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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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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으로 나온 공짜 오페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의 새로운 실험 ‘여름 HD 페스티벌’…

타임스스퀘어 등에 5천 석 마련해 시즌 오프닝 공연 실시간 상영
등록 2010-09-29 14:53 수정 2020-05-03 04:26
2010~2011 시즌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의 오프닝 작품은 바그너의 <라인의 황금>이다. 9월 27일 개막을 앞두고 지난 9월13일 극장에서 리허설이 한창이다. 연합 AP

2010~2011 시즌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의 오프닝 작품은 바그너의 <라인의 황금>이다. 9월 27일 개막을 앞두고 지난 9월13일 극장에서 리허설이 한창이다. 연합 AP

요즘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이하 메트 오페라)은 세계 오페라의 유행을 주도하고 있다.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적재적소에 어울리는 최고의 캐스팅으로 매일 밤을 ‘환희의 시간’으로 만든다. 그런데 이보다 놀라운 것은 뉴욕에서 오페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돈 한 푼 안 내고도 오페라를 볼 수 있는 기회 또한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메트 오페라가 지난해부터 시작한 ‘여름 HD 페스티벌’이 그것이다. 올해는 8월28일부터 9월6일까지, 2009∼2010 시즌에 상연한 푸치니의 , 오펜바흐의 , 비제의 , 베르디의 등 10개 작품으로 링컨센터 광장을 채웠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공연장에 입장하지 못하는 일반인을 위해 페스티벌 기간 내내 광장에서 지난 오페라 공연의 영상을 상영하는 것을 규모 있게 확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해 여름 HD 페스티벌에서는 관객 4만 명이 스크린을 통해 오페라를 감상했다고 한다. 대중 오페라 시대가 열린 것이다. 메트 오페라 극장장인 피터 겔브는 “우리의 그랜드 오페라를 더 많은 사람이 가까이 다가와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을 다각적으로 전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메트 오페라의 공연 영상은 세계 1500여 개 극장에서도 저렴한 가격에 볼 수 있다.

메트 오페라는 지난 9월27일 2010∼2011 시즌 문을 열었다. 오프닝 공연으로는 바그너의 을 선택했다. 바그너가 26년에 걸쳐 완성한 대서사극 4개 악극 중 첫 번째 작품이다. 메트 오페라의 터줏대감이자 데뷔 40주년을 맞은 예술감독 제임스 레바인이 지휘하고 세계적인 연출가 로베르 르파주가 연출을 맡았다. 공연장에 가지 못해 아쉬워한 관객을 위해 메트 오페라는 역사상 처음으로 뉴욕의 상징인 브로드웨이 타임스스퀘어에서 스크린을 통해서도 같은 공연을 무료로 제공했다. 타임스스퀘어에 2천 석의 좌석을 마련하고 메트 오페라 극장 앞 조시 로버트슨 광장에도 3천 석의 좌석을 준비했다. 뉴욕시의 전폭적인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동시에 라디오와 메트 오페라 웹사이트를 통해서도 생중계했다.

메트 오페라의 이번 시도는 오페라 역사에 매우 혁명적인 일이다. 극장 안에 숨은 공연을 실시간으로 광장에서 관람할 수 있도록 끌어냈다. 문화 콘텐츠의 노출이 수익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지한 메트 오페라 경영진은 오페라의 대중화를 적극적인 방식으로 시도했다. 노력은 모객으로 이어진다. 메트 오페라를 보지 못했던 사람들도 뉴욕에 가면 ‘오페라 한 편 꼭 봐야지’ 하고 지갑을 열게끔 만들었다. 다른 예술단체들도 이제 비슷한 시도를 한다. 예전에는 예술단체들이 콘텐츠의 개방을 두려워했지만 요즘은 오히려 적극적인 노출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작품에 친숙해지게 한다. 어쩌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

메트 오페라와 관련해 반가운 소식이 들려 하나 덧붙인다. 한국 출신 테너 이용훈이 가을에 공연되는 메트 오페라의 베르디 대작 무대에 선다. 세계적인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와 더블 캐스팅됐다. 11월29일, 12월3일과 15일, 18일 네 번의 공연에서 그를 볼 수 있다. 뉴욕과 유럽에서 활약하는 테너 이용훈이 한국 테너의 불모지인 메트 오페라에서 세계 최고의 가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는 점은 한국 성악의 진화라고 볼 수 있다. 그의 멋진 성공을 기다린다.

장일범 음악평론가

*한국방송 클래식 FM DJ이자 음악평론가인 장일범씨가 세계 클래식 음악의 최신 경향을 소개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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