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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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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폐인이 나타났다

도서관 10분 콘서트·쇼핑 콩쿠르 인터넷 동영상 중계…
일상에 파고드는 클래식에 중독되는 관객들
등록 2010-10-13 15:49 수정 2020-05-03 04:26
국립경상대 도서관은 매주 목요일 로비에서 ‘10분 콘서트’를 연다.장일범 제공

국립경상대 도서관은 매주 목요일 로비에서 ‘10분 콘서트’를 연다.장일범 제공

최근 경남 진주에 있는 국립경상대에 갔다가 참 참신한 행사 하나를 알게 됐다. 이곳 대학 도서관 로비에서 이번 가을 학기부터 매주 목요일 오후 4시30분에 클래식 음악회를 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첫 공연은 경상대의 바이올리니스트 김양준 교수가 이끄는 앙상블로 레퍼토리는 크라이슬러의 과 등이었고 곡에 대한 자세한 해설도 곁들여 콘서트를 열었다. 쇼팽, 모차르트, 슈베르트의 곡들도 자주 연주되는 이 도서관 로비 콘서트의 제목은 ‘10분 콘서트’. 단 10분 동안만 음악회를 여는 것이다. 짧은 시간이 매우 파격적으로 느껴졌다. 클래식 콘서트는 늘 길다라는 선입관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10분 콘서트’라는 기획은 신선했다. 이효리의 이라는 곡이 바로 떠올랐다.

콘서트를 기획한 도서관장 황의열 한문학과 교수에게 물어보니 정말 이효리의 노래 제목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고 한다. 도서관에서 오랫동안 연주를 들려주는 것도 학업에 방해될 수 있어서 10분 만에 학생들에게 쉬면서 음악을 즐길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만든 공연이었다. 가사처럼 10분 안에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자는 의미로 만든 공연이 바로 ‘10분 콘서트’였다.

도서관 로비에서 지나가다가 우연히 공연을 듣는 학생도 있지만 이제는 팬들이 많이 늘어 일부러 목요일 4시30분을 기억해두었다가 도서관을 찾거나 열람실에서 내려와 클래식 음악을 듣고 머리를 식히는 학생이 많아졌다고 하니 반갑다. 황 도서관장은 “종합문화센터로서 도서관의 역할을 다하는 것은 물론 안락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와 친근한 도서관을 만들고자 오후 시간에 일주일에 한 번 음악 감상으로 휴식을 제공하기로 했다”고 한다. 문화적 소양과 학습능률 향상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면서 도서관에서 각종 공연과 전시회를 마련해 지역민과 대학 구성원의 사랑을 받는 공간으로 자리잡게 하겠다고 밝혔는데 ‘10분 콘서트’ 같은 새로운 아이디어는 평소 클래식을 자주 접하지 못하는 분들에게 클래식을 가깝게 느끼도록 하는 좋은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가볍게 하루에 단 10분만이라도 클래식을 접할 수 있다면 현대인의 각박한 삶은 훨씬 부드럽고 따뜻해질 거라고 믿는다.

지금 폴란드 바르샤바에서는 피아노 부문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콩쿠르 중 하나인 ‘쇼팽 콩쿠르’가 열리고 있다. 1927년부터 열린 이 콩쿠르가 더 뜻깊은 것은 올해가 쇼팽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 때문이다. 성대하게 열리는 콩쿠르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봤더니 참가자 중에 요즘 대세를 반영하듯 동양세가 역시 강하다. 우리나라는 다른 콩쿠르들에 비해 본선 진출자가 조금 적어졌지만 동양의 한국·중국·대만·일본에 더해 러시아, 폴란드 그리고 미국의 출전자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예전에는 꼭 바르샤바에 가야만 이 콩쿠르를 감상할 수 있었지만 요즘엔 어디든 인터넷만 되면 감상할 수 있다. 그동안 피아노 콩쿠르 하면 권위적이고 비개방적인 특징을 갖고 있었는데 벨기에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가 처음 시도한 인터넷 동영상 중계는 세계의 많은 피아노 음악 팬들로 하여금 콩쿠르에 관심을 갖게 했으며 더욱 많은 참가자를 불러오는 효과까지 생겨 콩쿠르 쪽으로서는 일석이조의 일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밤새워 실황을 보느라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폐인’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한정된 소수의 청중과 심사위원들만 듣고 평가할 수 있었던 권위 있는 국제 피아노 콩쿠르가 변화를 시도하면서 이젠 청중도 나름 자신들의 우승자를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처럼 인기상을 직접 팬들이 투표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경상대의 도서관 로비 콘서트와 바르샤바 국제 피아노 콩쿠르의 인터넷 동영상 중계, 모두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 예술의 모습을 반영해주고 있다.

장일범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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