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하면 그야말로 클래식계 권위의 상징이었다. 특히 푸르트벵글러와 카라얀으로 이어지는 지휘자들을 통해 세계 클래식 음악팬들은 절대적 강자 베를린필을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단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모습은 카라얀 시대에 대거 CD와 영상으로 만들어지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그런데 권위주의적이라고 생각되는 베를린필이 사실은 시대를 앞서가는 최첨단의 사고를 지닌 오케스트라였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단원들이 거세게 반대하던 클라리네티스트 자비네 마이어를 베를린필에 최초로 입단시킨 것도 카라얀이었으며, 세계에서 그 어떤 오케스트라보다 발빠르게 CD 시대를 예감하고 가장 먼저 CD 제작에 나선 것도 베를린필이었다. 연주 영상이 담긴 LD도 마찬가지였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공부한 남자 중심으로 단원이 구성된 매우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빈필에 비해, 자비네 마이어 사건 이후 베를린필은 일찌감치 문호를 개방해 외국 국적의 최고 단원들이 함께하는 국제적 오케스트라가 되었던 것이다.
최근에 베를린필은 대중과 가까워지기 위해 두 가지 중요한 시도를 하고 있다. 시간 단위로 이어지는 약속, 멈추지 않고 울리는 휴대전화, 점심은 신속하게 해결하고 남는 시간에 필요한 쇼핑을 하는 풍속도가 거의 모든 도시 현대인의 모습이다. 그래서 베를린필은 이런 정신없는 삶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을 한낮에 만들어놓았다. 낮 시간에 베를린필홀이 비어 있다는 것에 착안해, 베를린시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점심 약속을 베를린 필하모닉홀에서 할 수 있게 점심 시간에 무료 콘서트를 열고 양질의 점심을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게 하는 ‘런치타임 콘서트’를 만든 것이다.
이 콘서트는 2010년 9월7일부터 2011년 6월28일까지 매주 화요일 오후 1시에 베를린의 뛰어난 음악가들이 참여해 열리는데, 빼어난 수준의 실내악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공연 시간은 30~40분. 베를린필 단원과 베를린필 오케스트라 아카데미의 교사들, 도이치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단원, 베를린 콘서바토리 학생들도 참가한다. ‘런치타임 콘서트’는 직장인들에게 휴식 시간을 줌과 동시에 베를린을 찾는 관광객에게 베를린필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늦은 저녁 공연 뒤의 귀가를 부담스러워하는 노인들에게도 낮 시간을 활용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이 공연은 공식적인 콘서트와 달리 좀더 가깝게 연주자들을 만날 수 있게 해준다.
점심시간 콘서트와 더불어 베를린필을 베를린 시민을 넘어 전세계인이 더욱 가깝게 즐기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디지털 콘서트홀’이다. 베를린필이 오케스트라 역사상 최초로 시도한 디지털 콘서트홀은 마치 직접 프리미어리그 축구나 메이저리그 야구를 실황으로 볼 수 있는 것처럼 베를린필의 베를린 필하모닉홀 공연을 고화질(HD) 수준으로 실시간으로 컴퓨터를 통해 감상할 수 있게 한 새로운 시스템이다. 보통 한국 시간으로 새벽에 실시간 공연을 볼 수 있는데, 놓친다 해도 아카이브를 통해 지난 공연들을 다시 볼 수 있다. 디지털 콘서트홀은 유료 가입을 해야 하는데, 1년 동안 볼 수 있는 가격이 150유로(약 24만원)다. 한 콘서트 또는 한 곡(2~3유로)씩 사서 들을 수 있게 해놓았으니 베를린필이 얼마나 실용적인지 알 수 있다. 베를린필은 트위터나 페이스북도 잘 활용한다. 트위터로는 역사 속의 오늘 베를린필에서 어떤 지휘자와 아티스트가 데뷔했는지를 매일 올려주며 음악과 동영상도 감상할 수 있게 해준다.
20세기에 베를린필은 세계 오케스트라의 나아갈 방향을 이끌어왔다. 런치타임 콘서트나 디지털 콘서트홀이 또 어떤 파급효과를 세계 악단에 불어넣을지 무척 궁금해진다.
장일범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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