP)의 공연을 보러 갔다. 이날의 레퍼토리는 베토벤의 교향곡 8번과 9번. NJP는 일본 교향악계의 ‘앙팡테리블’로 불리며 NHK교향악단과는 또 다른 음악문화를 이끌어오고 있는데, 2월 한 달 동안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었다. 이번 공연에 초청된 고음악 지휘의 대가인 프란츠 브뤼헨은 데카 음반사에서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녹음하는 등 베토벤과 고전주의의 전문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지휘자다. NJP는 브뤼헨과 함께 베토벤의 교향곡 9곡을 모두 차근차근 연주해내는 대장정을 완주했다. 21일은 이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는 날. 이제는 거동이 힘들어 무대 위를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겨우 오가는, 큰 키와 빼빼 마른 몸매의 노장 브뤼헨은 지휘대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그러나 지휘를 할 때는 전혀 거동이 불편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지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베토벤과 고전주의의 전문가로 알려진 지휘자 프란츠 브뤼헨은 지난 2월 일본 도쿄 산토리홀에서 뉴재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베토벤 교향곡 9곡을 모두 연주했다. K.MIURA 제공

베토벤과 고전주의의 전문가로 알려진 지휘자 프란츠 브뤼헨은 지난 2월 일본 도쿄 산토리홀에서 뉴재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베토벤 교향곡 9곡을 모두 연주했다. K.MIURA 제공

브뤼헨은 주로 원전 악기를 사용하는 ‘18세기 오케스트라’ 등 고악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음악가로 유명하다. 하지만 NJP라는 현대 악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원전 음악 연주 방법처럼 비브라토(현의 떨림)를 최소화하고 편성을 당대에 했던 것처럼 작게 하는 등 원전 연주의 방법을 적용해 공연했다. 이날 8번으로 시작해서 장대한 전곡 연주를 모두 들은 청중은, 거동은 불편하지만 절제하며 감동의 무대를 만들어낸 원전 연주의 명인 프란츠 브뤼헨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비단 일본에서뿐만이 아니다. 요즘 전세계적으로 전곡 연주 붐이 일고 있다. 지난해 내한해 클래식 팬들을 감동시켰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의 경우에는 말러 탄생과 서거 해를 연거푸 맞이해 2009, 2010 그리고 2011년까지 3개년 계획으로 각기 다른 지휘자들을 내세워, 말러 교향곡 전곡 완주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외에도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는 러시아 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가 말러 교향곡 전곡을 지난해 여름 백야페스티벌에서 연주했고, 파보 예르비가 지휘하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오케스트라가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는 등 교향곡 전곡 연주는 세계적 추세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수년 전부터 경기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말러 교향곡 전곡 시리즈, 일주일간 이어졌던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 전곡 리사이틀, 정명훈이 이끄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베토벤 교향곡 전곡 시리즈가 있었고, 서울시향은 다시 말러 시리즈를 연주해나가고 있다. 국내 오케스트라들과 내한하는 오케스트라들은 지난해 내한했던 미국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나 올해 내한한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처럼 또 한 명의 대곡 작곡가 브루크너의 교향곡 전곡 연주 붐을 예고하고 있다.

올여름에도 기대되는 전곡 연주회가 열린다.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유대계 다니엘 바렌보임이 자신의 고향인 아르헨티나와 세계의 유일한 분단국가 한국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청소년들로 구성된 평화의 사절인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를 이끈다. 이들이 공연할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도 정말 기다려지는 공연 시리즈가 아닐 수 없다.

박물관과 콘서트홀에 가는 중요한 이유 중에는 문화를 향유하고 음악을 즐기는 쾌락적인 기능 외에도 새로운 배움의 기쁨이 분명히 담겨 있다고 한다. 곳곳에서 펼쳐지는 전곡 연주회에 참여해 한 작곡가를 집중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기회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즐거운 공부에 동참해보자.

장일범 음악평론가

*‘장일범의 클래식 & 트렌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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