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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품격? G20의 착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1주년 기념호…
베르나르 카상의 ‘G’ 해부와 ‘국가의 재조명’ 특집 눈길
등록 2009-10-15 16:36 수정 2020-05-03 04:25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1주년 기념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1주년 기념호

“섬유·철강·자동차·은행…, 그리고 이제는 신문의 차례인가.”

다들 잘 알고 있다. 바야흐로 위기의 시대다. 세계경제를 떠받쳐온 거의 모든 산업이 하나둘 무너져내리고 있다. 언론도 예외가 아니다. ‘주류 중의 주류’라 할 조차 ‘멕시코의 갑부’에게 연 14%의 이자를 내주며 거액을 융통했단다. 종이신문이 문을 닫는 것은 더는 일국적 현상이 아니다. 지령이 몇백 년 된 유럽의 신문들도 잇따라 종이신문을 포기하고 앞다퉈 인터넷으로 ‘존재의 공간이전’을 단행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다.

“신문이 수익성 없는 본업을 팽개치고 방송에 뛰어든다면 상황이 달라질 것인가? 민영방송사들이 우후죽순 난립해 천박함의 경연을 벌일 게 분명하다. 이런 언론의 위기를 두고, 그저 하나의 경제모델이 또 다른 패러다임에 밀려나는 것일 뿐이라고 결론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장에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민주주의다. 공적 토론의 장이 무너져가고 있는 것이다.”

상주 없는 미디어의 죽음

(이하 ) 한국판은 창간 1주년을 기념하는 10월호에서 ‘어느 미디어의 죽음’에 주목했다. 세르주 알리미 프랑스판 발행인이 지적한 것처럼, 그 죽음에 대해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다”는 게 뼈아프다. 그는 “미디어가 겪고 있는 고충에 상당수 국민이 무관심한 이유는 그들이 적어도 한 가지를 간파했기 때문”이라며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미디어 소유주들의 이익 추구에 방패막이 구실을 하곤 한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위기의 시대, 성찰이 필요하다. 어디서 대안을 찾을 것인가? 알리미 발행인은 ‘민주주의의 위기에 맞선 독자와의 연대’를 새삼 강조했다.

‘국가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를 주제로 기획한 창간 1주년 특집 기사도 눈여겨볼 만하다. 국가는 위기의 해결사가 될 수 있을까? ‘자본주의의 영원한 구원투수’인 케인스주의에 대해 국내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국가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서동진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가 이른바 ‘진보적 (또는 공화적) 애국주의’ 논쟁에 대해 “자유와 평등은 공화국(의 존재)만으론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개발독재 시절 ‘경제성장의 논리’는 국가주의를 은폐하기 위한 유용한 기제였다. 그것이 오랜 기간 내면화·습관화했으니, 스크린에서조차 국가주의의 편린을 발견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10대들의 ‘팬덤’에서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을 위해 행동에 나서는, 국가에 대한 충성과는 사뭇 다른 ‘그들만의 민주주의’를 강조한다. 눈먼 ‘도그마’에 대한 유쾌한 반란이다.

정통성 결여된 G20은 이미 실패

그래서다. 누구에게도 위임받지 않은 권력을 휘두르며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이들의 잔치(G20)를 열게 됐다고, 하릴없이 ‘국가의 품격이 높아졌다’며 환호작약하는 게 열없기만 하다. 제3세계 부채 탕감과 투기자본 규제운동에 앞장서온 국제금융관세연대(ATTAC)의 창설자인 베르나르 카상 파리8대학 명예교수는 ‘신자유주의에 매료된 G그룹의 착각’이란 글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금융·통화·에너지·식량·환경 전반에 걸친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G’자로 시작하는 국가협력체들의 등장은 총체적 대안 제시의 회피로 해석된다. 지난 9월24일과 25일 미국 피츠버그에서 모인 G20은 새로운 세계 지도자 그룹을 자처하고 있다. 그러나 정통성마저 결여한 G20은 이미 실패로 판명된 조직 방식에 대한 대안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창간 1주년을 맞아 평소보다 4쪽을 늘린 한국판 10월호엔 이 밖에도 읽을거리가 풍성하다. 다니엘르 랭하르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연구팀장은 “영리기업들이 ‘공공의 가치’를 내세워 노동자의 충성심을 유도하는 새 공무원들은 점점 더 이윤 추구에 매진할 것을 강요당한다”며, 공공성이란 이름 아래 더욱 교묘해진 노동착취를 고발했다. 산디니스타 혁명 30주년을 맞은 니카라과의 오늘과 군사 쿠데타란 ‘냉전의 망령’이 되살아난 온두라스에 대한 현장 보고도 찬찬히 들여다볼 만하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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