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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희생양이 된 학교



학생들 시험으로 내몰고 교사 일자리 빼앗는 경쟁 교육 비판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10월호
등록 2010-10-13 11:11 수정 2020-05-03 04:26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10월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10월호

다이앤 래비치는 미국 뉴욕대학 교육학 교수다. 예전에는 교육부 차관이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인 1991년에 입각했다. 래비치는 ‘선택의 자유’라는 가치를 믿었다. 교육 분야에 그 신념을 적용하면, 업적 평가 시스템이 도출된다. 학생·교사·학교를 평가해야 더 좋은 교육을 선택할 길이 생긴다고 ‘선택의 자유’라는 신념은 속삭인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는 좋은 교육이 아니라 경쟁 교육이 강화될 뿐이라는 것을 래비치는 최근에야 깨달았다. 결국 그는 전향했다. 10월호에 전향서를 썼다. “평가 시험을 둘러싼 ‘희생양’은 교육의 질”이라고 (자기) 비판했다. ‘아들’ 부시 대통령 시절인 2002년, 미국 정부는 ‘학생낙오방지법’을 만들었다. 소외 학생을 없애겠다는 뉘앙스의 이 법령은 오히려 대다수를 소외시켰다.

투기 자본이 잔혹하게 올린 채솟값

이제 미국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모든 학생이 읽기·수학 평가 시험을 치른다. 학교마다 그 ‘성취도’를 평가받는다. 5년 안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학교를 ‘구조조정’한다. 그 결과, “교사들은 읽기·수학 과목이 학교의 미래뿐 아니라 교사의 일자리를 좌우할 수 있음을 깨닫고, 역사·문학·지리·과학·미술·도덕 등의 과목을 등한시한다.” 학생들은 지식·교양을 쌓는 대신 시험 잘 치는 일에 매달린다.

전향은 종종 자기변명이다. ‘전향’과 ‘위선’은 곧잘 상통한다. 다만, 래비치는 자신을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바마 행정부를 경고하려고 글을 썼다. “오바마가 이전 정부의 가장 위험한 생각과 선택을 고스란히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10월호가 준비한 특집기사 ‘시장으로 간 교육’에는 끔찍한 기사들이 더 있다. 오바마만 부시를 따라가는 게 아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도 미국식 변신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부시는 오바마로 사르코지로, 그리고 이명박으로 현현한다.

세계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의 얇디얇은 경계를 ‘힘 들어간 프랑스 경찰’ 기사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정부는 사회·경제 문제를 은폐하려고 치안 문제를 부각시키다 끝내 군사화된 개입 방식을 택하고 있다. 프랑스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다. 총기에 대해 안전성 검사를 하지 않는 것과 같이 “‘음향대포’의 안전 검사가 필요없다”고 말하는 조현오 경찰청장은 군사적으로 시민을 다룬다. 규율 준수는 반대급부에 대한 기대다. 일자리조차 제공하지 않는 사회에서 그 기대는 배반당한다. 게다가 경찰의 군사적 개입이 더해지면, 시민들은 더 큰 일탈을 저지를 뿐이다.

일생을 통틀어 쇠락만 거듭해온 프랑스 농부의 일대기는 한국 ‘채솟값의 잔혹사’와 함께 읽어야 한다. 마르틴 뵐라르 프랑스 편집장은 “곡물가의 급등은 자연재해보다 투기(자본)로 인해 발생한 측면이 크다”고 했는데, 세 기사를 함께 읽으면 붕괴하는 농업의 세계적 동시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간을 굶주리게 하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다.

언론계에 관심이 있다면, 꼭 챙겨야 할 기사가 있다. 스웨덴 웁살라대학의 크리스텐센 교수는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문서를 공개해 화제가 된 ‘위키리크스’를 분석했다. 그는 블로그·트위터·페이스북·유투브 등 이른바 ‘소셜 미디어’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비판한다. 현실을 움직이는 것은 여전히 민족국가 단위의 법 질서고, 이에 대항하는 (기존) 저널리즘이다. 위키리크스의 성공은 법 체계와 저널리즘 구조를 현명하게 활용한 데서 비롯한 것이다. (정보)기술이 아니라, 국가와 (기존) 언론에 주목해야 자유의 출구가 생긴다.

한국호 특집은 한국 사회의 불안 구조

마침 세르주 알리미 프랑스 발행인은 (기존) 저널리즘에 대한 변함 없는 지지를 당부한다. 그는 ‘우리의 투쟁’이라는 글에서 “독자와 기부자 등의 도움으로 올해 비로소 손익 균형에 도달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 결과 “독립성과 독창성, (그리고) 대다수 기사와 차별화된 우리만의 기사를 선물로 주게 됐다”고 한다. 그 선물을 한국판 도 함께 전한다. 특권층·중산층·빈곤층을 가로지르는 한국 사회의 ‘불안 구조’를 분석한 한국호 특집기사는 바로 ‘우리만의 기사’다.

안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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