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펴냄, 1만3천원
네덜란드의 문화사가 요한 하위징아(사진·1872~1945)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1938)가 새 번역본으로 나왔다. 인간을 ‘놀이하는 존재’로 규정한 저작이자 하위징아의 말년을 장식한 걸작이다.
하위징아의 출세작은 1919년에 출간한 이다. 그에게 중세사가로서 불후의 명성을 안겨준 것이 이 저작이다. 과 , 20년의 간격을 두고 출간된 두 독창적 저작은 한 사람이 썼다고는 언뜻 믿기지 않을 정도로 주제가 다르다. 하나는 중세 말기 유럽인의 ‘삶의 양식’을 조명하고, 다른 하나는 인류 문화와 놀이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통사적으로 살핀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두 책 사이에는 자연스러운 물의 흐름 같은 연속성이 있다. 하위징아 자신은 안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에서… 문화와 놀이는 친밀한 관계라는 사상의 씨앗을 처음으로 마음에 뿌렸다.”
부터 시작된 놀이 탐구
14~15세기 유럽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은 그 시절 중세인이 겪은 ‘삶의 쓰라림’에 대한 절실하고도 고통스러운 묘사에 이어 그 중세인이 마음에 품었던 ‘더 아름다운 삶을 향한 열망’을 추적한다. 그 열망의 길 가운데 하나가 ‘꿈의 길’이다. “현실은 너무나도 비참하고 세계를 거부하는 일도 너무 어렵다. 그렇다면 환상의 세계에서나 살자.”() 그 길에서 하위징아가 만나는 것이 중세의 ‘기사도’와 ‘궁정 연애’인데, 바로 이 기사도와 궁정 연애가 에서 말하는 ‘놀이 정신’의 중세적 표출이다.
하위징아는 1872년 네덜란드 북부 도시 흐로닝언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때 그리스어·라틴어·히브리어·아랍어를 공부했고, 흐로닝언대학에 들어가서도 언어학을 사실상 전공으로 삼았다. 특히 박사과정에서는 인도 고전어인 산스크리트를 공부했고, 산스크리트 문헌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897년 그는 하를럼고등학교 교사가 됐는데, 여기서 역사를 가르치면서 처음 유럽 중세사에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다. 이어 1905년에 흐로닝언대학, 10년 뒤에는 레이던대학 역사학 교수가 됐다. 수많은 고대어를 공부한 것이 역사학자 하위징아에게는 아주 훌륭한 무기가 되었는데, 에도 그리스·로마·산스크리트 문헌과 단어가 수시로 등장해 논거를 제공한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말도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의 라틴어다.
하위징아는 의 머리말에서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이란 뜻의 ‘호모 사피엔스’도, ‘(물건을) 제작하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파베르’도 인간을 제대로 규정하기에는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그리하여 나는 호모 파베르 옆에,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와 같은 수준으로, 호모 루덴스를 인류 지칭 용어의 리스트에 등재시키고자 한다.” 이어 하위징아는 말한다. “나는 지난 여러 해 동안 문명이 놀이 속에서, 그리고 놀이로서 생겨나고 발전해왔다는 확신을 굳혔다.” 이 확신을 입증하는 것이 이 책인 셈인데, 그 계획을 수미일관하게 밀고 나간 뒤 결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진정한 문명은 놀이 요소가 없는 곳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20세기, 유치한 행위가 판치는 정치
하위징아는 놀이의 정신이 19세기에 소멸했음을 매우 안타까워한다. “노동과 생산이 시대의 이상이자 우상이 되었다. 유럽 전역은 작업복을 입었다.” 그렇다면 20세기는 어떨까? 하위징아가 보기에 20세기는 겉보기엔 놀이가 아주 많아진 것 같지만, 놀이 정신은 사라지고 없다. 특히 정치에서 놀이 정신이 죽고 ‘유치한 행위’가 판친다. 그가 이 책을 쓰던 때는 나치가 독일에서 정권을 잡고 발호하던 때였는데, 그 현상을 염두에 둔 듯 그는 “소리를 지르거나 요란하게 인사를 하고, … 우스꽝스러운 집단행위를 한다”고 썼다. 이 시대는 놀이의 정신에 관한 한 명예의 코드도, 게임의 규칙도 내팽개친 천박한 시대였다. 그 나치 독일이 네덜란드를 침략한 것이 1940년 5월인데, 이때 하위징아는 대학에서 쫓겨난 뒤 변방 도시 더스테이흐로 유폐됐다가 1945년 2월 숨을 거두었다.
고명섭 기자 한겨레 문화부문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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