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 동안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이주명 옮김, 필맥 펴냄)은 서재 깊은 곳에서 먼지를 뒤집어썼다. 케인스의 라이벌이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케인스의 이론을 반박하기 위해 이 고전을 숙독했겠지만, 하이에크의 후계자인 시카고학파 학자들은 이 고전이 불경기에나 필요한 ‘특수이론’이라고 평가절하해버렸다.
불완전고용까지 포용하는 ‘일반이론’
케인스는 자신의 책을 ‘일반이론’이라고 불렀다. 완전고용 아래 균형상태만을 가정하는 고전경제학의 이론은 특수이론이고, 자신의 이론은 불완전고용 상태까지 포용하는 일반이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이론은 1970년대 후반 스태그플레이션과 함께 등장한 통화주의자에 밀려 자리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1980년대 레이건의 ‘레이거노믹스’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는 이 고전을 천덕꾸러기 신세로 만들어버렸다.
사람들은 시장이 합리적 이성을 가진 ‘보이지 않는 손’의 작동으로 효율적으로 움직이며 균형을 찾아간다고 믿었다. 정부는 민간의 창의성을 앗아가는 악의 존재로까지 여겼다. 이런 상황에서 이 고전을 얘기하는 사람은 시대에 뒤떨어졌거나 마르크스를 그리워하는 불손한 사상가로 의심받았다.
그런데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믿었던 시장이 붕괴됐다.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는 신자유주의 경제는 폭주하는 기차처럼 어느 순간 정점으로 치닫다 갑자기 고꾸라졌다. 미국 비우량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의 결과로 일어난 글로벌 금융위기다. 거품경제를 부추긴 것은 인간의 탐욕이었다. 정부는 뻘쭘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신자유주의가 파국을 맞은 지금 다시 이 고전이 부활하고 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서재 깊숙한 곳에서 이 고전을 꺼내 먼지를 툴툴 털어내고 다시 읽고 있다. 44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버락 오바마의 경제팀이 정부 역할과 공공사업을 강조하는 케인스주의자로 꾸려졌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전문가 칼럼과 기고에선 케인스와 이 고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미 하원의원 시절 반공주의자로 이름을 떨쳤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조차 “우리는 모두 케인스주의자”라고 말할 때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1936년 이 책이 나올 때, 새로운 대안으로 환영받던 모습이 데자뷔처럼 겹쳐 보인다.
당시 대공황은 케인스를 스타로 만들었고, 일반이론을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케인스 경제학은 2차 세계대전 직전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30년 동안 지배적인 경제사상으로 군림했다. 일반이론은 완전고용 상태의 자동적인 복원을 주장하던 고전 경제학을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자본주의 체제가 가진 불안전고용에 대해 새로운 분석틀을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케인스는 거시경제학의 지평을 열었다.
대공황이란 위기를 돌파한 건, 이 책에 나와 있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이 고전은 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고전경제학의 전제를 거부하고 오히려 거꾸로 바라본다. 소비, 즉 수요를 중심으로 경제를 바라봤다. 또 손 놓고 있는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도록 했다. 무엇 때문인가. 바로 유효수요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수요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기업과 개인은 생산과 소비를 합리적으로 조직하는 합리적 주체도 아니고, 국가경제 전체를 파악하고 공익을 우선하는 도덕적 주체도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대신해야 하는가. 케인스는 국가로 보았다. 합리적 개인 따위는 없다. 국가경제 전체를 큰 틀에서 수요를 통해 볼 때 경제 현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실업을 구제하는 방법?케인스는 이 책에서 손 놓고 있는 정부 당국자들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투로 이렇게 말한다. “만약 (영국) 재무부가 낡은 병들에 은행권을 가득 채우고 그 병들을 폐탄광에 적당한 깊이로 묻은 뒤, (중략) 자유방임주의라는 원칙에 따라 사적 기업으로 하여금 그 은행권을 다시 파내는 일을 하게 한다면 더 이상 실업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고….”(162쪽)
이 책은 이미 번역서가 나와 있다. 그런데도 굳이 다시 번역해 펴내는 이유에 대해 옮긴이는 “좀 더 읽기 쉽게, 그리고 좀 더 정확하게 새로 번역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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