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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욕의 굴레와 싸운 톨스토이의 고행

작품과 삶을 넘나든 눈물겨운 사투 그려낸 석영중 교수의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등록 2009-11-11 07:03 수정 2020-05-02 19:25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그는 예술가였지만 예술을 미워했다. 귀족이었지만 귀족을 미워했다. 90권이나 책을 썼지만 말을 믿지 않았다. 결혼을 했지만 결혼 제도를 부정했다. 언제나 육체의 욕구에 시달리면서 금욕을 주장했다.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였지만 지성을 증오했다.”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는 이렇게 모순으로 점철된 삶을 살다 갔다. 위대한 작품을 남긴 소설가요, 설득력 있는 우화와 특유의 도덕론으로 ‘인류의 스승’으로 추앙받는 그도 평생 오욕의 굴레에서 고통스러워했다. 에서 ‘돈’이란 열쇳말로 거장의 철학과 예술세계를 흥미롭게 분석해낸 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의 신작 (예담 펴냄, 1만3천원)는 이런 그의 삶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수많은 저작을 중구난방 훑어보는 대신, 지은이는 톨스토이가 삶의 전화점에 섰던 마흔아홉 살에 내놓은 를 중심으로 그의 삶을 들여다본다. 그는 “쉰 살 이전의 톨스토이가 위대한 작가라면, 쉰 살 이후의 톨스토이는 위대한 교사”라고 썼다. 작품의 줄거리는 “고위층 사모님이 남편도 자식도 다 버리고 연하의 남성과 애정 행각을 벌이다가 일이 잘 풀리지 않자 자살한다”는 내용이다. 여주인공 안나는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지는 것으로 삶을 마무리한다. ‘불륜을 저질렀다고 해서 꼭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죽어야 할까?’ 지은이는 “소설을 찬찬히 읽다 보면 작가가 여주인공을 죽인 것이 꼭 불륜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지적했다.

50살에 ‘위대한 작가’에서 ‘위대한 교사’로

“톨스토이는 여주인공의 죽음을 통해 상류층의 모든 것을, 예컨대 그들의 사고방식과 습관과 생활태도, 사랑과 연애와 결혼, 그리고 심지어 예술관과 먹는 음식까지 비판한다. ‘잘’ 살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소설인 셈이다.”

실제 이 작품 집필을 마친 이후 톨스토이는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꿨다. 소설 속에서 비판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소박한 삶을 살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였다. 참되게 살기로 결심한 그가 맨 먼저 한 일은 앞선 삶의 ‘죄상’을 낱낱이 고백하는 을 써 이를 만천하에 알리는 것이었다. 이후 그는 ‘잘 사는 법’에 대해 죽는 날까지 집요하게 설파해댔다. “톨스토이는 햄릿처럼 생각하면서 돈키호테처럼 살기로 결심한 사람”이란 평가가 절묘하다.

‘성자’의 반열에 오른 이후에도 톨스토이의 ‘고행’은 그칠 줄 몰랐다. 16살 차이가 나는 톨스토이와 그의 부인 소피야 베르스는 1862년 결혼한 이래, 반세기 만에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을 때까지’ 끝없이 부부싸움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흔히 소피야를 소크라테스의 부인 크산티페에 버금가는 ‘악처’로 몰아붙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소피야는 결혼 직후부터 27년 동안 무려 16차례 임신을 했고, 13명의 아이를 낳았다. 30년 가까운 세월을 끊임없는 임신과 출산·수유로 보냈다는 얘기다. 그는 또 악필로 유명한 톨스토이의 원고를 일일이 깔끔하게 정서해준 훌륭한 조력자이기도 했다. 물론 악다구니긴 했지만, ‘콩가루 집안’의 책임을 그에게만 들씌우는 건 부당해 보인다.

80대 대문호의 가출과 마지막 유언

1910년 10월28일 새벽 톨스토이는 ‘가출’을 감행했고, 20여 일 만에 그는 러시아 서부의 한적한 간이역 아스타포보의 역장 관사에서 생을 마쳤다. 행려 같은 쓸쓸한 죽음은 아니었다. 러시아를 비롯한 전세계가 ‘80대 대문호의 가출’이란 희대의 사건을, 당시 기준으로 보자면 거의 실시간으로 전했다. 그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던 순간에도 관사 밖은 인파로 북적였다. 하지만 남편이 위독하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간 소피야는 주변의 방해로 임종조차 지키지 못했단다. 기막힌 삶이다.

“진리를… 나는… 사랑한다.” 톨스토이가 숨지기 전 남긴 마지막 말이다. 그가 실제 ‘진리’를 발견했는지는 알 수 없다. 스스로는 분명 그렇게 믿었을 터다. 어쩌면 그것이 ‘비극’의 씨앗이었는지 모른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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