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되면 전세계 공연장들은 연말을 즐겁게 보내려는 청중을 위해 달콤한 공연을 준비한다. 미국의 각급 학교는 크리스마스부터 새해에 이르는 기간에 꿀맛 같은 일주일간의 겨울방학을 갖는다. 어른들은 이 기간에 아이들에게 좋은 공연물을 보여주려고 애쓴다. 매년 뉴욕시티발레단은 코흐극장에서 12월부터 1월 초반까지 크리스마스 전야에 펼쳐지는 환상적인 이야기인 차이콥스키의 발레 을 공연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본떠 6~7년 전부터 전국적으로 각 공연장에서 매년 을 상연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정작 이 태어난 러시아에서는 이 작품을 연말연시에만 공연하는 것이 아니라 가을 시즌 개막부터 올린다는 점이다. 결코 성탄절과 연말용 작품이 아니다.
극장 중에는 늘 같은 단골 공연물을 올리는 곳도 있지만 팬들이 식상하지 않게 개성 있는 공연을 준비하는 곳도 많다. 미국 뉴욕은 올해 변화를 꾀하는 도시 가운데 하나다. 그동안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이하 메트오페라)의 12월 주력 상품은 푸치니 오페라 이었다. 어떤 해에는 사흘 건너 한 번씩 을 무대에 올릴 정도로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연출의 은 뉴욕의 12월을 상징하는 공연 작품 중 하나였다. 역시 배경은 크리스마스 전야. 예술에 대한 꿈을 갖고 사는 파리의 미혼 남녀들이 만드는 사랑 이야기가 연말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올해 메트오페라는 공연을 적게 편성해놓았다. 오히려 베르디의 같은 묵직한 작품을 12월 공연작 전면에 내세웠다.
짧은 방학을 맞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해서는 재미있는 오페라 공연을 마련한다. 메트오페라는 지난해 훔퍼딩크의 동화 오페라 을 상연했다. 아이들에게 꿈과 환상을 주는 다양한 무대 기법과 분장은 어린이와 가족 관객을 즐겁게 해주었는데, 늘 원어 공연을 채택하는 메트오페라지만 이 공연만큼은 영어를 사용해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배려했다. 이번 겨울방학 기간엔 매일 모차르트의 를 상연한다. 긴 오페라를 다 부르지 않고 효과적으로 축약하고, 가사는 영어로 번역해 공연한다. 오스트리아 빈 국립오페라에서 를 아이들을 위한 작품으로 줄여서 낮 공연을 하는 걸 예전에 볼 수 있었는데, 메트오페라 역시 아이들을 위해 오전 11시와 오후 5시에 를 선보인다.
한편 일본에서는 수십 년째 연말 전국 각지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9번 을 공연한다. 도쿄는 물론이고 전국을 돌면 매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 곡을 합창하고 듣지 않으면 새해가 오지 않는다는 듯 여기는 것이 일본인이다. 밸런타인데이를 꼭 챙기고 보졸레 누보 와인을 매년 빠뜨리지 않는 것처럼 이들은 거의 맹목적으로 을 챙긴다. 이런 영향을 우리나라에서도 고스란히 이어받아, 연말이 되면 을 꼭 연주하는 단체들이 있다. 물론 교향곡 은 인류의 화합과 평화를 노래한 웅장하고 아름다운 곡으로, 연말 분위기에 어울리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곡이 태어난 유럽에서는 연말이라고 해서 이 곡을 연주하거나 자주 듣지는 않는다. 은 사시사철 연주하고 들을 수 있는 클래식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의 연말 클래식 무대에서도 ‘외국 공연 무작정 따라하기’가 아니라 좀더 참신하고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담긴 공연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매년 똑같은 곡을 듣고 보면서 한 해의 마지막을 보낸다는 것, 너무 단조롭지 아니한가!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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