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참가자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노래를 시작한다. (“음색은 그럭저럭 괜찮네.”) 참가자는 1절 중반쯤이 되자 서서히 표정이 변한다. (“표정이 왜 저래? 너무 오버하잖아.”) 후렴구에 들어선다. (“음정이 너무 불안한데? 그리고 이건 모창 수준이야.”) 노래가 끝나고 참가자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심사를 맡은 가수 이승철과 거실 TV 앞 소파에 누워 심사에 한창인 시청자가 동시에 외친다. “오늘은 불합격 드리겠습니다.”
일주일에 딱 1시간, 슈퍼스타 지망생 11명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슈퍼스타를 꿈꾸는 그 시간에 시청자는 누구보다도 엄격한 심사위원이 된다. 1층 주인집 아주머니도, 2층 아기아빠 김 대리도, 옥탑방 복학생도 케이블TV 엠넷 가 방영되는 그 시간만큼은 같은 테이블에 나란히 앉은 심사위원이다. 슈퍼스타를 만들어낼 심사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기준은? 노래다.
날 것 그대로의 노래, 목적이 된 노래
가 12%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신기록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합창대회 도전기’인 한국방송 ‘하모니편’이 수없이 많은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쏟아내고 있다. 최근 화제의 중심에 있는 두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노래다. 에서 참가자들은 반주 없이 목소리 하나만을 들려주고, 같은 노래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노래해야 살아남는다. ‘남자의 자격’ 역시 목소리만으로 조화를 이뤄야만 가능한 합창을 들려준다. 두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많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의아한 이유 역시, 노래다.
지금 우리 대중가요에서 노래는 목적이라기보다 수단에 가깝다. 노래 자체를 성취하려 하기보다 인기를 얻으려고, 또는 ‘실력파 아이돌’의 기본 조건을 갖추려고 노래한다. 5명 이상 그룹일 경우 실제 10초 이상 노래하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그나마 목소리는 ‘오토튠’이라고 불리는 기계음에 덧입혀져 실체를 알 수 없다. 노래는 중요하지 않다. 공중파 가요 프로그램이 끝나면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들에 대한 반응은 대부분 그들의 무대가 주는 강렬함이나 그들의 외모가 주는 신선함이다. 그들의 스타일링이나 안무에 대한 구체적인 지적도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와 ‘남자의 자격’ 하모니편이 방송되고 나면 ‘감동적이었다’거나 ‘음색이 좋다’든가 ‘눈물을 흘렸다’ 등 조금은 난감한 평이 줄을 잇는다.
두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봐온 시청자라면 한 가지 질문이 머리에 떠오를 수밖에 없다. ‘노래를 잘한다는 건 뭘까?’ 처음 나 ‘남자의 자격’ 하모니편을 시청할 때는 자신만만했다. 노래라면 제법 들을 줄 알고, 노래방에서도 빠지지 않을 만큼 불러보지 않았나. 그런데 그 자신감은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여러 번 깨진다. 내가 보기에 참 괜찮은 참가자인데 혹평을 받고, 이건 두말할 것 없이 탈락인데 칭찬이 이어진다. 심사위원의 자질을 의심하기도 하면서, 그 심사평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노래를 자꾸 보여주려고 하면 결국은 겉도는 거예요. 부르는 사람이 느낌이 없는데 듣는 사람은 어떻겠어요?”(이승철) “본인의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모든 표현이 굉장히 연로한 가수 같아요.”(아이비) “본인의 목소리를 노래에 맞춰서 많이 바꾼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그렇지 않아요?”(옥주현) “기존 가수들의 목소리가 교대로 들리는 것 같아서 목소리가 뭔지 모르겠어요. 자기 목소리로 노래하시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요.”(박진영) “노래 속에서 그려지는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하세요. (음을) 꺾는 거, 음정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 이거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윤종신)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아직 운전 한 번도 안 했어요. 지도만 가지고 계신 겁니다. 커브를 잘 돌고 벤딩을 잘하고 속력을 내서 차 운전을 잘하는 걸, 이제 해야 하거든요.” “외우세요. 육체적으로 외우세요. 몸에서 외우세요.” “시선이 그 보여주는 것의 반일 수가 있어요, 어떨 때는.”(이상 박칼린)
심사평을 들으면서 간접적으로 노래에 대해 ‘학습’하는 과정이 반복되면 시청자는 각자 자신이 가진 노래에 대한 편견을 깨고 기준을 조금씩 수정한다. 그러면서 점차 ‘노래를 잘한다는 것’에 대한 나름의 기준을 만들어간다. 그러다 보면 ‘감동’이라는 추상적인 영역과 마주치게 된다.
“노래에서 약간 진정성이 느껴진다고 해야 되나, 감동적이었습니다.”(백지영) “노래가 너무 마음에 와닿았고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런 느낌이 온 것 같아요.”(엄정화) “감탄은 주는데 감동을 못 줘.”(이승철) “내가 찾는 건 이쁜 노래가 아니라 그 노래가 뭔 뜻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감정이 보였으면 좋겠어요. 뭔가 그게 보이든지 앞에 그걸 그리고 있든지 해야 할 텐데.” “아무런 힘이 없어, 그러면. 그냥 혼자 감상하고 있구나 이렇게 돼요. 남한테 주는 노래가 아니라 자기 혼자 집에서 거울 보고 부르는 노래라.”(이상 박칼린)
추상적이면서 애매한 감정인 ‘감동’은 신기하게도 두 프로그램을 통해 종종 실체를 드러낸다. 에서 장재인과 김지수가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허각과 김보경이 노래를 부르던 순간, ‘남자의 자격’ 하모니편에서 배다해가 삽입곡을 부르고 합창단의 목소리가 어느새 조화를 이루는 순간, 감동이라고 표현할 만한 감정이 TV를 통해 전해진다. ‘감동적이에요’라는, 얼핏 단순한 감상평은 프로그램이 노래에 대한 심사와 평가를 통해 쌓아온 결과물이고 동시에 진심을 담은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된 시청자의 고백이다.
대중음악평론가 이민희씨는 두 프로그램을 “노래가 가진 힘 자체를 믿고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라고 평한다. 이씨는 “진정한 노래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게 아니라 진정한 노래가 뭔지 사람들에게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며 “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훌륭한 노래와 부족한 노래가 뭔지 구분할 수 있게 만드는데, 그건 아마도 노래를 대하는 태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 “시청자에게 평가자의 자격을 부여하고 가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시청자에게서 노래에 대한 적극적인 반응과 의미를 이끌어낸다”고 덧붙인다.
흉내 내는 감동은 없다는 이런 과정을 통해 시청자가 뽑은 진짜 가수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그런데 지난 시즌1을 되짚어보면 노래가 가진 힘이 이 프로그램 안에서만 끝났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대중음악평론가 김학선씨는 “노래의 진정성을 생각하게 하는 건 좋지만 지나치게 가창에만 집중해 참가자 개개인이 가진 음악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이 프로그램의 한계”라며 “결과적으로 다른 이가 만들어주는 노래만을 부르고 기획사에 끌려다니게 되는데, 지난해 우승자인 서인국이 그런 예”라고 말한다.
‘남자의 자격’ 하모니편에 ‘바로 그’ 서인국이 합창단원으로 출연했다. 서인국은 노래 하나로 에서 우승했지만 데뷔 이후 가요계에서 보여준 모습은 기존 가수들을 흉내 내듯 따라 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랬던 그가 합창단원으로 정직하게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는 새삼 그의 존재를 실감했다. 지금의 노래 역시 서인국과 처지가 크게 다르지 않다. 자기 목소리로 감정을 전하는 고유한 존재가치를 증명하려고 고군분투하는 노래의 노래를, 들어보자.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DFE5CE"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EBF1D9"><tr><td class="news_text03" style="padding:10px"><font color="#000000">보컬트레이너 박선주가 말하는 ‘노래를 잘한다는 것’</font>
<font color="#1153A4"><font size="4">“소리·음정·박자·가사가 만나 앗! 하는 순간”</font></font>
박선주에게는 여러 개의 수식어가 가능하다. 와 등의 히트곡을 가진 가수이자 과 등을 만든 작곡가이자 작사가,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여자가수상’에 빛나는 싱어송라이터에 김범수 등을 가르친 보컬트레이너이기도 하다. 최근 노래에 관한 책 (위즈덤하우스 펴냄)을 내고 참가자들의 보컬트레이닝까지 맡아 바쁜 박선주를 만났다. ‘노래를 잘한다는 건 뭘까요?’라는 질문을 들고.
<font color="#003366">최근 노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걸 느끼나.</font>
확실히 높아졌다는 걸 느낀다. 와 책 에 대한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
<font color="#003366">노래를 하는 가수의 재능과 듣는 보컬트레이너의 능력, 조율하는 프로듀서의 능력, 창작자의 능력을 고루 갖췄다. 노래에 대한 감각은 타고났다고 생각하나.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에 두고 있나.</font>
타고난 재능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재능이라는 건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 내 경우엔 지기 싫어하는 마음이 재능을 뒷받침해준 것 같다. 다양한 일을 하고 있지만, 나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어디에 묶어두기보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는 좀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생각하려 한다.
<font color="#003366"> 좋은 귀를 가졌다는 건 어떤 건가.</font>
예민하고 섬세하고 감수성이 있으면서 감정표현을 잡아내는 데 빠르다는 거다. 노래에서 작은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음식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아는 것처럼 음악 역시 많이 들어본 사람만이 좋은 귀를 가질 수 있다.
<font color="#003366">노래를 잘한다는 건 뭐라고 생각하나.</font>
노래는 결국 소통, 그러니까 커뮤니케이션이다. 자기가 노래를 통해 전하고 싶은 감정을 좋은 소리로, 또 자기만의 독특한 목소리로 가장 잘 전달하는 게 노래를 잘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노래는 ‘멜로디가 있는 말’이기 때문에 음정도 중요하고 박자도 중요하고 가사 전달력도 중요하다. 이 모든 것이 교차되면서 한 지점에서 만날 때 ‘앗!’ 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아마 노래로 인해 감동을 느끼게 되는 순간일 거다.
<font color="#003366">노래를 잘한다는 것에 대한 편견도 있다.</font>
표정을 구기면서 부르면 잘 부른다고 생각한다. 목소리가 허스키하고 고음이 잘 올라가거나 애드리브를 구사하고 발음을 흐릴 때 보통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font color="#003366">어떤 노래를 들을 때 감동을 받나.</font>
두 가지다. 스티비 원더처럼 완전히 다른 차원의 기교를 가진 사람의 노래를 들을 때 감동받고, 자신을 내려놓고 정직하고 솔직하게 하는 노래를 들을 때 감동받는다.
</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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