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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최고의 고전, 백인백색 대한민국 아줌마 인생…

공감하고 맞장구치며 위로받는 이들의 ‘신 언문 제문’
등록 2011-01-28 10:59 수정 2020-05-03 04:26

국문학자인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가 쓴 (비아북 펴냄)에는 ‘언문 제문’(諺文 祭文)에 관한 대목이 나온다. 책에 따르면, 경상남도 중서부에는 시집간 딸이 친정 부모의 초상에 와서 두루마리에 붓으로 적어 내려간 글을 읽는다. 그 글이 한글로 된 제문이라는 의미의 ‘언문 제문’이다. 언문 제문은 돌아가신 부모님의 넋을 달래려 쓴 글이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언문 제문은 돌아가신 부모님의 전기나 다름없다. 특히 친정어머니가 살아온 고단한 삶의 자취는 그 글을 읽는 딸의 삶과 겹치기 마련이다. 언문 제문을 들으며 뜰에 모여든 아낙들은 눈물을 훔쳤다.

딸이 친정 부모 넋 달래며 읽던 언문 제문

`아줌마가 세상에 고함‘을 주제로 제8회 아줌마의 날 기념행사가 열린 31일 오후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참석자들이 40대 아저씨들로 구성된 그룹 파파스의 공연을 보며 환호하고 있다.한겨레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아줌마가 세상에 고함‘을 주제로 제8회 아줌마의 날 기념행사가 열린 31일 오후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참석자들이 40대 아저씨들로 구성된 그룹 파파스의 공연을 보며 환호하고 있다.한겨레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김 교수는 어머니가 궤짝 가득 보관했던 친정과 시가의 언문 제문을 떠올리며 이렇게 쓴다. “적적한 밤이면 어머니는 그 언문 제문들을 꺼내 읽곤 하셨다. 어머니는 때론 낭랑하게 때론 처연하게 마치 혼잣말을 하듯, 아니 속으로 웅얼대듯 제문을 읽어가곤 했다. …어머니의 언문 제문을 들으면서 어렴풋하게나마 이 땅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조금씩 알아챘던 것 같다. 어머니의 언문 제문은 내가 공부하게 된 최초의 ‘여자의 일생’이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여자를 부를 때 ‘아줌마’라고 한다. ‘아줌마’라는 단어에는 특유의 억양이 있다. 무심한 듯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마’자에 힘을 실어 “아줌마~!”다. 아줌마는 ‘잔소리하는 엄마’의 다른 말이자 ‘더 이상 여자가 아닌 아내’의 유의어이며, ‘나는 절대 되지 않을 사람’이다. 아줌마가 아닌 이들은 아줌마의 삶에 관심 없다. 아줌마들이 사는 얘기라도 할라치면 “그 얘기 또 해?”라든지 “그놈의 수다…”라고 타박한다. 아줌마의 삶은 신기하게도 같은 모양의 헤어스타일만큼이나 ‘비슷하며 뻔하고 지루한 것’으로 치부된다.

여기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 실은 그렇지 않다. 아줌마는 ‘나밖에 모르는 엄마’의 다른 말이자 ‘내 몸과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여자인 아내’의 유의어이며, ‘아무리 저항해도 어쩔 수 없이 되고 마는 사람’이다. 게다가 아줌마의 삶은 100이면 100 모두 다르다. 귀를 기울이면 웬만한 드라마 못지않은 눈물과 웃음이 가득하다. 제아무리 책이나 신문을 들이파도 알아내지 못할 인생의 깊이와, 자기계발서를 수없이 읽어도 알려주지 않는 삶의 노하우도 있다. 아줌마의 인생 이야기를 한 번쯤 읽어볼 필요가 있는 이유다. “어머니가 들려주던 언문 제문은 내가 읽은 수많은 시에서 메아리치곤 했다”며 언문 제문이야말로 ‘최고의 고전’이라고 치켜세운 김 교수는 일찍이 그 비밀을 알아챈 것임이 틀림없다.

그 옛날 언문 제문이 그랬듯, 여자들의 삶은 지금도 여전히 글로 쓰여 전해진다. 최근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두 권의 책 〈아줌마X〉(이민아 지음, 씨네21북스 펴냄)와 (김윤덕 지음, 푸른숲 펴냄)가 그렇다. 두 권의 책은 공교롭게도 공통점이 몇 가지 있다. 전·현직 기자가 썼다는 점과 아줌마의 삶에 대해 가르치려고 하거나, 그래서 ‘이렇게 하라’는 식의 지침을 주기보다 저마다 다른 아줌마의 사는 이야기를 ‘공감’이라는 코드로 풀어냈다는 점이 그렇다.

인생의 똥귀저기, 두렵지 않아
아줌마 커뮤니티 ‘줌마네’ 회원들이 2009년 연극 <내 나이 마흔에는>을 무대에 올린 모습. 아줌마들의 이야기는 인터넷 게시판, 책, 연극 등을 통해 전해진다.한겨레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아줌마 커뮤니티 ‘줌마네’ 회원들이 2009년 연극 <내 나이 마흔에는>을 무대에 올린 모습. 아줌마들의 이야기는 인터넷 게시판, 책, 연극 등을 통해 전해진다.한겨레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아줌마X〉를 쓴 이민아씨는 책을 쓰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씨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마칠 무렵인 2009년 가을학기에 2살 된 아이를 키우며 공부와 일을 병행해야 했다. 육아와 가사를 위한 절대적 시간이 부족해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번갈아 미국에 와서 집안일을 도와줬는데, 그때 어머니들과 마트에 가서 시장을 보면서 살아온 이야기를 듣곤 했다. “어머니 세대의 여성들은 모진 인생을 겪어낸 생존자예요. 그런 고생한 얘기를 남들이 알아줬으면 하죠. 거창한 대의명분보다 아줌마들 읽고 재미있으시라고 썼어요. 그래서 신파보다는 유머러스하게 쓰려고 했죠. 실제 50~60대 아주머니들로부터 ‘책을 써줘서 고맙고 재미있게 읽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지금이 그렇게 삶을 살아낸 아줌마와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다음 세대 아줌마가 공존하기 때문에 이 시점에 책이 나온 게 아닌가 해요.”

이민아씨는 아줌마라고 다 같은 아줌마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책에 등장하는 아줌마들을 모두 다른 알파벳을 가진 이들로 표현했다. “애가 있는지 없는지, 10살을 넘었는지 아닌지, 돈이 있는지 없는지 등에 따라 천차만별의 인생을 살아요. 세대 차이도 크고. 엄마와 딸의 인생도 세대로는 다르지만 비슷한 인생 경로를 사는 경우가 많더군요. 삶은 저마다 다르지만 국적과 나이, 세대를 불문하고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가정에 대한 태도죠. 자식과 남편에 대한 애정과 집착이요. 아줌마는 인생의 쓴맛을 본 사람들이라 인생의 똥기저귀를 치우는 데 두려움이 없어요.”

아줌마의 삶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공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줌마의 삶은 아저씨들이 좋아하는 분석이나 논리적 설명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대신 맞장구를 치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를 펴낸 출판사 푸른숲의 김미정씨는 “수다를 떨면서 ‘맞아’ 하다 보면 이야기 치료를 하듯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로 이해하지 못할 관계는 없다는 걸 알게 되고, 나만 힘든 게 아님을 알게 되는 게 아줌마만의 화법”이라고 설명한다.

날것 그대로인 글, 격려와 응원의 댓글

다음 미즈넷(miznet.daum.net)이나 82쿡(82cook.com), 마이클럽(miclub.com), 맘스홀릭베이비(cafe.naver.com/imsanbu.cafe)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매일을 사는 아줌마의 인생 얘기가 하루에도 수백, 수천 개씩 글로 쓰인다. 인터넷 게시판이라 걸러야 하는 글이 다수지만, 정신없는 글 중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거나 찾아온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가감 없이 적어 내려간 글이 발견되곤 한다. 남편과의 갈등, 시댁이나 친정과의 말 못할 사연, 자녀에 대한 기대와 좌절 등을 날것 그대로의 말로 쓴다. 그 아래 달리는 수많은 댓글로 뼈아픈 충고를 하거나 격려와 응원을 보내는 것은 또 다른 아줌마들의 몫이다.

2011년을 사는 아줌마들은 어떤 삶은 살고 있을까. 책에 나온 이야기와 주변 아줌마들이 직접 전한 이야기를 묶었다. 이름하야 ‘신(新) 언문 제문’이다.

#하녀

아줌마 H는 하녀다. ‘엄친아’인 아들이 ‘엄친딸’을 만나서 상견례를 치르던 날, 사부인 될 사람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얘가 자기 방도 치워본 적이 없어서요. 보내기는 보내는데 걱정입니다.” “제 아들놈도 그렇습니다. 어지르고 살라 그러지요, 뭐.” 아줌마 H는 호기롭게 대답했다. 아줌마 H의 며느리는 공부밖에는 해본 것이 없는 처자였다. 대학 때는 전액 장학금을 받았고, 졸업 전에 굴지의 컨설팅 회사에 취직했다. 그렇게 아들 부부는 아줌마 H의 집 2층에 신혼 둥지를 틀었다. 그때부터 아줌마 H는 고3 수험생을 둘 둔 학부모가 되었다. 며느리는 아침에 커피 한 모금만 머금고 나가고, 저녁에는 야근이 대부분이었다. 아줌마 H가 진짜 아니꼬웠던 것은 남편인 아저씨 H였다. 아저씨 H는 천하절색 며느리를 얻었다며 새 장가라도 간 양 싱글벙글이었다. 말이 며느리지 시앗이 따로 없었다. 여동생이 물었다. “언니, 도대체 왜 그러슈? 걔들이 돼지우리에서 살든 말든 상관하지 말아.” 아줌마 H는 웅얼웅얼 말했다. “나도 비누 냄새 나는 젊은 남자랑 살고 싶다야. 울 아들 없으면 누구 먹으라고 신이 나서 쌀을 씻겠느냐.”

#근데 인생 참 찌질하다, 그치?

우린 과 커플이었습니다.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 때 처음 만나 사랑의 싹을 틔웠고, 군복무 3년을 기다린 뒤 결혼에 골인한 동갑내기 오래된 연인이었지요. 누구도 우리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행복했습니다. 미국으로 유학 가 단칸방에 살면서, 세탁소 아르바이트를 하고 식당 접시를 하루 수백 개씩 닦으면서도 세상이 우리 것인 양 즐거웠고, 예쁜 두 딸을 낳아 키우면서는 우리 행복을 누가 시샘할까 두려울 만큼 행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올 것이 왔습니다. 술은 입에 대지도 않던 그가 저녁 늦게 와인 냄새를 풍기며 침실로 들어왔습니다. “나,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 1년 여의 길고 끔찍한 줄다리기 끝에 남편은 떠났습니다. 세상에서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는 공포를 느껴본 적 있으세요? 이제 죽는 일만 남은 건가, 하고 참담해하고 있을 때 저를 흔들어 깨운 것은 두 딸이었습니다.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완벽한 엄마였어. 하지만 가장 바보 같은 여자야. 이제 엄마 인생을 살아봐. 족쇄가 저절로 사라졌는데 뭐가 두려운 거야. 엄마는 이제 자유인이라고. 그 빌어먹을 사랑의 사슬에서 벗어나라고, 제발!” 독한 친구가 소주 한 잔을 건네며 저에게 말합니다. “공주처럼 왕비처럼 떠받드는 남편이 반드시 좋은 것만도 아니라는 걸 너 보고 알았다. 잔정 없고 무뚝뚝하며 아내를 잡초처럼 여기는 내 남편 덕에 그나마 나는 언제 내쳐져도 두려움 없이 세파를 헤쳐나갈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여자가 되지 않았겠니, 흐흐. 근데 인생 참 찌질하다, 그치?”

#딜레마

나는 시댁과 따로 살긴 해도 아주 가깝게 살고 있어요. 시댁에서 가까운 곳에 살길 원하셔서 그렇게 됐는데, 정작 아이는 친정엄마가 봐주세요. 평일에 친정엄마가 집에 와 계시죠. 시어머니가 가까이 사시면서 가끔 아이 보고 싶을 때나 봐주시니까 섭섭하죠. 친정엄마는 무슨 죄인가 싶고. 시어머니도 괜히 미안하시니까 그런지 “친정엄마 그만 부려먹으라”면서 잔소리를 하세요. 게다가 살림은 나보고 다 하라셔요. 회사에 다니면서 아침에 애 챙기고 밤에는 씻겨 재우고 하는데 말이죠. 엄마의 삶이야 원래 고달픈 건데, 시어머니는 가만히 계셔도 좋을 걸 꼭 한마디씩 하세요. 나보고 아침에 남편 밥 챙겨먹이라는 잔소리를 수시로 하시죠. 친정엄마가 아이를 봐주면 편할 거라고들 생각하는데, 편한 것도 물론 있지만 생각하는 것만큼은 아니에요. 친정엄마도 연세가 있으니까 힘들다고 말씀하시고. 나는 용돈도 챙겨드리는데 생색내실 일인가, 얌체 같은 마음이 들어 감정이 상하기도 해요. 무엇보다 가장 힘든 건 회사일도 육아도 제대로 못한다는 자책감이에요.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최선을 다하는데 왜 항상 이렇게 부족한가 하는 자괴감이 들어요. 나 같은 사람도 회사 그만두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 다른 엄마들은 어떻겠어요? 그런데 사실 친정엄마가 우리 집에 아이 봐주러 들어온 건 ‘내 딸 어떻게 키웠는데’ 그런 생각 때문이라는 거죠. 나도 우리 딸 크면 아마 딸 직장 내보내고 아이 봐주겠죠. 이런 게 딜레마인가요?

#거짓말

처녀 적에 결혼할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어요. 그 한국사람 많다는 로스앤젤레사에서 자리잡기가 쉽지가 않았지만 악착같이 벌고 아껴서 작은 가게도 하면서 제법 잘 살았어요. 딸도 하나 낳아서 공주처럼 키웠죠. 그런데 참 사는 게 쉽지 않잖아요. 어느새 남편과 사이는 벌어질 만큼 벌어지고 작은 가게도 오늘 내일 하는 신세가 됐죠.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미국에서 잘 살고 있다’고 그렇게 자랑을 하고 살았는데, 어쩔 수 없이 한국에 돌아가야 되는 상황이 온 거에요. 스무살이 훌쩍 넘은 딸을 데리고 한국에 왔어요. 딸을 봐서라도 살아야겠더라구요. 사방팔방 뛰어다니면서 사람들도 만나고 살아갈 방법을 찾았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 앞에만 서면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게 돼요. 젊은 시절에 잘 나가는 남자들 만났었다, 미국에서 말도 못하게 잘 살았다, 지금 전혀 힘들지 않다…. 제가 쉰이 넘었지만 아직 미모는 죽지 않았거든요. 제게 남은 거라곤 ‘미국에서 살았다’는 것과 남들이 날 바라봐주는 시선, 그것 뿐이에요. 거짓말을 하고 또 할 때마다 사람들이 수근대는 거, 알아요. 멈출 수가 없어요. 얘기하다보면 부풀려진 인생이 진짜 내 것 같기도 하거든요. 저는 매일 백화점에 가요. 하루도 빼놓지 않고. 거짓말 같은 세상이잖아요, 백화점이.

#강한 여자

내가 자주 가는 미용실 원장이 있어. 나이는 40대 중·후반 정도인데, 실력이 아주 괜찮아. 그런데 이 아줌마도 남편도 성격이 장난이 아닌 거야. 서로 엄청 강해서 지려고 하지 않는 거지. 그래서 매번 부딪히고. 남편은 항상 누구 위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라서 식당일을 시작했대. 사장을 하고 싶었던 거지. 식당이 그렇게 잘됐단다. 하루 매출이 300만원씩이었다니까. 위생부터 철저하게 해서 ‘완벽한 식당’이었대. 그런데 더 큰 걸 한다고 체인점을 시도했다가 폭삭 망한 거야. 하루아침에 다 날린 거지. 그러면서 둘이 얼마나 싸웠겠어. 그렇게 강한 성격을 가진 부부인데, 그러다가 남편이 벌이가 없으니까 아줌마가 다시 돈을 벌어볼 생각으로 미용실을 열었어. 그런데 이 아줌마가 수완이 대단해서 다 망해가는 미용실을 일으켜세운 거야. 이 아줌마가 얼마나 대단하냐면, 요즘 휴대전화 없는 사람이 누가 있니? 게다가 미용실 사업을 하는 사람이잖아? 그런데 이 아줌마는 휴대전화도 없어. 경제적으로 힘들거나 부담이 돼서가 아니라 내가 하루 종일 미용실에 있는데 왜 휴대전화가 필요하느냐는 거야. 그 흔한 휴대전화 없이도 얼마나 미용실을 잘 꾸려나가는지 몰라. 어떻게 보면 무서운 아줌마지. 그러니까 이 아줌마가 그렇게 센 남편을 누르고 혼자서 가정경제를 책임질 수 있는 거야. 말 그대로 ‘강한 아줌마’지.

*‘하녀’는 〈아줌마X〉에서, ‘근데 인생 참 찌질하다, 그치?’는 에서 발췌했습니다. 지면 사정상 원문을 편집해 실었음을 밝혀둡니다.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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