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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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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빠, 설날만은 우리랑 놀아요~

아이·어른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전통 명절 놀이들…
모처럼 ‘만점 부모’도 되고 옛 추억도 되새김질하고
등록 2010-02-10 17:23 수정 2020-05-03 04:25

필요 없어요. 세뱃돈 안 받을래요. 어차피 줬다가 뺏을 거잖아요. 통장에 저금했다가 크면 돌려주겠다는 말, 이젠 됐어요. 부도어음 같은 세뱃돈 받고 방에 돌아가 콕 처박혀 있는 것도 싫어요. 어른들끼리 술 마시고 화투 치고 껄껄 웃는데, 나는 재미가 하나도 없어요.

엄마·아빠, 설날만은 우리랑 놀아요~. 한겨레 신소영 기자

엄마·아빠, 설날만은 우리랑 놀아요~. 한겨레 신소영 기자

설날이잖아요. 이건 일요일보다 방학보다 더 귀한 시간이라고요. 일요일에 아빠는 잠을 자요. 방학이 되어도 엄마·아빠는 일 나가요. 나는 설날만 기다려요. 가슴이 두근거려요. 세뱃돈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 엄마·아빠하고 함께 지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요. 사촌 형제들도 모여요. 떼지어 놀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에요.

그러니 같이 놀아요. 술상 접고, 화투판 치우고, 부동산 투자니 증권 시세니 어른들끼리 하는 지루한 대화도 생략하고, 밖으로 나가요. 1년에 딱 한 번뿐인 설날, 나하고 놀아요. 우리하고 놀아요. 어린이 월간 교양지 (www.goraeya.co.kr) 편집진이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설날 놀이를 추천해줬어요. 제가 지금부터 설명할게요. 엄마·아빠도 옛날에 이런 놀이 했잖아요. 기억나죠? 그쵸?

◎ 범 구멍 구슬치기

올해가 범띠 해잖아요. 손잡고 호랑이 굴에 가요. ‘범 구멍 구슬치기’는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살판나는 놀이예요. 우선 흙바닥에 구멍 4개를 파요. 지름 5cm, 깊이 3cm 정도면 돼요.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4개 구멍 사이를 떼어놓아요. 구멍 뒤편에 선을 그어요. 거기 발을 놓고 구슬을 던지는 거예요. 자, 가위, 바위, 보.

이긴 사람부터 ‘출발 구멍’에서 ‘2번 구멍’을 향해 구슬을 던져요. 구멍에 들어가면 성공, 아니면 실패. 실패하면 ‘출발 구멍’에 구슬을 넣고 순서를 기다려야죠. ‘2번 구멍’에 들어간 사람은 ‘3번 구멍’에 구슬을 던질 기회를 얻어요. 역시 실패하면 ‘2번 구멍’에 제 구슬을 넣어둬야죠. ‘3번 구멍’에 구슬을 넣었으면, 다시 ‘출발 구멍’을 향해 구슬을 퉁겨요. 이제 마지막으로 ‘출발 구멍’에서 ‘범 구멍’을 겨냥해 던지면, 와! 드디어 ‘범 구멍’에 들어왔어요. 의 화살표 순서를 따라 던지는 거예요.

범 구멍 구슬치기

범 구멍 구슬치기

그런데 ‘범 구멍’에 들어왔다고 끝나는 게 아니에요. 진짜 놀이는 지금부터. ‘범 구멍’에 구슬을 넣으면 다른 사람 구슬을 맞혀 따낼 자격을 얻는 거예요. 상대 구슬이 ‘출발 구멍’에 있건 ‘2번 구멍’에 있건 그 구슬을 겨냥해 맞히는 거죠. 운이 좋으면 한꺼번에 여러 사람의 구슬을 맞히기도 하지요. 그렇게 다른 구슬을 모두 맞혀 따내면 놀이가 끝나요.

일단 ‘범 구멍’에 들어간 사람은 상대 구슬을 맞히지 못해도 제 구슬을 다시 ‘범 구멍’에 넣지 않아요. 그냥 구슬이 굴러간 곳에 놔둬요. 제 순서가 돌아오면 구슬이 굴러간 자리에서 다른 구슬을 겨냥하는 거지요. 모두가 ‘범 구멍’에 들어갔다면, 이제부터 경기장은 골목 전체로 번져요. 서로 먼저 맞히려고 구슬을 퉁기고, 구슬은 자꾸자꾸 사방팔방으로 흩어지죠. 구슬이 굴러가는 모든 곳이 범구멍 구슬치기 놀이터예요. 한 번 더 하고 싶죠? 그럼, 새 구슬 꺼내야죠. 구슬 따먹는 재미로 한 번 더, 구슬 잃었으니 약이 올라 한 번 더.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아빠의 귀띔: 던질 것인지 굴릴 것인지 잘 생각해야 해. 던져 맞히기는 쉽지 않지만, 땅이 울퉁불퉁하면 구슬을 굴리는 것도 어렵거든. 구슬을 잡는 세 가지 방법이 있어. 멀리 있는 상대 구슬을 겨냥할 때는 엄지와 검지로 구슬을 쥐는 게 좋아. 손목과 팔의 힘으로 구슬을 멀리 보낼 수 있어. 짧은 거리에선 엄지손가락으로 퉁겨내고, 조금 먼 거리는 중지로 퉁겨내면 되지.

‘범 구멍 구슬치기’는 두 사람만 있어도 놀 수 있지만, ‘삼팔선 놀이’는 여러 사람이 해야 재밌어요. 3 대 3, 아니면 4 대 4 정도가 좋아요. 삼촌네 식구하고 같이 하면 딱이에요. 놀이터부터 만들어요. 전체 인원이 6명이면 다섯 칸, 8명이면 일곱 칸을 그려요. 에 나오는 색깔 있는 칸이 술래팀의 땅이고, 하얀 칸은 공격팀의 땅이에요.

◎ 삼팔선 놀이

우선 술래팀은 한 칸에 한 사람씩 들어가요. 술래는 제 칸 밖으로 절대 못 나와요. 공격팀은 제 땅의 맨 위쪽에 모여요. 거기서 시작하는 거예요. 공격팀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맨 아래칸까지 갔다가 처음 칸으로 돌아오면 공격팀이 이기는 거죠. 식은 죽 먹기라고요? 흐흐, 술래팀은 괜히 있는 줄 아시나 봐요.

삼팔선 놀이

삼팔선 놀이

술래의 손에 닿은 공격팀 사람은 밖으로 나가야 해요. 술래는 제 칸 밖으로 나올 수 없지만, 손을 뻗어 언제든지 공격팀을 잡을 수 있어요. 공격팀을 모두 잡으면 술래팀이 이기는 거고, 술래도 바뀌겠죠. 그러니까 잠시도 방심하면 안 돼요. 같은 편끼리 작전을 잘 짜야 해요. 소리를 지르면서 온 식구가 뛰어다니면, 아무리 추워도 땀이 금세 나요.

엄마의 귀띔: 많이 뛰어다니는 놀이니까 놀이터는 널찍하게 만드는 게 좋아. 아스팔트나 시멘트 바닥에서도 놀 수 있지. 분필로 놀이터를 만들면 되거든. 60여 년 전,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처음 분단됐을 때, 그 경계선이 북위 38도선이었어. ‘38선’이라 불렀지. 군인들이 남북의 통행을 막았어. 그래도 사람들은 가족과 친구를 찾아 남과 북을 넘나들었지. 그러니까 ‘삼팔선 놀이’에는 고향길을 가로막은 군인들을 은근히 곯려주려는 마음이 깃들어 있어. 설이 되어도 고향에 가지 못하는 실향민이 여전히 많잖아. 재미난 놀이지만 참 많은 이야기가 담겼지?◎ 깡통 술래잡기

그럼 이번엔 가로막는 놀이 말고 풀어주는 놀이 해요. ‘깡통 술래잡기’는 그냥 술래잡기와는 달라요. 먼저 지름 1m 정도의 원을 그려요. 그리고 한가운데 깡통 하나를 놔둬요. 6명이 논다면 술래는 2명 정도가 좋아요. 그보다 많아지면 술래를 3명 정해도 상관없어요.

술래가 정해지면, 도망다닐 동무들이 깡통을 차례로 걷어차요. 가능하면 멀리멀리 차내는 게 도망다니는 쪽에 좋아요. 이제 술래는 그 깡통을 주워 원 안에 놓아야 해요. 그때부터 놀이가 시작돼요. 술래가 깡통을 제자리에 놓는 동안, 도망다니는 동무들은 멀리멀리 도망치는 거죠. 그러다 술래의 손이 닿으면 깡통이 있는 원 안에 쪼그리고 앉아 있어요. ‘포로’가 되는 거죠. 을 보면 금세 이해할 수 있어요.

깡통 술래잡기

깡통 술래잡기

이게 끝이 아니에요. 도망다니는 동무들이 ‘포로’를 풀어줄 수 있어요. 원 안에 있는 깡통을 차내기만 하면, 그 순간 모든 ‘포로’가 원 밖으로 뛰쳐나와 다시 도망다닐 수 있어요. 술래를 2명, 3명 정해도 상관없는 이유를 알겠죠? 술래 1명은 동무들을 잡으러 다니고, 나머지 술래 1명은 원 근처에서 깡통을 지키는 거죠. 한쪽은 깡통을 차내려 달려들고, 다른 쪽은 그런 동무들을 잡으러 달려드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도망다니는 동무들이 모두 ‘포로’가 되면 놀이가 끝나요. ‘포로’들끼리 가위바위보를 해서 술래를 정하고 다시 뛰어다니는 거죠.

아빠의 귀띔: 술래가 되지 않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포로’가 된 친구들을 자꾸자꾸 구해내는 거지. 서로 잘 협력해야 해. 한 사람은 깡통을 지키는 술래의 시선을 돌리고, 다른 사람이 술래 뒤로 가서 깡통을 차내는 거야. 원을 그릴 때는 한쪽 발을 축으로 두고 다른 발 뒤축으로 빙글빙글 돌며 땅바닥에 선을 그으면 돼. 바깥에서 하는 놀이의 진짜 재미는 이렇게 손과 발로 모든 걸 해결하는 데 있거든. 까짓 운동화가 더러워지면 어때. 열심히 놀면 되는 거야.

◎ 비석치기

헉헉. 너무 숨차요. 이제 조금 진정해야겠어요. ‘비석치기’ 해요. ‘비석’은 무덤 앞에 세워두는 돌이죠. 비석처럼 돌을 세워두고 그걸 맞히는 놀이라는 뜻이죠. ‘비석’은 날아다니는 돌이라는 의미도 있으니까, 놀이 이름을 참 잘 지은 것 같아요. 4~5m 간격으로 두 선을 그으면 놀이터 준비는 끝. 어릴 적에 많이 해봤다고 뻐기지 마세요. 순서 다 기억하세요? 보통 18단계가 있어요.

1. 걸러 맞추기: 시작 선에 서서 한번에 돌을 던져 상대 돌을 맞혀 쓰러뜨려요.

2. 한발걸이: 자기 돌을 던지고 외발로 한 번 뛰어 돌을 밟아요. 이때 그 돌을 밟고 나서 돌보다 앞으로 나가면 안 돼요. 그러니까 처음 외발로 도약할 때 힘과 거리 조절을 잘해야 해요. 돌을 밟았으면, 옆이나 뒤로 비켜나 돌을 주워 던져서 상대 돌을 쓰러뜨려요. 계속 외발로 서 있어야 해요. 다른 발이 땅에 닿으면 실패하는 거죠.

3·4. 두발걸이·세발걸이: 자기 돌을 던지고 외발로 두 번 뛰어 돌을 밟아요. 나머지는 위와 같아요. 그다음엔 외발로 세 번 뛰는 거죠.

5. 재기: 외발로 세 번 뛰고 네 번째 뛰면서 외발로 자기 돌을 차서 상대 돌을 넘어뜨려요. 손을 쓰지 않고 발로 차야 한다는 게 중요해요. 외발로 축구한다고 생각하면 돼요.

6·7. 도둑발: 오른쪽 발등 위에 자기 돌을 얹고 세 걸음을 걸은 다음, 발등 위에 있는 자기 돌을 던져 상대 돌을 넘어뜨려요. ‘도둑발’이라고 하죠. 돌이 발등에서 미끄러지면 실패하는 거예요. 그다음엔 왼쪽 발등 위에 얹어요.

8·9. 토끼치기·무릎치기: 자기 돌을 두 발 사이에 끼우고 토끼뜀으로 세 번 뛰어요. 네 번째 토끼뜀을 하면서 돌을 던져 넘어뜨려요. 그다음엔 가랑이 사이에 돌을 끼워요. 이제부턴 걸어가면 돼요. 돌이 빠지거나 흘러내리면 실패하는 거죠.

10·11. 배사장·똥차: 자기 돌을 배 위에 얹고 걸어가요. 배를 불룩 내미니까 앞이 잘 안 보여요. 어, 배 나온 아빠는 유리하겠네. 그다음엔 등에 돌을 얹고 가요. 마지막에 뒤로 돌아 똥 누듯이 돌을 떨어뜨려요. 걷지 않고 뛰면 안 되냐고요? 흐흐, 상관은 없지만 쉽지는 않을걸요.

12·13·14·15·16·17. 신문팔이·훈장·턱치기·떡장수: 자기 돌을 오른쪽 겨드랑이에 끼고 걸어가요. 그다음엔 왼쪽 겨드랑이, 그다음엔 오른쪽 어깨 위, 그다음엔 왼쪽 어깨 위에 얹고 걸어가요. 그런 다음 목과 턱 사이에 돌을 끼고, 그다음엔 머리 위에 돌을 이고 걸어가요.

18. 장님: 드디어 마지막. 이제 눈을 감고 던져 맞혀요. 눈 감고도 척척 비석을 넘어뜨리는 ‘비석의 신’이 되고 싶어요.

엄마의 귀띔: 요즘은 돌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그럴 땐 납작한 나무조각으로 해도 상관없어. 여러 명이 편을 갈라 할 수도 있어. 단계별로 상대편 비석을 모두 쓰러뜨리지 못하면 공격과 수비를 바꾸는 거야.

◎ 고누 놀이

아직 겨울이라 해가 짧지만, 상관없어요. 집에 가서도 함께 놀 수 있어요. ‘고누 놀이’가 있거든요. 원래 ‘고누 놀이’는 밖에서 즐겼대요. 땅바닥에 고누 판을 그리고, 주변의 자갈이나 나무조각을 모아 고누 돌로 썼거든요. 그렇지만 실내에서 해도 여전히 재밌어요. 상대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걸 ‘꼬나본다’고 하잖아요. ‘고누’도 서로 꼬나보면서 하는 놀이라는 뜻이래요. 삼국시대 때부터 즐겼던 놀이라니까 정말 역사가 오래됐죠.

‘고누’에는 고누 판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어요. 그중에 제일 까다로운 게 ‘참고누’죠. 우선 검고 흰 바둑알을 각각 10여 개 정도 마련해요. 고누 판은 처럼 만들면 돼요. 두 사람이 번갈아 말을 하나씩 놓아요. 그러다가 말 3개가 일직선(가로·세로·대각선)으로 모이면 ‘곤’하고 말해요. ‘곤’은 ‘고누’에서 나온 말인 것 같기도 하고, 땅을 일컫는 의 괘를 이르는 것 같기도 해요. 어쩐지 멋있지 않아요?

고누놀이

고누놀이

‘곤’을 외치면 상대편 말 하나를 떼어낼 수 있어요. 상대가 ‘곤’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죠. 그리고 그 자리에 동전을 올려요(). 동전 자리엔 누구도 새 말을 놓아둘 수 없어요. 그러다 보면 더 이상 말 놓을 자리가 없어지겠죠?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 고누 판에 제 말이 많이 남겨진 편이 유리해요. 이제 고누 판의 동전을 다 치우세요. 빈자리가 생겼죠? 고누 판에 올려진 각자의 말을 번갈아 한 칸씩 움직여서 새로 ‘곤’을 만들어요. 자기 말 3개를 일직선이 되도록 하는 거죠. 그때마다 상대편 말을 하나씩 떼어내요. 그러다 어느 한편의 말이 3개 미만이 되면 놀이가 끝나요. ‘곤’을 더 이상 만들 수 없으니 지는 거죠.

아빠의 귀띔: 진짜 재밌게 놀려면 흙이 깔린 골목과 빈터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세상을 만들지 못해 미안하구나. 어른들은 그저 인터넷과 모바일 기계를 만들어 너희의 눈과 팔다리를 감전시켰지. 놀이운동가 편해문 선생님은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 제대로 놀지 못하면 평생 몸도 마음도 병든다”고 했지. 발행인 김규항 선생님은 “오늘 한국의 아이들은 감옥의 수인들처럼 하루를 보내고… 정작 그들을 그렇게 만든 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노라 말한다”고 했지. 어른들의 헌신에 잘못이 있었구나. 앞으로는 제대로 헌신할게. 더 많이 놀게. 더 많은 땅과 시간을 노는 데 쓸게. 언젠가는 느티나무 아래서 예쁜 자갈돌을 모아 고운 흙바닥 위에서 고누를 하고 싶구나. 거기선 너희도 목청 터지도록 외칠 수 있겠지. 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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