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몸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늘 시청하는 토요일의 쇼프로에서… 즉 정해진 공식처럼 아이돌과, 발라드 가수가 출연하는 무대를 보고 있는데… 카레를 먹으며 보고 있는데… 방청객의 박수소리도 여전한데… 한결같은 MC에 늘 보던 무대인데… 어떤 예고도 없었는데… 느닷없이 요들송을 부르는 아저씨가 나와 요로레이리요 레이리요 레이요르리 하는 기분이었다. 뭐, 뭐야… 카레가 식을 때까지 망연자실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처럼,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박민규의 소설 의 문장이다. 이 다음에 당신은 어떤 ‘그녀’를 상상하나. ‘눈을 뗄 수 없는’ 미모의 ‘그녀’에게 ‘몸이 얼어붙는’ 화자를 상상했다면 답은 틀렸다. 다음 문장은 이렇다. “말하자면 그때까지도 꽤 많은 못생긴 여자들을 봐왔지만 나는 그녀처럼 못생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불편함을 드러내라
〈불편해도 괜찮아〉
(창비 펴냄)의 저자 김두식 경북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앞의 문장을 읽고 “가슴이 쿵 하고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더랬다. “못생긴 여자는 주목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는 거친 문화 속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외모’에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반사한다.” 그리고 고민한다. 우리는 왜 미디어가 만들어낸 획일적인 아름다움을 좇는지, 왜 못생긴 사람을 차별하는지, 그런데 못생긴 사람을 못생겼다고 말하는 기준은 무언지, 반대로 예쁘다고 헐뜯는 문화는 어디서 비롯하는지.
저자는 이렇게 소설의 한 귀퉁이, 영화의 한 지점, 드라마의 한 장면을 두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인권 문제들에 대한 고민을 여러 갈래로 풀어낸다. 청소년 인권, 성소수자 인권, 여성과 폭력, 장애인 인권, 노동자의 차별과 단결, 종교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검열과 표현의 자유, 인종차별, 제노사이드 등 9개 줄기를 따라 우리가 불편해하지 않고 지나쳐버린 인권 문제를 도두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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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야 할’ 인권 문제는 우리 생활 곳곳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배어 있다. 저자는 지난해 드라마 에서도 폭력 문제를 끄집어냈다. 승희(김태희)와 사랑이 무르익지도 않았는데 돌발적으로 키스하는 현준(이병헌). 승희는 따귀 한 대로 응징한다. 그리고 곧바로 사랑에 빠진다. 한국 드라마에서 습관처럼 반복하는, 그러나 “전세계 어디에서도 흔히 찾기 어려운 우리만의 드라마 문법”이다. 기습키스라는 갑작스러운 폭력과 그에 응대하는 따귀의 폭력을 두고 드라마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말마따나 “세상에는 따귀 말고도 사랑과 분노를 표현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이 있는데도 말이다.
좀더 넓은, 그러나 더 잔인한 폭력의 영역으로 시선을 옮기기도 한다. ‘그냥 다 죽이면 간단하지 않나요?’라는 제목의 9장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학살을 먼 세상의 일로 치부하는 무심한 이들을 질책한다. 영화 과 등을 통해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르완다 학살의 진실을 조금 더 이해하길 권한다.
그래도 남의 일로 느끼는 이들이 있다면? 그래서 저자는 개인이 국가를 그냥 믿고 방치했을 때, 그리하여 국가가 이상하게 작동할 때 얼마나 무서운 사회가 될 수 있는지를 그린 영화들을 나열했다. 첨단 정보통신 기술과 결합한 권력이 개인을 얼마나 순식간에 망가뜨리는지를 보여주는 , 옛 동독 시절 일상적으로 자행되던 도청을 소재로 한 , 남의 아이를 억지로 자기 아이로 인정하도록 하기 위해 국가 시스템이 친엄마를 정신병원에 집어넣는 이 저자의 추천작이다. 아니면 좋겠지만 실제와 닮아 있어 불편하다. 권력에 농락당하는 개인의 진실, 민간인 사찰이 자행되는 현실이 오버랩된다. 책의 끝머리에는 인용한 영화와 드라마 목록이 실렸다. 실컷 보고 나면, 불편하기 그지없는 인권 감수성이 마음에 새겨질 듯하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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