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위기에서 ‘국가적인 것’을 환기한다.”
안영춘 편집장의 말대로 한국판 5월호는 지면 이곳저곳에서 국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들은 각기 다른 사건과 맥락에서 흘러나와, 시대의 총체적인 위기를 드러낸다. 지금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font color="#00847C">주권을 위협하는 국제 금융시장</font>
경제학자 프레데리크 로르동은 ‘빚쟁이의 국적을 따진다’라는 글에서 그리스 공공부채 위기를 진단한다. 그에 따르면 그리스 위기를 둘러싼 ‘허위적 토론’은 공공부채를 해결할 새로운 방식에 대해 침묵한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곤란함을 야기하기 때문인데, 그 곤란함이란 국제 투자자들의 반대다.
그리스는 공공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113%(2009년 기준)이고 일본은 200%(2010년 기준)이다. 왜 국제 투자자들은 그리스보다 엄청난 재정 적자를 기록하는 일본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 로르동은 “국제 투자자가 일본 정부의 채권자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본 공공부채의 95%는 채권자가 자국 예금자다. 충분한 저축을 확보한 일본 정부는 재정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 자본시장에 손을 벌릴 필요가 없다. 긴축재정 같은 국제 금융시장의 압력에서 자유로운 것이다.
많은 국가들이 금융규제 철폐라는 주문에 말려드는 상황에서도, 일본은 정부와 금융기관의 공조를 유지했다. 일본의 은행과 연금재단은 가계저축을 대대적으로 국채 매입에 투자했다. 국내 투자자에게 일정 비율의 국채 매입을 의무화하면 공공부채의 대부분을 국내에서 해결할 수 있다. 로르동은 이것을 ‘공공부채 해결 과정의 반세계화’라고 표현한다. 이런 식의 해법은 사회 각 주체에게 돌아갈 공공부채의 이익을 주권 범위 안에서 중재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다시 말해, 국제 금융시장이 아니라 국가의 역할이 요청된다. 로르동은 말한다. “국가라는 개념을 감히 역사에서 폐기해버리려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언젠가는 주권이라는 개념 역시 폐기해버릴 셈인가.”
특집2는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논란을 다룬다. 미디어평론가 이영주씨는 ‘희생자 두 번 죽이는 기호와 담론의 통치’에서 천안함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보수 언론과 권력을 비판한다. 보수 언론의 결론은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의 모호한 진술과 공명한다. ‘사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보수 언론은 왜 자신들이 북한의 도발을 보도하고 단정짓는지에 대한 응답 대신 일방적인 발언만 확대재생산한다. 사실이 사라졌으므로, 누구도 보수 언론에 진실성을 묻지 않으므로, 남는 것은 정치적 수사뿐이다. 우리는 기호와 이미지가 실재를 대체하는 잘 짜인 가상현실에 놓이게 되었다.
<font color="#C21A8D">다문화 사회의 흔들리는 정체성</font>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은 ‘엄숙해진 TV, 예능 불방의 정치적 예능 과잉’에서 천안함 사건이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진실게임’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군사정보 접근권을 가지지 못하는 시민은 국가와 권력에 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무엇이 진실인가’가 아니라 이 진실게임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행하고 있는가’다.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이 한 달 이상 결방됐다. 도덕적인 엄숙함이 조성된다. 그러나 공중파 예능이 중단된 그 자리에 ‘인간 어뢰’나 ‘영웅 만들기’ 같은 정치적 예능이 넘쳐나고 있다. 북한 개입설의 프레임에서 문화방송 파업 등의 이슈는 계속 배제되고 정치는 실종된다. 한없이 불투명한 재난 속에서 국가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소수민족의 딜레마를 다룬 특집1 ‘흔들리는 정체성의 뿌리’는 국가의 문제를 또 다른 방식으로 제기한다. 볼리비아를 중심으로 남미 원주민 운동을 분석하는 모리스 르무안 기자는 “원주민이라는 정체성이 인종차별, 보수주의로의 이탈에 방패막이가 돼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남미 원주민 단체들은 한편으로 국가의 지원을 받기 위해 경쟁하면서, 한편으로 국가 공동체의 정의와 충돌한다.
아크람 벨카이드 기자는 외국인이 전체 인구의 83%에 달하는 아랍에미리트의 딜레마를 분석한다. 문제는 ‘외국인에게 시민권을 줘야 하는가’이다. 국적을 부여한다면 아랍에미리트의 원주민은 소수민족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권리를 달라는 이민그룹의 요구는 확산 일로다. 다인종·다문화 사회에서 국가의 정체성은 계속 흔들리고 있다.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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