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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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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소비한다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진화심리학자의 눈으로 현대소비자본주의를 분석한 <스펜트>
등록 2010-08-18 16:23 수정 2020-05-03 04:26

매일 숨을 쉬듯 소비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는 기본이요, 낭비는 선택 사항이다. 기업의 눈에 씀씀이가 큰 사람은 아름답다. 그런데 매달 날아오는 카드 청구서에 목이 죄이면서도 우리가 소비를 줄이지 못하는 이유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소비 행태를 스스로도 아름답다고 여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국 뉴멕시코대학의 진화심리학 교수 제프리 밀러가 쓴 (동녘사이언스 펴냄)는 생존을 위한 소비보다 이와 상관없는 소비가 인간의 구매 활동에서 아주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과시적 소비’의 뿌리를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찾아낸다.
 
남성의 소비는 수컷 사자의 갈기 같은 것?

〈스펜트〉

〈스펜트〉

제프리 밀러는 ‘필요한’ 구매 행위에서 굳이 많은 돈을 써가며 ‘필요하지 않은’ 소비를 하는 것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먼 거리로의 이동을 위해 자동차를 사야 하는 남자가 있다. 그의 선택은 포르셰다. 물건을 담기 위해 가방을 사고 뜨거운 아스팔트로부터 발을 보호하기 위해 신발을 사려는 여자가 있다. 그런데 그녀는 굳이 프라다 핸드백이나 마놀로블라닉을 고른다.

밀러는 이같은 소비 행태를 성 선택에서 우월성을 차지하고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경쟁하는 인간 본성에 기반한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자기 자극과 사회적 과시로 나르시시즘을 채우기 위한 상품”을 비싼 대가를 치르고 구매함으로써 자신의 매력을 이성에게 호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동물의 세계에서 수컷 사자의 갈기, 수컷 공작새의 화려한 꼬리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

영리한 마케터들은 인간의 과시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그들은 소비자의 욕구를 찾아주고 “우리가 상상도 못했던 방식으로 그 욕구를 채우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소비 활동의 결과로 우리가 얻은 ‘득템’의 즐거움이 얼마나 오래갔는지. 밀러는 소비가 주는 희열이 오래가지 못함에도 인간이 그 덫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유를 진화론적 관점으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진화 과정을 통해 “성공적인 번식을 추구”하기보다는 “성공적인 번식으로 이끈 신호, 경험, 물건 등을 뒤좇도록 진화”했다. 그 증거로 최근의 많은 연구들이 남성이 ‘짝짓기’에 가장 관심이 많을 때 ‘과시적 소비’를 늘린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소비의 결과물은 짝짓기 성공률을 높이는 수단으로 쓰일 것이다. 여성의 소비 특성은 좀더 복잡한 맥락에서 읽힌다. 수컷이 경쟁자 수컷을 위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을 과시한다면, 암컷은 다른 암컷보다 높은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과시욕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적용하면 다른 여성보다 우월함을 내세우기 위해 과시성 소비를 한다는 것. 이런 연구를 바탕으로 밀러는 “결혼 상대자이자 친구들에게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탐내고, 일하고, 사는 모든 행위”가 현대소비자본주의의 구조적 틀을 만들어냈다고 말한다.

 

소비주의 탈출 훈련을 하라

제프리 밀러는 어떻게 해야 인간 심리를 이용한 마케팅의 촘촘한 그물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말하고, 소비주의에서 탈출하는 훈련 방법을 제시한다. 신용카드 없이 쇼핑몰에 가보거나 비싼 돈을 주고 산 물건과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이 얼마나 겹치는지를 비교해보라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소비주의를 지향하는 기업의 입장을 지지하기도 한다. 밀러는 책 앞머리에서 소비주의 찬성론자로 읽히는 세계무역기구(WTO), 세계은행(WB), 과 소비주의 반대론에 서 있는 그린피스, 공정무역 운동, 나오미 클레인의 의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고 소비주의를 논하겠다고 했다. 양쪽의 목소리가 그에겐 때때로 극단적으로 받아들여졌단다. 양쪽의 논쟁에서 한발 물러나 인간의 본성과 생물학적 현실에 초점을 맞춰 소비주의를 재해석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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