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명탐정 몽크>. 사진 FOX 제공
주말 밤 TV 화면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인 붉은 금문교가 나온다. 나는 부리나케 음료수와 간식거리를 챙겨와 소파에 깊숙이 기댄다. 일하던 노트북은 아슬아슬하게 탁자에 걸쳐 있고, 저녁 대신 먹던 누룽지 그릇이 그 옆에 뒹굴고 있다. 이제부터 등장할 주인공은 이런 내 방 꼴을 보면 울화통이 터져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의 모습을 보며 키득거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이런 밤이 벌써 100번째다.
드라마 (FOX 채널)의 국내 방영분이 100번째 에피소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아내가 자동차 사고로 숨진 뒤 병적인 결벽증과 강박증을 지니게 된 전직 형사 에이드리안 몽크. 세균이 묻을까봐 악수도 못하고, 액자가 1cm만 기울어져 있어도 참지를 못하고, 남의 옷에 묻은 얼룩 때문에 잠을 못 이룬다. 그럼에도 이런 핸디캡들을 이겨내고 멋진 추리 능력으로 온갖 사건들을 해결하는데, 최첨단 장비로 무장한 수사관들이 판치는 추리 드라마의 세계에 정말로 보기 드문 아날로그 탐정이다.
집 밖을 나서지 못하는 앉은뱅이 탐정은 꽤나 있지만, 자기 집 안에서도 안절부절 공포에 질려 있는 탐정이라니 한마디로 기가 찬다. 영화 에는 광장공포증 때문에 집 안에만 머무르면서 연쇄살인범과 싸우는 주인공이 나오는데, 는 그보다 더욱 다채로운 강박증을 지닌 주인공을 등장시키고도 우리로 하여금 서스펜스가 아니라 유머에 휩싸이게 한다.
현대는 얼마나 갑갑한가? 직장 상사는 서류의 글씨체가 양식에 맞지 않다고 뺑뺑이를 돌리고, 여권과의 접수원은 사진에 귀가 보이지 않는다고 돌려보내고, 내 돈 내고 음료수 좀 뽑아 먹겠다는데 자판기는 지폐를 똑바로 안 넣었다고 뱉어낸다. 몽크는 우리 주변의 이런 강박을 과장시켜 희극의 대상으로 바꿔놓는다.
솔직히 말하겠다. 초창기 시즌 때는 그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러나 이제는 어떻게 하면 그를 곯려줄 수 있을까 생각한다. 그 앞에서 모른 척 이쑤시개통을 엎질러버릴까? 아니면 콧물을 튀기며 크게 재채기를 해버릴까? 범인들 역시 몽크의 습성을 깨닫고 그를 공격할 방법을 고안해낸다. 벽에 폭탄을 설치해놓고 그 도화선을 삐뚤어진 액자에 연결해놓는다. 몽크라면 당연히 액자를 똑바로 세우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몽크 스스로 자신의 원칙을 위반하기도 한다. 화가의 꿈을 키우는 그에게 누군가 찾아와 허접한 그림을 거액을 주고 사겠다고 하자, “제가 평소에는 악수를 하지 않지만”이라며 손을 잡는다. 의외의 인간적인 모습이랄까?
는 느슨하다. 제법 치밀한 추리 퍼즐이 나오기도 하지만, 템포는 결코 팽팽하지 않고 사건의 해결도 여유롭다. 얼핏 보면 1980년대의 추리 드라마 같다. 그런데 그런 느슨함과 여유로움이 좋다. 상쾌한 추리와 함께 살짝만 비틀어진 웃음이 온다. 요 정도만 비틀어져도 몽크는 견디기 어려울 테지만.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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