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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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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필의 아름다운 꽃 장식은 어디서 왔을까

신년음악회 대표 브랜드 빈필하모닉이 특별한 이유,

자립형 운영 체제와 시민의 자발적 후원
등록 2011-01-20 15:34 수정 2020-05-03 04:26

정초에 빈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를 우리나라에서도 TV를 통해 볼 수 있었다. 올해는 지난해에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내한공연을 치렀던 오스트리아 출신 프란츠 벨저 뫼스트가 지휘해 명장 카를로스 클라이버 이후 가장 우아한 빈 신년음악회를 만들어주었으며, 오스트리아인으로서는 카라얀 이후 최초의 신년음악회 지휘라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기도 했다.
빈필의 신년음악회는 그야말로 세계 클래식 음악계 최고의 브랜드다. 클래식 애호가들은 물론이고 클래식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평생에 한 번쯤은 보고 싶어하는 음악회가 됐다. 베를린필, 뉴욕필, 체코필 등 세계의 다른 오케스트라들은 아예 자신들의 신년음악회는 포기하고 빈필 신년음악회를 중계로 즐기며 12월31일 송년음악회에 치중하기도 한다. 빈필 신년음악회는 왜 이리 특별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일까?

2011년 1월1일을 아름답게 장식한 빈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는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최고 브랜드다.REUTERS/ HERWIG PRAMMER

2011년 1월1일을 아름답게 장식한 빈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는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최고 브랜드다.REUTERS/ HERWIG PRAMMER

무엇보다 160년이라는 오랜 전통에서 나오는 특별한 분위기와 흠잡을 데 없는 탄탄한 실력, 부드럽고 아름다운 음색, 그리고 황금으로 장식된 유서 깊은 빈 무지크페어라인홀의 아름다움에서 답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빈필은 160년의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오케스트라다. 기본기의 탄탄함은 다른 어떤 오케스트라와도 비교할 수 없다. 빈필은 빈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없는 관계인데, 빈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 단원만이 빈필의 단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빈필에 들어오기 전 기악 연주자는 누구나 빈국립오페라에서 단원으로서 능력이 있는지를 증명해야 하고 평가받아야 한다. 빈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는 단원들에게 경제적인 면을 보장해주는 대신 다른 오케스트라들과 달리 철저한 수련 기간을 거쳐 빈필 단원이 되도록 하는 도제 시스템을 갖고 있다. 빈국립오페라와 빈필이 이런 형제 같은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빈의 음악 문화가 탄탄히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빈필은 매우 민주적인 자립형 오케스트라 운영·경영 체제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또 한 번 놀라움을 준다. 현대의 직업 오케스트라들은 거의 모두 연주단원과 행정직으로 나뉘어져 있는 데 비해, 빈필은 오케스트라 단원 중에서 사장도 뽑고 이사도 뽑고 총무도 뽑는다. 그야말로 자치 정부다. 물론 이들도 모두 정기 연주회나 투어에서 연주를 함께 한다. 빈필은 세상에 유일무이한 오케스트라다.

1930년대 빈필 단장이 처음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폴카, 행진곡만 갖고 콘서트를 열자고 제안했을 때 단원들은 일제히 반대를 했다. “우리가 어떻게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같은 경음악을 연주할 수 있느냐”는 주장이었다. 왜냐하면 19세기 요한 슈트라우스의 음악은 연주회가 아니라 무도회에서 춤출 때 연주되던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단장은 딱 한 번만 해보자면서 단원들을 설득했고 결국 빈필의 요한 슈트라우스 음악회는 천신만고 끝에 열렸는데 청중의 반응이 뜨거웠다. 고무된 빈필은 청중이 원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음악회임을 깨닫고는 매년 신년음악회를 요한 슈트라우스 일가의 음악으로 연주하게 되었고 그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빈 신년음악회는 빈필을 상징하는 대표 음악회가 되었다.

이번 2011 빈필 신년음악회에서는 프란츠 벨저 뫼스트와 빈필의 연주도 아름다웠지만 온통 핑크빛인 아름다운 꽃 장식은 분위기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빈필 신년음악회의 꽃 장식은 매년 다르다. 한 해도 같은 적이 없다. 그런데 이 꽃들은 매년 이탈리아 리비에라 해변의 꽃의 도시 산레모에서 공수해온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어마어마한 양의 꽃을 빈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사는 것이 아니라 산레모의 플로리스트와 정원사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플로리스트와 정원사들은 이 꽃을 이용해 빈필에 디자인을 기부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요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이탈리아를 필두로 유럽 몇몇 국가가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을 삭감하고 있다. 이럴 때 오페라극장과 오케스트라를 지탱하게 만드는 힘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과 기부다. 국가가 해주지 못하는 부분을 메워주는 기부는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각종 공연장과 오케스트라에 후원회가 생기고 또 열심히 자원봉사하는 모습을 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많은 오케스트라와 오페라단도 예술 후원의 뜻을 가진 이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고 좋아하는 예술을 후원하는 이들의 저변이 더욱 넓어져 오페라단이나 오케스트라가 마음껏 훌륭한 연주와 작품을 우리에게 선사해주길 기대한다. 빈필이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예에서 보듯 결국 훌륭한 작품은 훌륭한 지원을 통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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